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맨 아내, 멋진 벤츠로 남편 퇴근?
도어맨 아내, 멋진 벤츠로 남편 퇴근?
  • 조한수
  • 승인 2013.05.21 09: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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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수의 세상과 놀다]망국의 길, '갑'과 '을'의 문화

지금 대한민국 안에는 온통 갑(甲)을(乙)의 논쟁으로 시끌시끌하다. 정치, 교육, 경제, 종교 어느 분야 어느 사회에서든지 이 논쟁에서 자유스러운 곳은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이웃에서도 이런 논쟁이 있고 개인의 가정 안에서도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고 하니, 이러한 사회의 구조 안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요원하기만 한 것 같다.

그럼 이런 갑을의 긴장관계는 어디에서 기원된 산물일까? 필자는 이를 우리 한국인에게 고질적인 악습인 ‘차별주의’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차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성격이나 뿌리를 찾아보면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서양은 기독교 문화에서 시작된 사회구조를 갖고 있어서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차별하는 것같이 보여도 그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동정, 이해심이 기본적으로 흐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매년 12월25일 성탄절 다음 날을 Boxing Day로 지내는 일이다.

   '갑'과 '을'로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진 사회는 경쟁력과 창조정신이 없는 사회다. <사진은 최근 밀어내기로 말썽을 빚은 남양유업>
이 날은 중세 사회에서 귀족들의 성탄절 파티를 준비하느라 수고했던 집안의 종들이나 마을의 가난하고 천한 층의 이웃들에게 귀족들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선물 Box를 준비하여 성탄절 다음 날 동네 잔치를 베풀어 주면서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면서 위로하며 지낸 그런 날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날을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Boxing Day라 하여 매년 12월26일을 이웃들과 함께 지내는 즐거움을 갖는다.

이러한 서양문화와는 다른 우리나라에서는 유교를 국가의 통치철학으로 정했던 조선시대부터 철저하게 사회적 신분제도로 나눈 양반제도가 사회의 차별화를 시도한 그 뿌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양반(兩班)이라는 것은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을 합쳐서 양반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조선 시대에는 백성의 부류를 두 그룹인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진 계급사회는 점차 세분화하여 양반, 중인, 상민, 천민 등 네 가지 신분사회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어 갑오경장 사건 때까지 내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네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집안을 자랑할 때에 양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사실 조선시대의 양반의 인구는 전체 인구의 3~4%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와서 양반들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많은 수의 양반 집안들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 돈 좀 있는 일반 중인, 상민, 천민들에게 관직이나 자신들의 족보를 팔기 시작했다. 재정이 부족한 정부에서도 돈이나 물건을 바치면 관직을 주거나 신분을 해방시켜 주는 것으로 나라 곳간을 유지하였다. 심지어는 명예 양반이라는 임명장까지 돌아다녔다고 하니, 당시 사회가 어떠했는지는 짐작할 수가 있다.

양반의 몰락과 돈많은 천민들의 족보 사재기... 그리고 명예 양반 임명장까지 일반화

이렇게 관직을 사고 팔거나 족보를 가짜로 만드는 방법을 통해서 조선 말기에는 그야말로 양반 천지가 된 이상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매관매직이 판을 치면서 돈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을 억누르는 갑을의 긴장관계가 정점에 달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폐습을 보고 있던 젊은 두뇌들이 일어나서 사회 개혁을 이루고자 시도한 것이 그 유명한 ‘갑오경장’이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는 남을 위한 배려, 약자를 위한 배려는 찾기가 힘들어 진다.
우리 사회가 이런 부조리한 역사의 뿌리를 근절하지 않고 지금까지 왔기에 우리 안에는 남에게 군림하기 좋아하고 약자에 대해서 배려보다는 등골을 빼먹는 악습이 자신들도 모르게 체질화되고 만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세 가지의 차별화가 두드러진다.

첫째는 인종적 차별이다.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지에서 보도한 기사를 보니 8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세계가치관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인종차별 수준을 살펴보았는데 한국이 인종차별 수준이 둘째로 높았다고 발표한 기사를 보았다.

여기에서 주목하게 되는 내용은, 한국인의 36.4%가 다른 인종을 이웃으로 두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는 기사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경제 수준이 높은 서양사회일 수록 다른 인종에 대한 관용도가 높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은 후진국이라는 말이다. 실제적으로 필자가 한국에 와서 경험한 것은 외국인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은행을 가도, 관공서를 가도 차별이 너무 심하다. 필자가 뉴질랜드에 살 때만 해도 그곳에서 느끼지 못하는 외국인으로서의 소외감을 여기서는 피부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더군다나 한국인들은 백인들에 대해서는 관대하나, 유색인종이나 특히 아프리카 혹은 동남아시아 권에서 온 제3국의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대놓고 무시하고 모독을 준다. 어디에서 오는 우월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인종에 대한 배타적 차별은 그대로 우리가 외국에 나가게 되면 도로 받는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

둘째는, 사회적 차별이다. 한국에 들어와서 얼마 뒤, 필자의 여동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아파트마다 평수를 놓고 이웃을 사귄다는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도 친구를 사귈 때 어느 아파트에 사는가를 따진다고 한다. 가진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입는 것으로, 또는 타는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 이것은 전형적인 후진국 사회가 보여주는 예가 된다. 심지어 5성급 호텔에 낡은 차를 몰고 가면 호텔 도어맨은 당장 차 치우라고 고함을 친단다. 외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아무리 낡은 차라 할지라도 정중하게 문을 열어주고 심지어 주차까지 친절히 해주는 것이 손님에 대한 예의로 그들은 대한다. 필자가 뉴질랜드에서 경험한 일이다. 오클랜드에 가면 sky호텔이라는 고급 호텔이 있다. 거기에서 도어맨으로 있는 한 사람은 아주 근사하게 나이를 든 노인이다. 지나가다 마주칠 일이 있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그에게서 깜짝 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뉴질랜드에서도 유명한 큰 회사의 CEO였다는 것이다. 회사를 은퇴한 후, 마냥 놀고먹고 살 수는 없어서 일을 찾다가 호텔 도어맨으로 취직을 하여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 그의 아내가 그의 퇴근에 맞추어 차를 끌고 왔는데 보니 멋진 벤츠 세단 차를 끌고 와서 자기 남편을 태우고 정답게 돌아가는 모습에 신선한 감동을 받은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연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세 번째는 직능적 차별이다. 요사이 큰 회사들이 일반 대리점들에 대해서 밀어내기 수법으로 고통을 준다는 기사를 본다. 어떻게 문명사회에서 그것도 선진국을 대망한다는 나라에서 이런 후진국적인 경영수법이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놀랍기만하다. 오클랜드에서 작은 주유소를 경영하는 친구가 있다. 그의 업소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회사에서 판매할 물건들이 그의 숍에 들어온다.

그러나 반드시 오기 전, 지금 판매된 것은 몇 개이고, 남은 수량은 몇 개인지 수량 조사부터 한 후, 남은 것은 가차없이 도로 수거해 가고, 모자란 것만 채워주고 간다. 물론 날짜가 지나거나 얼마 남지 않은 제품 또한 수거해 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리고 판매한 물건에 해당된 것만 값을 계산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는 갑을 관계라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서로가 돕는 파트너 관계일 뿐이다. 갑을 관계! 누구는 군림하고 누구는 밑에서 기어야 하는 이런 굴욕적인 관계는 인간사회에서는 나타나서는 안 되는 악습이다.

     
 
     
 
 
조한수, 서울출생, 미국 Lee University졸업(B.Sc), 동대학원 졸업(M.div), 총신대 수학,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수료, 뉴질랜드 선교 20년간 사역, 현재 세종개혁교회 목회 사역 중irchurch@naver.com

사람이란 서로 도와야 살 수 있는 연합적인 존재이다. 특히 민주사회를 표방하는 나라라면 특히 이러한 고도한 문화를 보여야 할 것이다. 돈, 사회적인 지위 또는 직장에서의 직위 이러한 것은 모두 서로를 돕기 위한 기능적 수단이지 누구를 억누르고 군림하기 위한 감투로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 시민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갑을이 없는 시민사회! 이것이 명품도시민의 멋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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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13-05-31 12:58:02
조목사님! 오랜만에 들어와서 좋은 글 읽었습니다.
나그넨 사회적으로 을의 처지에 있지만 높으신 우리 주님께서는 자꾸 높은 자리를 내어주십니다. 깜작 놀라서 바라보니 '갑을'이 따로 없는 세계로 가는 특급 열차에 마련된 고급 자리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