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된다
양화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된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22.03.02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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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역사성 등 감안해 기념물 지정 심의위에서 통과 결정
부안 임씨 전서공파 대종회...일련번호 내려오면 목신제로 홍보
세종시 양화리 부안 임씨 숭모각을 지키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예정이다. 사진 : 서영석 기자

세종시 양화리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는 경사를 맞았다.

천연기념물은 세종시 출범 이후로는 처음이며 연기군 시절까지 올라가도 봉산리 향나무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 25일 문화재청은 세종시, 부안 임씨 대종회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최종 심의위원회를 갖고 세종시 양화리 소재 수령 600년 은행나무 암·수 두 그루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로 확정했다.

심의위원회 통과로 앞으로 천연기념물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공고가 나면 국가가 관리하는 보물 수준으로 대접을 받는 귀한 나무가 된다.

부안 임씨 사당인 숭모각(崇慕閣)앞에 심어진 은행나무는 높이 20m, 둘레 6m 크기로 사당 방향 오른쪽이 수나무, 왼쪽이 암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암나무는 가름한 형태로 쫑곳하게 서 있으며 숫나무는 둘레가 두꺼우면서도 웅장한 모습으로 임난수 장군을 기리는 숭모각(崇慕閣)의 수호신처럼 좌우를 지키고 있다.

이번 지정에는 역사성과 지역성, 그리고 은행나무의 상징성을 감안했으며 문화재청의 내부 절차가 마무리되면 목신제(木神祭)를 열고 세종시민들에게 천연기념물 제정을 고(告)할 예정이다.

고려말 충신 임난수 장군이 역성(易姓)혁명을 반대하고 고향 부안으로 낙향하던 중 전월산과 주변의 수풀 임(林) 산세에 반해 집을 짓고 살았던 양화리에 1394년 은행나무 암·수를 심었다.

이 사실이 부안 임씨 족보에 정확한 기록으로 남아있어 1천년 이상된 은행나무도 천연기념물 심사에서 쉽게 탈락한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수령 6백년으로 통과가 된 것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판단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겨울과 여름의 은행나무

족보에 남아있는 정확한 기록이 역사성을 더해주었고 고려 충신 임난수 장군의 충절 정신이 깃든 나무에다 세종대왕 정신을 이어받은 세종시에 소재하고 있다는 것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또, 양화리 숭모각 앞 길을 ‘임난수로’로 명명했고 세종시 중고교 교과서에 임난수 장군의 일대기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도 이번 지정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영수 연기향토박물관장은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곳곳에 오래된 고목이 많아 지정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역사성과 주변에 역사공원이 들어선다는 것 등을 감안한 결정으로 정말 영광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압각수’(鴨脚樹), 즉 ‘기러기 다리처럼 생긴 나무’ 로 불리는 은행나무는 고려말과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에서 많이 심는 수종이었다.

기러기는 재혼을 하지 않아 정절을 의미하고 날아갈 때 질서정연하면서 대장을 중심으로 계급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 사대부의 생활방식과 일맥상통한다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력이 좋아서 상상 속에 별인 아미성까지 갈 수 있는 동물은 기러기 밖에 없어 전통 혼례에서 존안례(奠鴈禮) 의식도 여기에서 유래가 됐다.

특히, 고려 무신들은 기러기 사상을 신봉했으며 잎에 있는 징코민이라는 강한 성분이 벌레를 방지, 깨끗하고 청렴한 선비 정신이 깃든 나무로 알려져 있다.

수령 6백년의 두 그루는 가을에는 노란 단풍을 자랑하고 있다. 

양화리 은행나무는 역사성과 상징성 만큼이나 전설이 깃들여 신묘함을 더해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배를 만들기 위해 톱을 대자 소리내어 울어 거두어들였다는 것부터 임진왜란, 한국 전쟁 발발 당시, 그리고 세종시가 출범하면서 울었다는 얘기가 전설로 남아있다.

이에 대해 부안 임씨 전서공파 대종회 한 관계자는 “한 지역에 하나가 있을 정도로 휘귀한 천연기념물로 은행나무가 지정됐다는 건 가문의 영광”이라며 “이를 계기로 임난수 장군의 충절 정신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세종시 조치원읍 봉산리 향나무는 1984년 천연기념물 제 321호로 지정됐으며 오랜 세월에서 배어나오는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강화 최씨 집안에서 시묘살이를 하면서 심었던 것이 오늘 날에 이르러 일명 ‘효자나무’로 불리고 있다.

현장 실사를 하고 있는 관계자들
현장 실사를 하고 있는 관계자들
오른쪽이 수, 왼쪽은 암나무로 각자의 특성을 갖고 있다. 
오른쪽이 수, 왼쪽은 암나무로 각자의 특성을 갖고 있다. 
숭모각
숭모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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