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도 호랑이 여러 번 출몰했다
세종에도 호랑이 여러 번 출몰했다
  • 윤철원
  • 승인 2022.01.3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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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 칼럼] 검은 호랑이 해... 역사 기록 속에 세종의 호랑이
1931년 동아일보, "전동면 보덕리 뒷산에 호랑이 2마리 살았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은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음력에 의하면 2월1일이 설날이니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임인년을 검은 호랑이 해라고 한다. 우리 전통의 오행(五行)사상에 의하면 천간(天干)을 둘씩 짝 지어 갑을(甲乙) 청색, 병정(丙丁) 붉은 색, 무기(戊己) 황색, 경신(庚辛) 흰색, 임계(壬癸) 흑색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거기에 12지(十二支)를 결합하는데, 올해는 검은색을 상징하는 천간 임(壬)과 호랑이해 인(寅)을 합하여 “검은 호랑이 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검은 호랑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오행을 색깔로 표현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억지로 꿰맞췄다는 생각이 든다.

호랑이는 용맹한 동물로서 백수의 제왕이라고 불린다. 그러기 때문에 예로부터 권력과 명예의 상징으로 여겼고, 전통신앙에서는 영물이라며 산신령으로 섬기기도 하였다. 또 호랑이는 난폭하여 사람을 해치기도 하였기 때문에 두려운 존재였으나,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참을성 없는 호랑이와 우화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호랑이는 우리에게 친밀감을 주기도 한다. 그런 친숙함 때문에 88올림픽 마스코트로 아기 호랑이 호돌이가 선정되었을 때 전 국민에게 호응과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과거 한반도에서는 어디서든지 호랑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 호랑이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총(銃)이 사냥도구가 되면서 개체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 멸종되고 말았다.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한반도에서 야생 호랑이를 찾아 볼 수 없게 됨에 따라 아득한 옛날이야기 속의 전설로만 전해지고 있다.

세종시 지역에서도 구전되는 호랑이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같은 주제이면서도 전하는 사람마다 내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문헌에 기록된 내용으로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세종시에서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기록은 1931년 5월29일자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서 찾아 볼 수 있다.

『충남 연기군 전동면 보덕리 뒷산에서 큰 호랑이 2마리가 지난 5월 24일 오후 6시경에 나타나서 같은 면 갈거리(노장리) 앞산으로 갔다는데 아직은 아무 피해가 없으나 아이들은 조심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고 하였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세종시 지역에서는 1930년대까지 호랑이가 살고 있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동아일보, 1931. 5. 29>

역사문헌에서의 호랑이 관련기록은 연기읍지(燕岐邑誌, 1824 갑신년) 효자·효부 편에서 볼 수 있다.

효부 유언하(兪彦夏)의 아내 부안임씨(扶安林氏)는 나이 19세에 출가하여 시부모를 지극정성으로 섬겼다. 시어머니가 여러 해 동안 학질로 고생하자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약으로 끓여 드리기도 하고, 집 뒤 높은 봉우리에 단을 쌓고 날마다 “천지신명께 비오니 이 몸을 어머니 대신 아프게 하시고 어머니는 병환에서 쾌차하게 하소서.”하며 9년을 빌었는데 기도할 때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보살펴주었다고 한다.

효자 임석영(林碩英)은 모친의 병에 지성으로 간호를 하다가 현몽하였다. 꿈에서 본대로 산에 들어가 약재를 구해서 달여 드리자 모친이 완쾌되었다. 모친이 돌아가신 후에는 산소 옆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다가 지쳐 쓰러졌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젖을 먹여 회생시켰다는 기이한 기록도 있다.

효자 김연(金璉)이 부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할 때에 큰 호랑이가 밤마다 나타나 지켜주었다고 하며, 효자 황채하(黃采河)는 부모님이 병환을 당해 지성으로 간호할 때 호랑이가 노루를 잡아서 집안에 놓고 갔다. 이상하게 여기며 이를 요리하여 드리자 신기하게도 병환이 나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호랑이도 의리가 있어서 효를 행하는 사람을 구별할 줄 알고 해치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을 주었다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되는 기록도 있다.

전홍은(全鴻恩) 부부는 모친이 병환을 당하자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을 하였다. 어느 날 밤, 모친이 변소에 가신다고 하자 아들과 며느리가 부축하여 문 밖으로 나갔는데 갑자기 맹호가 나타나 이들 가족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전홍은의 아내 임씨가 호랑이 앞으로 나서며 시어머니와 남편을 자기 뒤로 물러서게 했다.

며느리 임씨는 웬만한 남성 못지않게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자신이 신었던 나막신을 벗어 들고 호랑이와 격렬하게 맞서 싸웠는데, 얼마나 호랑이를 두들겨 팼는지 결국에는 호랑이가 물러서고 말았다. 그 덕분에 시어머니와 남편은 무사하였으나 며느리 임씨는 여러 곳을 물리는 호환을 당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들로 미루어 볼 때 과거 세종시 지역에도 호랑이가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눈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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