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작은 월드컵에 숨겨진 가치
아이들의 작은 월드컵에 숨겨진 가치
  • 강수인
  • 승인 2012.02.24 11:0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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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의 생활 속 이야기]어려울 때 기회, 배려, 자신감주는 교육

   축구 초보자인 아들에게 미국인 코치는 똑같은 기회를 주면서 결정적인 실수에 오히려 "애를 썼다"고 격려, 기회제공과 배려문화를 익히게 됐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아이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커서 무엇이 되면 좋겠느냐’는 말일 것이다. 아직은 꿈을 꾸며 시시때때로 변하는 아이들이기에 뭐라고 답하기가 어려워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돼’라고 얼버무리는 것이 아마 대부분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면 과거 어려운 시절 우리 어머니들은 가난을 이기게 해 줄 또는 배경 없는 집에 소위 백이 되어 줄 ‘개천의 용’을 바랬다. 하지만 요즘 엄마들의 바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즐겁게 계속 일할 수 있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일 것 같다.

미국에 살 때, 시에서 운영하는 체육프로그램에 아이들이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의 방과 후 학교와 비슷한데 시에서 분야별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체육, 예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소셜 프로그램(social program)중의 하나였다.

첫째 아이는 농구를, 둘째 아이는 축구를 선택했다. 한국에선 접해 본 경험도 전혀 없던 터라 룰도 모르고 더욱이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을 얼른 적응했으면 하는 욕심으로 내모는 것 같아 맘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비용도 1년에 100달러가 채 안되었고, 모든 게 다 준비되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란 생각에 다소 무리다 싶으면서도 참여시키기로 했다.

첫해 여름, 드디어 둘째 아이의 축구 코치라며 이메일로 연락이 왔다. 주중에 한 번의 연습과 토요일 오전에 실제 경기가 개최되는 일정과 장소를 알려 주었다. 처음 아이를 데리고 갔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든 가족이 우리에게 익숙한 낚시용 이동식 의자를 가지고 와서 자리를 하고 아이스박스에는 음료와 음식을 잔뜩 챙겨 오는데 그야 말로 야외 소풍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또 꼬맹이 선수들은 등번호와 팀 명칭이 새겨진 유니폼에 축구화까지 제대로 차려입어서 어린이 월드컵을 방불케 했다. 또 심판진도 모두 유니폼을 차려입고 호루라기, 선심용 깃발을 가지고 있어서 동네 축구에 익숙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같은 팀 가족끼리의 자연스러운 인사, 다른 집 아이에게 보내는 응원, 상대편 아이의 골에 대한 칭찬 등 7∼8세 꼬맹이 선수 경기치고는 경기 전부터 끝난 뒤까지 너무나 진지하고 열정이 넘쳤다. 그런 분위기에 어색하고 낯설어 하며 가만히 의자에 앉아 경기를 관전하던 우리의 모습을 지금도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코치와 경기 심판은 모두 자원봉사자다. 한 가지 또 놀란 것은 당시 soccer의 s도 모르는 우리 아이에게도 다른 아이와 똑같이 경기에 뛰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주는 코치의 운영 방식이었다. 팀에는 코치의 아들도 있었는데 다르지 않았다. 훈련 시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실제 경기 때는 그래도 잘하는 아이를 집중 배치할 필요가 있겠다 싶은데도 경기의 승패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기회를 주었다. 한번은 스코어가 14:1로 지고 있었는데도 선수 교체는 여느 때와 같았다. 지든 이기든 게임의 룰은 한결같이 공정하게 적용되었고 휴식시간에 갖는 작전 시간은 어떤 프로경기 못지않게 진지했다.

회를 거듭하고 조금 익숙해지면서 욕심이 하나 생겼다. 어설프더라도 좋으니까 골을 한번 넣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었다. 드디어 3학년이 되었을 때 기회가 왔다. 유난히 달리기를 못하고 체력이 딸리는 우리 아이가 골을 넣었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코치는 "오늘 네 골 정말 멋있었다"며 아이를 칭찬했고, 함께 했던 다른 가족과 친구들의 칭찬과 격려도 이어졌다. 그 칭찬은 부모인 우리가 아닌, 골을 넣은 우리 아이에게 직접 해줬다. 지금도 아이에게 자신감과 배려를 해 준 그들이 참 그립다.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응답해 주면서 설명하기를 즐거워하던 그들의 눈빛이….

얼마 전에 김남일 선수의 아내 김보미 아나운서의 눈물이 화제였다. 경기에서 실책이 있을 때마다 찾아오는 비난 때문에 선수의 아내로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마음고생이 심했다며 후배들에게 운동선수와는 결혼하지 말라고 고백했던 내용이었다.

거기에 비하니 숱한 실수와 결정적인 기회를 날려 버린 우리 아이에게 애썼다며 격려해 주던 그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실수를 할 때마다 멋쩍어 하는 아이에게 그들은 오히려 기회와 배려, 자신감을 선물해 주었다.

지난 가을 어느 날 학교 반 축구경기에 끼지 못했다고 풀이 죽어있는 아이에게 잘하는 것도 좋지만, 좋아 하는 것이 더 좋은 거라며 위로해 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주말에 날씨만 좋으면 친구들 음료수를 사들고 운동장으로 오라며 전화를 해댄다. 부모는 아이의 재능이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 아이에게 잘 맞는 일을 찾아 갈 수 있도록 도와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바로 부모와 선생님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필자 강수인은 올해 44세로 자녀 둘을 둔 가정 주부이다. 최근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살면서 그곳 학교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자녀 교육 방식을 전해주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매월 서너번에 걸쳐 잔잔한 가족 얘기를 주제로 한 글을 '세종의 소리'를 통해 연재할 예정이다./편집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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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 2012-02-27 21:23:10
참 고마운 글 잘 읽고 갑니다. 왜 우린 어렵지요? 아무것도 어려운게 없는데 말이죠.

노은동 2012-02-27 21:11:51
고맙네요 이런 글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길 바랍니다. 부모들은 알아요.

첫마을 2012-02-27 09:12:44
역시칭찬은 희망과 용기를주는군요
지금부터라도 남을배려하고칭찬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노력해야겠네요

애독자 2012-02-26 20:51:25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읽고 나면 뭉클함이 남습니다. 몇번이고 읽어 봅니다. 담이 벌써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