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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이 휘돌아가는 세종시에는 서민 정취를 흠뻑 마실 수 있는 민속박물관이 있다. 전통놀이와 민속품에 빠진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만들어 놓은 역작품은 개인 박물관이라는 한계를 느끼지 못할 만큼 방대한 수집품과 다양함을 자랑하고 있다.충남 연기군 서면 청라리 146번지 연기 향토박물관.
동네 민가 3채를 개조한 전시장은 외부에서 보면 박물관 소재지를 한 눈에 알지 못할 정도로 동네 속에 파묻혀 있다. 그만큼 박물관 건물에서 오는 위압감 없이 마치 내 고향집을 들어가는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다.
이곳에 주인은 임영수 관장.
올해 49살로 26년 전 우연히 만들어 준 기회를 박물관집 주인으로 명함을 내밀게 했다. 약 1,000평의 대지에 250평 건물이 각종 민속품으로 가득 차 있다.
박물관 입구부터 시작된 옹기 전시에서 좁은 통로를 뚫고 지나가면 만나는 사무실까지 시선이 닿은 곳은 모두 전통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총 소장 자료는 3,960여점. 선사 유물, 토기, 불상, 기와, 도자기, 민속자료, 전통놀이 자료가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목록이다.
처마 끝 고드름을 피해 도착한 제1 전시장에는 조선시대 양반 놀이 재현한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잘 알려진 승경도 놀이부터 고려시대 궁중에서 많이 즐겼던 쌍육놀이, 11명이 양편으로 나눠 작은 공을 치는 장치기놀이, 그리고 투전이 전혀 없는 화투와 같은 화가투 놀이 등 다양한 형태의 오락이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임영수 관장은 “제기차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등 민속놀이를 대변하는 것들은 모두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기 위해 권장한 놀이”라며 “이곳에서는 양반들이 놀았던 각종 형태의 오락을 오랜 시간에 걸친 고증으로 살려냈다”고 말했다.
그는 “양반 놀이를 금지시킨 일본의 속셈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백제시대 윷놀이인 ‘저포’와 같은 것은 재현도 어려웠지만 보급에도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임 관장은 이곳을 이미 잘 알려진 전통놀이에다 새롭게 재조명한 양반놀이 문화를 보급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었다. 제1, 2전시실에 이어 커다란 교육장이 그의 이러한 생각을 실천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향토’라는 말은 ‘소규모’를 떠올리게 하고 ‘우리 지역’으로 곧 잘 한정짓게 한다. 그걸 뛰어넘으려면 전국적인 민속품을 내 놓아야 한다. 연기 향토박물관이 바로 양반놀이를 통해 무대를 전국으로 확대 시켰다.제2 전시실에 걸어놓은 전월산 산신령 그림에는 많은 사연이 얽혀있었다. 산신각에서 불이 나자 바로 아랫마을에 살던 할아버지가 허겁지겁 뛰어 올라가 산신도만 가지고 간신히 몸을 피했다. 그걸 소장하던 할아버지가 임관장을 만나 수십년 동안 간직했던 그 그림을 건넸다. 잘 보관해달라는 부탁이 전부였다. 이제 세종시가 들어서면서 산신령 그림은 세종시의 지킴이가 되어 버렸다.
백제 공방을 재현한 1전시실에서 2전시실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에도 민속품이 가로수를 대신했다. 묘지석과 각종 불상, 그리고 도자기 등은 한 사람의 힘이 미치는 한계를 벗어났음을 절감케 하고 있다. 여기에 많은 묘지석이 나온 것은 수도 공주의 변방이라는 위치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본다.
임관장은 “앞으로 좀 더 큰 곳으로 옮겨 제대로 된 전시장을 만들어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로 삼고 싶다” 며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아 오지는 않지만 오는 분들에게 무언가 느낌을 주는 그런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