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농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5.12.04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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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리 학술조사한 김호걸 박사, "이주과정 추적은 최초 기록"

   반곡리 130 세대의 이주과정을 추적조사한 김호걸 박사는 "고향이라 더 많은 애착을 가지고 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꿈에는 반곡에서 살고 있다. 농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곡리 주민들에게 농사는 여전히 10년 동안 진행형이었다. 이제는 세종시 금남면 반곡동이 된 이 마을 주민 250여명의 이주과정을 추적한 김호걸 박사(47,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4일 “연령, 지역에 상관없이 이주민들에게 농사는 여전히 천직이었다”고 말했다.

금남면 영대리 출신인 그는 2005년에 이어 올 한해 동안 반곡리 주민들의 위치추적으로 변화되는 생활상을 조사했다. 꼭 10년 만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신도시나 댐 건설로 이주한 예는 많지만 그런 분들의 삶을 추적해서 조사보고서를 낸 적은 없었습니다. 이번 조사는 실상을 제대로 파악해서 기록으로 남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김 박사는 토지 수용으로 불가피하게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삶을 터전을 내줄 사 밖에 없었던 반곡리 주민들의 이주과정에서 애환과 이주 후 변화상을 조망했다는 점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10년 주기를 두고 변화상을 추적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건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2006년부터 이주를 시작해서 주로 인접한 대평리로 많이 갔습니다. 그 후 재 이주를 통해 행복도시로 간 주민들도 있고 조치원, 공주, 논산, 대전 등 가까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분도 있습니다.”

이주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은 혈연, 지역, 학연으로 엮어진 이른바 ‘이익조직’이 지속, 또는 해체, 그리고 새로운 조직의 형성 등 3가지 유형으로 변화한 것을 조사를 통해 알아냈다.

요컨대 반곡리 주민들이 새로운 거주지역과 상관없이 연령대별 모임과 금호중 동창모임 등은 지속되는 형태의 유지되었다. 부녀회, 역시 ‘좋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재 단장되어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다. 다만 상사 시 품앗이를 하는 ‘연반계’는 해체됐다.

“이런 과정을 조사하면서 그 분들이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알게 됐습니다. 결론이 바로 ‘농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였습니다. 다들 조그마한 텃밭이든 그렇지 않으면 주변 공터를 활용해서 평생 동안 해왔던 농사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반곡리 130세대가 재정착한 곳은 대평리 약 44세대, 행복도시 17세대, 대전 15세대, 조치원 10세대, 공주·논산 5세대 등 91세대는 통계에 잡혔다. 나머지 세대는 사망으로 세대가 소명하거나 아예 먼 곳으로 이주해 면접이 이뤄지지 않았다. 행복도시에는 가재마을 9단지와 도램마을 7,8단지에 주로 터전을 잡았다. 이들 중 일부는 대평리에서 재 이사를 한 세대로 파악됐다.

“제 고향에서 학술조사를 하는 만큼 애착을 가지고 했습니다. 그냥 정보만 얻어가는 게 아니고 농사철에는 밭일도 함께 했고 김장때는 배추도 씻어 주는 등 생활을 같이하면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고향이라서 애착이 더했다는 김 박사는 금호중, 공주대 역사교육과를 나와 북경 사범대에서 민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올해 조사한 내용은 내년 6월쯤 정식 보고서로 나올 예정이다. 2005년 조사 기록은 이미 ‘반곡리’라는 제목으로 모두 4권으로 출판됐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세종시와 공동으로 내년에 보고서 발간과 함께 세종시를 주제로 한 특별전과 민속축제 한마당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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