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쪽에 썩지 않는 밤, 삼정승과 조상, 뿌리 잊지말라는 의미
세 쪽에 썩지 않는 밤, 삼정승과 조상, 뿌리 잊지말라는 의미
  • 최민호
  • 승인 2020.09.30 08: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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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의 아이스크림] 추석 차례상 차림...이런 의미가 있다
'가례집람'에서 시작된 예법, 정신은 '정성'과 '엄숙'이 기본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올 추석은 유난히 쓸쓸할 것도 같습니다만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전에는 추석하면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모셨는데 요즘은 가정에 따라 또 종교에 따라, 차례도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만, 아직도 추석 차례를 많이 지내는 분들이 있어 차례상 차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추석 차례하면 추수 감사절 같은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땀 흘려 농사진 오곡백과를 차려 놓고 조상들에게 감사드리는 것. 그것이 추석 차례겠지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 차례를 지낼 때마다 우리가 매일같이 먹는 김치가 없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가 들어 음식도 없지요. 왜 그런지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명확하게 대답해주시는 분이 별로 없었습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왜 그럴까요?

전통적으로 내려 온 의식으로 엄숙히 지켜온 것이라서 감히 의문을 품지도 못했습니다만, 시대도 많이 바뀌었는데 차례상은 그대로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 생각하면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전통이니까 그럴까요?

제가 예전에 외국에서 공부할 때, 추석때가 되어 차례상을 차리려다 보니 ‘조율시이(棗栗柿梨)’ 같은 과일이나 전통음식을 장만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유교문화에서 조상을 기리는 정중한 차례를 지내는데는 일정한 예법이 필요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중의 하나가 가례집람(家禮輯覽)이라는 교과서였습니다. 김장생(金長生)선생이 송시열(宋時烈)선생을 비롯한 여러 제자들의 노력으로 간행되었다고 합니다만, 그 시기가 1685년이라고 합니다.

당시의 음식이나 과일을 중심으로 차례상 차리는 예법을 만들었을 터이고, 그 정신은 ‘정성’과 ‘엄숙’이었겠죠.

그러나 시대도 변하고 음식문화도 많이 변했습니다.

우리나라에 고춧가루가 들어온 것이 임진왜란 이후니까 그 전에는 고춧가루를 넣은 지금의 김치라는 것이 없었겠죠.

만일 그때 김치가 있었으면 차례상에 빠질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렌지, 파인애플, 바나나 같은 외국의 과일도 없었겠지요. 지금은 늘 먹는 것이지만, 당시에는 없었으니까 차례상에 올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그러니 가례집람에 나오는 예법으로는 조선시대 음식을 기준으로 차례상을 차리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김장생 선생이 지금 살아 있으면 지금의 맛있는 과일이나 음식을 상에 올려드리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애써 가꾸고 농사지은 것이라면 고추든, 배추든 더 정성껏 올려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굳이 조선시대의 음식만을 고집하는 것이 전통이라는 이유로 합당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근본을 알고 그 근본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선할 것이 있으면 개선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중 과일이 제일 궁금했습니다.

차례상에 반드시 조율시이(棗栗柿梨), 즉 대추, 밤, 감, 배를 꼭 그 순서대로 올리는 이유가 긍금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물어도 보았더니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대추는 씨가 하나밖에 없으니 왕을 뜻하고, 밤은 밤송이부터 껍질이 세 개니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정승을 뜻하고, 감은 씨가 여섯이니, 육판서를 뜻한다고요. 배는 씨가 여덟 개이니 팔도 관찰사라고 말입니다.

조선시대 벼슬입니다. 그러니 그 순서를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절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시대는 관료사회였으니 그랬었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다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비약 같았어요.

씨가 하나인 과일이 대추 하나뿐인가? 복숭아도 있고, 자두도 있잖은가?

이런 생각에서부터 차례상이라면 집안의 조상들에게 올리는 가정의 일인데 느닷없는 중앙의 벼슬이 무슨 곡절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과일에 계급이 있다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그러다가 기막힌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 과일의 특징이 벼슬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대추가 상에 오르는 것은, 대추는 암수가 한그루의 나무로 대추는 꽃이 피면 꽃마다 열매가 맺힙니다. 많이 열리지요. ‘대추나무에 대추 열리듯’ 이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자손이 많은 집을 말하지요.

그래서 차례상에 대추를 올려서 자손이 번성하라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밤은 참 신기한 나무입니다.

밤을 심으면 뿌리가 생기고 줄기가 나와 열매가 열려도 뿌리 끝에 심은 씨앗 밤이 썩지 않고 그대로 매달려 있습니다.

차례상에 밤을 올리는 것은 부모님과 조상을 잊지 말고, 다시 말해 근본을 잊지 말라는 뜻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감 또한 희한한 나무지요.

감은 씨앗을 심으면 그 씨앗에서 자란 나무에서는 감이 열리지 않습니다. 작고 떫은 고욤이라는 열매가 열립니다.

감을 따려면 고욤나무에 감나무가지를 접붙여서 그 가지에 열리는 감을 땁니다. 그것은 자녀들을 그대로 둔다고 훌륭하게 자라지 않고, 반드시 가르치고 좋은 배필을 얻어야 좋은 자손을 둘 수 있다는 가르침이 감 속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통찰력에 놀랐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조율시이 과일을 반드시 차례상에 올린다는 것에 납득이 되었습니다.

결혼하면 폐백(幣帛)이라고 신랑 집 어른들에게 신랑신부가 첫인사를 드리는 의식이 있는데, 그 때 어르신들이 신부의 치마폭에 대추, 밤을 던져주는 것도 같은 뜻이었습니다. 자손을 많이 낳아 훌륭하게 키우라는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회갑잔치나 제사상에도 대추나 밤, 감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어요.

그런데 차례상에 못 올리는 과일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복숭아는 못 올린다고 하지요. 그 이유는 복숭아는 천도라는 말도 있듯이 신선이 먹는 과일이고 신령스러운 나무여서 귀신을 몰아낸다는 속설이지요. 그래서 못 올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은 미신적 요소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대추나무에는 가시가 있어 귀신을 쫓는 나무로 믿었습니다. 벼락맞은 대추나무는 벽조목(霹棗木)이라 하여 이 나무로 도장을 만들면 귀신이 못 온다고 값이 비싼데 그런 대추가 차례상에 올려지는 것은 모순이지 않습니까?

저는 차례상에 못 올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복숭아 농가의 조상들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런데 과일을 놓는데 순서가 있는데 집안마다 다소 다른 것이었습니다. 조율시이 순서도 있지만 조율이시라는 순서로 과일을 배치하는 집안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조선왕조시대적인 발상인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에 왕은 이(李)씨였습니다. 배를 한자로 쓰면 같은 이(梨)를 씁니다. 그래서 이씨 왕조에서는 차례상에 배를 올렸다는데, 이씨 집안은 감보다 배를 먼저 놓아서 조율이시로 되는 것이지요. 집안에 따라 다른 것이지요.

‘제사상에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말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과일 배치의 순서에는 홍동백서(紅東白西)도 있습니다.

그것은 주역의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음양오행을 중시했습니다. 그래서 동서남북을 색깔로 나타냈는데 동은 푸른색, 서쪽은 흰색, 남쪽은 붉은 색, 북쪽은 흑색인데 그래서 해가 뜨는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색깔 따라 과일을 배치하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고기나 나물등 차례상의 음식도 배치순서가 있습니다.

‘진설(陳設)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매우 까다로와서 저는 어른들이 책을 보면서 진설할 때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곤 했습니다. 음식을 잘못 놓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알고 보면 매우 간단하고 합리적인 이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음식의 산지 순대로 질서있게 배치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고기나 나물을 상에 놓을 때는 산, 들, 강, 바다 순으로 생산되는 것을 순서대로 놓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산이 동쪽이고 바다가 서쪽이니까 산에서 나는 음식은 동쪽, 바다에서 나는 해물은 서쪽 순서로 음식을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정히 방향이 반대지역에서는 그런 방향으로 놓으면 원리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는가도 그 지역에서 풍성하게 나오는 것이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제주도에서 차례상에 옛날에는 없었던 귤을 놓는다면 조상님들이 더 좋아 하시지 않겠어요?

차례상을 차리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가위 추석에 보살펴주신 분들에게 정성껏 감사를 드리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전통의 원리는 살리되, 현대적인 정성도 가미시키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바나나, 파인애플도 상에 올릴 수 있으면 올리되, 홍동백서의 질서대로 올리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입니다.

김치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민족음식인데 왜 차례상에 못 올립니까? 정성을 다해 원리를 이해한다면 못 올릴 음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절을 하는 것도 개인의 종교를 존중하면서 형식을 떠나 조상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날에도 천년 전, 500년 전의 음식으로만 차례상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차례상의 과일을 벼슬이나 맛이 아니고, 가족의 화목을 뜻하는 상징으로 올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차례상은 그런 깊은 의미를 새기면서 집안마다 각자의 문화를 만들면 그것으로 훌륭한 가풍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겁고 복된 추석입니다.

낡은 사고와 맹목적인 전통을 고집하지 말고 합리적이면서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는 가운데, 가족의 화목과 조상님과 하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이스크림!(I scream!)

최민호 제24회 행정고시합격,한국외국어대학 졸업,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단국대 행정학 박사,일본 동경대학 석사,전)충청남도 행정부지사,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행복청장,국무총리 비서실장,배재대 석좌교수,홍익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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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 2020-10-02 09:50:20
저 많은걸 누가 다 차리나요?
기자가 함 차려보세요 욕이 나오나 안나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