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대단한(?) 청문회
참 대단한(?) 청문회
  • 김선미
  • 승인 2017.06.1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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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칼럼]지도층의 민낯과 가십성 망신주기
   김선미 편집위원

지하철 타지 않고 승용차 타고 다닌다고 시비 걸다

“1984년 박사학위 논문의 35개 단어가 1976년 쓰여진 다른 논문과 연쇄적으로 일치한다. 논문 표절을 인정하느냐?”

지난 7일 열린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이 한 질의다. 6단어 이상을 표시 없이 인용하면 표절로 인정하는 현재의 기준에 따르면 표절이 맞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면서 시쳇말로 ‘빵’ 터졌다. 35개 단어는 A4 용지에 10포인트 크기로 작성했을 때 세 줄 정도의 분량이다. 수백페이지의 논문 중 세 줄. 저런 걸 어떻게 다 찾아냈는지, 깨알 같은 검증 실력에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실소와 함께 “참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논문 표절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다. 타인의 소중한 지적재산을 마구 베껴 마치 제 것인 냥 하는 표절은 범죄 행위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 40년 전의 논문에서 35개 단어를 찾아내 부적격자로 몰아가는 것은 엄정한 검증이라기보다는 흠집내기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왜일까?

개인적으로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커뮤니케이션학으로 석·박사를 취득한 사람이 어떻게 전공과 상관없는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할 수 있었는지가 더 궁금하다. 학자로서 영문과 교수가 되는 것과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만족스럽지 않은 첫 인사와 훈장처럼 매단 ‘5대 배제 원칙’

사실 문재인 정부의 첫 인사는 문 대통령의 격식을 깬 소탈하고 파격적인 소통 행보에 비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도덕성을 강조한 정부이기에 더 그렇다. ‘공직 5대 배제 원칙’에 걸리지 않는 인물을 찾기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상징성을 가진 첫 조각만큼은 시빗거리 없는, 흠결 없는 이들로 채워지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것이 우리사회 지도층의 ‘민낯’이다. 일반국민들은 평생가야 단 한 가지도 해당되지 않을 일들을 고위 공직 후보자들은 하나같이 무슨 훈장처럼 주렁주렁 달고 있다. 가장 너그럽게 봐주는 자녀를 위한 위장전입, 그것도 일반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이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새 정부 인선의 실망감에도 불구하고 인사 청문회가 진행될수록 역으로 “이런 청문회가 왜 필요한지...” 하는 장탄식이 나오고 있다. 제기되는 이러저런 의혹에 머리 숙여 죄송하다며 해명하기 바쁜 후보자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지만 청문회에 임하는 국회의 풍경 역시 과거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치 무책임과 후안무치 경연장 같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게는 “지하철 타고 다닌다더니 왜 국회 주차장에 차가 주차돼있냐”는 황당한 질의까지 나왔다. 질의를 한 당사자도 스스로 민망했는지 “이런 것까지 질문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마저 벌어졌다. 이쯤 되면 청문회가 아니라 숫제 개그다.

인신공격·허위 주장·망신주기 치중, 청문회 걸림돌 되다

후보자의 도덕성, 자질 검증은 인사청문회의 요체다. 당연히 엄격하고, 엄정한 검증은 국회의원들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하지만 이에 합당한 청문회를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책에 대한 꼼꼼한 검증으로 적격자를 걸러내기 보다는 도를 넘은 인신공격, 근거 없는 허위 주장, 지루한 반복 질문 등으로 망신주기에 주력하는 게 인사청문회라면 굳이 이런 청문회가 왜 필요할지 싶다. 정당한 검증마저 빛을 바래게 하며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35개 단어 표절 의혹 같은 깨알 검증 덕분에 강 후보자에 제기되고 있는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세금탈루 의혹마저 ‘혹시’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실제보다 더 부풀려지고, 낙마를 기정사실화 해놓고 몰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여성계를 비롯해 일각에서 제기하듯 여성여서 더 가혹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30여 년 전의 35개 단어 표절을 따져묻는 노력을 들인 그 시간에 외교부장관 후보자로서 강 후보자의 약점으로 꼽히는 4강 외교, 북한 대응 등에 대한 정책과 전문가적 식견을 갖췄는지를 깨알처럼 검증하는데 주력했어야 했다.

야당으로서 야성을 발휘하고 견제하는 것, 당연히 필요하지만 무기라고는 ‘묻지마 낙마’를 겨냥한 본질을 흐리는 마구잡이식 억지 주장만으로는 곤란하다. 인선하는 정부도 당사자자도 수긍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무엇보다 대다수 국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매서우면서도 합리적인 청문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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