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는 애 엄마와 오겠습니다"
"다음에는 애 엄마와 오겠습니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6.11.23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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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어린이집 수기공모]교사-고은솔, 학부모-방은씨 대상

세종시 어린이집 연합회에서 교사와 학부모 부문으로 나눠 수기를 모집했다. 세종시 인구 유입 등으로 매년 응모자 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상당히 좋은 글이 들어왔다. 심사위원들이 어려움을 겪을 만큼 치열한 경쟁을 보였다. 교사와 학부모 부문 대상작을 게재한다./편집자 씀

◆교사 부문 - 윤빛 어린이집 고은솔 : "아이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

   윤빛 어린이집 고은솔 교사
글을 쓰기 위해 교사를 하면서 가장 보람되고 감동적이었던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해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었던 공개 수업을 무사히 마쳤을 때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올랐지만 그 중에 내가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날이 떠올랐다.

우리 반에는 이혼하시진 않았지만 두 분이 별거 중이신 가정의 아이가 있었다. 아빠는 두 아이의 교육비를 위해 일용직일을 하셨으며 아이들은 보통 할머니가 돌봐주셨다. 그러다 보니 준비물 챙기는 것을 어려워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자주 놓치기도 하였다. 교사로서 처음에는 준비물도 미리 챙겨주고, 혹시 내일 있을 견학을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한 번 더 전화하며 신경 썼지만 2년 동안 반복되다 보니 포기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어느 날 아이들의 머리를 빗어주는데 그 아이와 동생의 머리에서 머릿니가 생긴 것을 발견하였다. 이번에도 역시 원에서 약을 사서 감겨주고 매일매일 관리해준 덕분에 없어지게 되었지만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며 아이들이 처한 환경이 안쓰럽기도 하고 속상하였다. 그렇게 10월이 되어 부모 참여 수업하는 날이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기를 하고 만들기 활동을 준비하였는데 아빠 혼자 두 아이를 돌보다 보니 왔다 갔다 하며 아이들과 함께 활동하는 모습이 버거워 보이셨다. 아빠가 동생 반에 가서 활동할 때 남겨진 우리 반의 아이를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활동을 함께 하기도 하고, 주변의 부모님들이 함께 활동해주기도 하면서 빈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아이들이 부모님께 준비한 노래를 불러드리는 시간이 되었다. 부모님을 위해 노래를 불러드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울컥울컥 하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모두 애쓰고 있던 그 때, 우리 반의 아이가 노래를 마치자마자 아빠에게 달려가 안겼다. 아빠는 옆에 있던 동생과 큰 아이를 품에 안고 뒤를 돌아 하염없이 우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우리 반의 모든 부모님들, 함께 계시던 선생님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울며 위로했던 것 같다. 또 그런 아빠에게 다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달려가 울며 안기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마자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아빠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아빠에게 어떤 존재인지, 이 세상의 부모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빠는 아이들과 집에 가시면서 2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다음에는 아이들의 엄마와 함께 오겠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겠네요.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가셨다.

 
비록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부모참여 수업을 마무리했지만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부모가 되는 길은 정말 어렵구나 느끼기도 하고, 교사로서 아빠에게 아이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또 그 시간을 계기로 한가족 운동회에서 온 가족이 모두 참여하는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시간을 행복해하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아이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아이에게 교사로서 나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정말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고, 아이들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만나는 많은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엄마 아빠는 어떤 모습인지 알려주며 도움 줄 수 있도록 연구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

◆학부모 부문 - 아이 뜰 어린이 집 방은 : “우리 아이를 키우건 8할이 아이뜰이예요”

   퍼스트 아이뜰 어린이집 학부모 방은씨
지난 주말, 서연이가 다니는 「아이뜰 어린이집」과 인근 어린이집이 연합한 ‘가족 힐링 데이’ 체육 대회가 열렸다.

“서연아! 엄마 여기 있어”
그 순간, 엄마를 발견하고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린 딸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출발 신호에 맞춰 아장 아장 걸어 오다가 중간에 바지춤을 한번 치켜 올리더니, 결승선 앞 엄마를 발견하고 울음이 터진 것이다. 결승선에 꼴찌로 도착한 내 딸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꼴찌여도 대견하고 이쁜 게 엄마 마음인가 보다. 그래도 내심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달렸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집에 돌아와 촬영된 영상을 다시 보았더니, 우리 아이가 천천히 달려온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어린이집 친구들은 선생님이 아이 손을 이끌다시피해서 달렸던 반면 우리 담임선생님께서는 서연이와 친구 손을 꼭 잡게 해 주시고, 두 아이가 넘어지지 않을 속도로 천천히 등을 밀어 주신 것이다.

‘고마우신 선생님, 달리기 하나도 스스로 하도록 배려있게 도와주시는 구나!’

그리고 지난 2년 동안의 어린이집 생활이 새록새록 그려졌다.
2014년 10월... 교사로 근무하던 나는 출산 휴가 3개월이 끝날 무렴 예상치 않게 대학원 파견 근무에 합격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갑작스런 파견 근무 덕에 태어난 지 100일된 안된 갓난쟁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아마 어린이집이 개원한 이후로 가장 어린 아이가 입학한 게 아닐까 싶다. 오전에만 어린이집에서 지내고, 오후에는 친할머니가 돌봐주시기로 했지만 등원할 때마다 아이를 두고 오는 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다.

같은 어린이 집에 다니는 학부모님들도 저렇게 어린 아기가 어린이집에 다닌다고 안스러워 하셨다. 어린이집 꼬맹이 언니 오빠들도 까치발을 들고 아기 침대에 누워있는 서연이를 구경했다고 한다. 이렇게 불안해하는 엄마 마음을 읽으셨는지 원장님께서 직접 아이를 맡아주셨다. 그리고 매일 매일 방긋 방긋 웃는 아기 사진을 보내 주시기도 하고 어린이 집 일상을 카페 활동을 통해 하나하나 들려주셨다.

2016년 10월...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나가고, 어느새 2돌이 지나 지금은 26개월 풀잎반 언니가 되었다. 우리 집 수다쟁이 서연이는 엄마를 만나자마자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쏟아 놓는다.
“엄마 OO이는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갔대요.” 산책하다가 나무에 물을 대는 관수 시설을 보고 “엄마 나무가 물 먹는 대요”

누가 알려줬냐고 하니깐 어린이집에서 배웠다고 했다. 우리 집 안전 대장도 꼬마 박서연이다. TV에서 불이 나는 장면이 방송되거나, 싸이렌 소리만 들려도 “불났어요, 불났어요. 얘들아 빨리 나가자”하면서 입을 막고 몸을 숙이고 밖으로 대피를 한다. 신호등을 건널 때도 빨간 불에서 멈추면 바로 “엄마 왜 멈추는 거예요? 초록 불에서 건너요?”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어본다.

또, 성교육은 어찌나 잘 받았는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 앞에서 기저귀 갈기를 창피해했다. 그리고 밥만 많이 먹으면 올챙이 같이 볼록한 배를 훌렁 훌렁 걷어 보여주던 아기가 “소중한 곳 이예요”하면서 안보여 주려고 한다. 이렇게 우리 아이는 아이뜰을 통해서 세상을 하나 하나 배워 나갔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온몸으로 자연체험도 했다. 매일 바깥놀이를 나가면서 강아지풀도 알아 엄마 아빠를 간질이기도 하고, 나뭇가지 돌멩이와 친구가 되어 놀고, 떨어지는 낙엽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해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또, 특별활동인 오감 수업을 통해 미꾸라지도 만져보고, 콩깍지 까보기도 한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걷기 대회도 빠질 수 없는 아이뜰 행사다. 도시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는 더 없이 소중하다.

아이의 어린이집 일상은 스쳐가는 절기와 계절을 다시 느끼고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 올 초 정월 대보름에는 어린이집에서 보자기로 예쁘게 포장한 각종 견과류를 선물로 받아 왔다. 그 때서야 ‘맞다, 대보름 이였지’하고 무릎을 탁 치고 깨닫는다. 지난 추석엔 고물고물한 손으로 만들어 온 송편과 부침개로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절대 먹을 것을 양보하는 법이 없는 아이가 엄마 보여 준다고 먹고 싶은 것도 꾹 참고 가져온 것이다. 원장님께서는 아이 생일, 어린이 날, 어버이 날 등등도 그냥 넘어가시는 법이 없다. 그리고 1달마다 뮤지컬 관람도 가고 특별활동으로 체육도 꾸준히 한다. 이렇게 서연이의 어린이집 생활은 바쁜 일상으로 건조했던 우리 가족의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우리 서연이 또래들 중에는 집에서만 있어서, 바깥놀이 때 땅을 디디는 것조차 어색해 하고, 집안에서 책만 읽어서 지문이 닳을 정도인 꼬마 친구도 있다. 그런 아이의 엄마들에게 어린이집 등원을 권유하면, 미세먼지가 심해서 바깥놀이도 못 나가겠고, 요즘 어린이집을 어떻게 믿느냐면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었던 일을 말로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망설여진다고 말한다.

잊을만하면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아동학대 소식들 때문에 부모들이 불안에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훌륭한 인성과 자질을 갖춘 원장님과 고생하시는 선생님들까지 한 번에 매도되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든다. 적어도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정말 좋으시다. 유난히 피부가 연약한 서연이에게 귤피로 목욕하면 좋다고, 손수 유기농 귤 껍질을 말려 보내주시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가 작은 일을 보든 큰 일을 보든 물로 씻겨 주시고, 로션도 엄마보다도 더 자주 꼼꼼히 챙겨 발라 주신다. 조금이라도 아파서 결석이라도 하면 꼭 잊지 않고 안부전화도 주신다. 또한 유기농을 고집하는 어린이집 간식과 급식도 최고로 준비해 주신다. 정말 진심으로 원장님은 큰 엄마, 선생님은 이모 같이 사랑을 주시는 것 같다.

이 글을 마치는 지금, 로버트 풀검의 저서「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이 기억이 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은 어린 시절에 다 배웠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이 한 명을 키워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아이도 아이뜰을 통해서 자연을 알고 세상을 배워 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엄마인 나 또한 서연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하나 하나 다시 배우고 다시 살아간다. 누군가 우리 아이를 보면서 언제 이렇게 키워 냈냐고 물어본다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우리 아이를 키우건 8할이 아이뜰이예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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