“대통령 말, 천만금과 같다는데…”
“대통령 말, 천만금과 같다는데…”
  • 김선미
  • 승인 2022.04.29 08: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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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칼럼] 대통령의 ‘말의 무게’와 ‘외교적 수사’ 사이
국민 여론에 귀 닫는 불통과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우려

‘최고 지도자는 호오(好惡)를 내보이지 말라’는 한비자의 조언

당장 취임 11일만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은 어디서 개최하나?

김선미 편집위원
김선미 편집위원

“청와대서 ‘단 하루’도 ‘절대로’ 머물지 않겠다.”

“청와대로 가는 순간 제왕적 대통령으로 찌들 것 같다.”

“5월 10일 0시 부로 청와대 완전 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 

이 모든 사달과 논란은 모두 저 ‘단정’적인 어법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단’ ‘반드시’ ‘절대’ 등등... 이 같은 단정적인 표현을 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퇴로가 없다.

어조가 강할수록, 책임의 무게가 클수록 이를 번복하는 일은 한마디로 면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국정 최고 책임자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어조가 강할수록, 책임의 무게가 클수록 번복하는 일 쉽지 않아

대통령의 말, 대통령의 문법은 천만금과도 같다. 대통령의 말과 문법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더욱이 대국민 발언은 발언이 미칠 파장을 두루두루 살펴 심사숙고해야 한다.

한 번 쏟아낸 말은 번복을 하고 싶어도 말의 감옥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니다 싶으면 번복할 수 있지만 말처럼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다.

자신의 발언을 거둬들이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평소 자신의 발언에 확신과 확고함을 실었을 경우는 더 그렇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과 발언의 오류 없음을 입증하려고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광화문 시대⟶용산 국방부’ ‘육군참모총장 공관⟶외교부 공관’으로

대통령인수위에서 사전에 제대로 점검을 안 했는지 대통령 집무실은 ‘광화문 시대서 용산 국방부’로, 관저는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외교부 공관’으로 동가식서가숙 방불케 할 정도로 이리저리 옮겨지고 있다.

두 정부기관은 ‘안 된다’ ‘곤란하다’는 항변은 커녕 의견 피력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이곳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더부살이를 해야 할 형편에 놓였다.

외교부는 단순히 장관 관저를 떠나 외교사절들을 맞아 친밀한 공관외교를 펼쳤던 유용하고 유효한 장소를 내주게 됐다.

대통령 후보 시절 “단단한 외교와 튼튼한 안보”를 강조하며 현 정부를 공격했던 윤 당선인이다.

어느 기관이든 사정이야 마찬가지겠지만 하필 국방부에 이어 외교부 업무공간을 차지하며 두 기관을 혼란과 난처함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윤 당선인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단단한 외교와 튼튼한 안보’ 강조했으나 결과적으로 두 기관 흔들어

대통령 취임식을 불과 열흘 정도 남겨놓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둘러싼 여진이 여전하다. 외교부 공관은 아직까지 어디로 옮겨가는지조차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취임 11일만인 5월21일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은 어디서 개최할 것인지?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새정부의 국정 방향과 틀을 제시하는 ‘가장 힘이 세다’는 당선인 신분의 활동과 국정 과제 제시보다 집무실과 공관 문제가 더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취임 전부터 계속되는 이 같은 불통과 졸속행정이 국민 여론에 귀 닫고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는 국정운영의 서막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당선인 활동과 국정 과제보다 더 부각되는 집무실과 공관 논란

외교관이 ‘그렇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고려해보죠’라는 의미이고, ‘고려해보죠’라고 말하는 건 ‘안 됩니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자는 외교관이 아니다.-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1754년~1838년)-

국익을 다투는 외교에서는 단교를 불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노(No)라는 직접적 표현은 여간해서 하지 않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외교적 수사(外交的修辭, diplomatic rhetoric)’와 관련한 말이다.

프랑스의 정치가,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였던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는 나폴레옹을 정계에 등장시키고 프랑스 외무장관을 지냈던 인물로 알려졌다.

자료 사진 : 대선 당시 조치원역 유세장면

외교적 수사,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자는 외교관이 아니다

노련한 외교 전문가라면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누르는 완곡함과 결례를 범하지 않는 직설화법의 적절한 조화로 국익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외교적 수사‘가 외교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할 말 다하며 속마음을 있는대로 다 드러내다가는 친구와 직장 등 사회적 관계는 물론이고 가족관계도 파탄에 이르게 할 것이다.

특히 ‘외교적 수사’는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뺀질뺀질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말바꾸기의 방패로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고 강변할 할 때는 여러 경우의 수를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은 최고의 국정지도자이자 최고의 외교관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최고의 국정지도자이자 최고의 외교관, 말의 신중함 살펴야

“임금이 싫어하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꼬리를 감추고, 임금이 좋아하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능한 체 속인다.”-《한비자(韓非子)》

니와 슌페이의 《제왕학(帝王學)》에 나오는 ‘최고 지도자는 호오(好惡)를 내보이지 말라’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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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2022-04-29 10:22:31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