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피해자는 누구인가
범죄 피해자는 누구인가
  • 심은석
  • 승인 2015.09.1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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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석의 세상사는 이야기]시골 집 기승부리는 수확물 도둑

   심은석 영동경찰서장
범죄 피해자는 누구인가?

한 여름, 산과 들녘에는 뜨거운 햇볕을 듬뿍 받은 농작물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팔순을 바라보는 구부러진 할머니가 마을 어귀 큰 길에서 이어지는 진입도로에서 일을 하고 있다. 허리를 구부려 땀에 젖은 적삼이 나풀대며 빨간 고추를 도로위에 널고 있었다. 비닐을 바닥에 깔고 신문지를 그 위에 얹고 뜨거운 콘크리트 열기와 햇볕에 빨간 고추가 더욱 빨개진다.

저녁에 별이 성기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 밤, 할머니는 몇 번을 밖을 보다가 고추를 거두지 않고 길가에 그대로 두었다. 시골 마을이라야 10여 호, 다 아는 집인데 누가 고추를 훔쳐가랴? 하루는 더 두어야 바싹 마를 거라는 생각, 건조실에 찐 고추보다 햇볕에 말리면 빛깔도 곱고 비싸게 팔수 있다. 홀로 사는 할머니는 허리 아파 뒤척이며 잠자리는 어지러웠다.

새벽에 일어나 밖을 쳐다보다가 고추가 없어진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고추 밑에 깔아 두었던 비닐을 말아서 어디론가 떠난 자동차 바퀴 자국만 남아 있다. 이른 봄부터 모종을 하고 풀을 뽑고 고통을 인내한 빨간 고추였기에 할머니의 분하고 상한 마음은 고추보다도 맵고 텁텁하였다. 혹시 누가 다시 갖다놓을까? 나처럼 가난하고 혼자 사는 노인네의 고추를 훔쳐가고 맘이 편할까? 하는 막연한 기다림으로, 오랫동안 동네 어귀를 쳐다본다.

농사나 소를 키우는 시골에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농산물이나 소, 개 도둑이 많아진다. 마을 도로가 대부분 사방으로 잘 나 있고, 큰길에서 가까이 있어 차량을 이용한 절도범죄는 끊이지 않는다. 특히 적외선 감지기나 CCTV가 없는 한적한 농촌지역은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 피해 현장에 나가 할머니를 뵙고 위로한다고 상한 마음 어찌하랴?

“꼭 범인을 잡아서 고추를 찾아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겐 작은 피해일지 모르나 그 할머니에게는 큰 손실이었고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치유 되지 않는다. 이처럼 생활주변의 절도 피해도 고통스러운데 하물며 살인, 강도, 성폭력 등 강력 범죄 피해는 상상하기 어렵다. 28년간 경찰관으로 다양한 범죄피해자를 만나 위로하고 같이 아파하고 공감하려 노력했다.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는 물적 피해 뿐 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피해, 그리고 2차 피해도 심각하다. 특히 성범죄의 피해는 수사 과정이나 재판, 언론보도를 통한 추가 피해를 입게 되어 성폭행을 당하고도 신고도 못하고 평생 피멍이 드는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경찰이나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보호를 강조 하여 과거보다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범죄피해자는 형사법상 증거 수집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사법기관의 행태는 잘 고쳐지지 않고 오히려 2차 피해를 당하고 원상회복은 요원하다는 하소연을 듣는다.

그동안 형사법과 제도가 범죄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에 치우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 범죄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인권보호, 원상회복 등의 역할을 경찰이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범죄 피해회복과 2차 피해의 방지, 심리치료와 원상회복에 사법기관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높아졌다.

특히 경찰관서 여성 청소년과는 아동, 여성, 장애인이 관련된 피해나 성폭력, 가정폭력, 아동학대, 학교폭력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과 휘발성 있는 사건을 주로 처리할 때마다, 피해자의 보호와 비밀 보장, 2차 피해 예방에 각별히 주의 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아 행복지수도 높은 나라라는 노르웨이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노르웨이 사법당국은 2011년 7월22일 죄 없는 어린아이 77명을 무참히 살해한 브레이빅(35세)에게 21년형을 확정하고 수감했다. 그에게 살해당한 고인들에 대해 어떻게 보상하고 사후 관리를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며칠간의 추모와 국민적인 공분, 그걸로 끝이었다. 사람들의 관심도 사라졌다. 테러범과 정신 이상자에 대한 획기적인 규제방안은 별로 관심 없어 보인다.

노르웨이 정부는 범죄인 한명을 수용하는데 년 간 14억 원의 비용을 쓴다. 모든 편의 시설을 갖추고 깨끗한 수용실은 안락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흉악한 살해범은 성인 게임기요구, 용돈 인상 등 12항을 요구하면서 수감 생활이 불편하다며 날마다 항의 한다고 한다. 오히려 범행 당시에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무죄를 주장하며 변명하였다고 한다.

피해자들과 유가족, 선하고 죄 없는 죽은 어린이들에 대한 뉘우침이나 죄책감은 없어 보인다. 어린 새싹들인 77명을 살해한 범죄인을 모든 것이 완비된 독방 교도소에서 편안히 생활 할 수 있게 보장 된 나라여서 살기 좋은 나라인가? 서구 선진국이라는 그들의 사법체계를 우리나라도 똑같이 적용하면서 범죄자의 인권을 철저히 보장해야 하는 것이 문명국가임을 믿는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기본적 인권과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죄는 밉지만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천부 인권의 소중함을 생각한다.
몇 년 전 23여명의 죄 없는 여성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형수 유영철은 교도소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하면서 성인잡지의 제공, 외부 병원 치료 등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국민 권익위원회등에 수차례 제출하고 교도관을 괴롭히며 끊임없이 자기 권리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희대의 탈주범으로 강도 살해범이었던 신창원도 수감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하며 자기 범죄를 미화하는 자서전을 쓰거나 각급 수사기관에 수차례 낭비적인 정보공개를 요구하여 업무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인권 선진국인 우리나라도 흉악범이 수용된 교도소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 범죄자들의 인권보장과 피의자에 대한 무죄 추정과 방어권 보장이 형사소송법의 명제 이다. 얼마 전 영동읍내 작은 식당에서 무전취식으로 검거된 피의자가 불구속으로 수사 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돌변하여 수사관에게 욕설을 퍼 붇고 난동을 부린 사건이 있었다.

조용히 조사 받으면 바로 석방될 수 있었는데 그는 일부러 난동을 부려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무전취식으로는 교도소에 수감 될 수 없으니 공무집행 방해범으로 처벌해 달라고 오히려 하소연하는 피의자를 보았다. 추위와 무더위를 견뎌야 하는 일부 노숙자들은 일부러 구속되어 수감되기를 원한다고 한다.

실제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은 피폐하기도 하다. 영동 경찰서는 대용 감방으로 구치소 역할을 하는 광역 유치장을 운영하고 있다. 근무 직원들은 어지간히 덥지 않으면 에어컨을 틀지 못해도, 유치장 안은 시원하고 쾌적하게 해 주어야 한다. 늘 유치장에서의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처럼 범죄자의 인권과 기초적인 생활보장을 강조하면서 그동안 범죄 피해자들은 방치되었던 것이 현실이다. 범죄 피해자의 고통과 원혼은 어떻게 보상하는 것인지, 진정한 사법정의는 무엇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이런 사례들을 접할 때마다 무엇이 진정한 정의이고 인권옹호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의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선량한 시민과 흉악한 범죄자, 모든 것이 파괴된 범죄피해자도 남겨진 유가족도 국민이다. 자칫 피의자의 인권옹호에만 매몰되어 증거수집이나 공판과정에서 피해자를 절차의 객체로만 취급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범죄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이 작년 12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여러 가지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경찰에서는 창경 70주년이 되는 금년을 “피해자 보호 원년의 해”로 정하고 경찰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피해자의 인권과 피해회복, 원활한 사회복귀를 돕는 피해자 보호활동에 노력하고 있다.

특정 범죄의 신고, 증언 등과 관련해서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경찰이나 검찰에 일정한 ‘신변안전조치’를 신청할 수 있고, 조사를 받는 경우에도 ‘인적 사항의 기재 생략’을 요청할 수 있다. 또한 각 지방경찰청에 피해자심리전문요원과 스마일센터 등을 이용하여 ‘범죄로 인한 심리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고, 법률상담이나 손해배상청구 등의 소송지원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범죄로 인한 사망, 장해, 중상해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배상을 받지 못한 경우 ‘구조금을 신청’할 수 있고 소정의 심사를 거쳐 생계비, 치료비, 주거 지원 등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뺑소니 차량이나 무보험 차량으로 인해 사고를 당한 경우에는 손해보험회사에 보상을 청구할 수 있고 자동차 사고로 사망·중증후유장애를 입은 경우에도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성폭력 범죄와 관련해서는 성폭력피해자통합지원센터를 통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고 형사절차에 대한 정보제공 등 법률자문을 받을 수 있다.

범죄가 발생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범죄피해 입증 자료 등을 구비해 가까운 경찰관서의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신청하면 ‘범죄 피해자지원 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보상금액을 받는 제도를 시행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민들이 피해를 당하고도 이런 제도를 알지 못하거나 시효가 지나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있어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경찰에서는 수사 과정에서 범죄피해자의 알 권리와 존중받을 권리 등 실질적인 피해자보호가 이루어지고 사건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된다. 범죄피해자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여 경찰관서 출석보다는 직접 방문해 피해조서 작성 및 사건처리 중간 통보, 안부 전화 등 피해자의 정서적인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 전북 장수군은 지자체에서 범죄 피해자 보호 조례를 제정하여 시행중이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법기관과 정부, 지자체의 인식전환과 제도적 조치는 늦은 감이 있으나 당연한 조치다. 단순히 선언적 의미로 범죄 피해자에 대한 대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범죄 피해자의 원상회복과 일상생활로의 원활한 복귀를 위한 보다 세밀한 대책이 요구 된다 하겠다.

광복 70주년 대한민국 경찰은 1945년 광복과 함께 태어나 건국경찰로 대한민국 건국의 바탕이 되었고 6.25 전쟁 때는 구국경찰로 북한 공산집단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켰고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격동기에는 자유 민주체제를 지켜온 호국경찰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 전사나 순직하신 13,000분의 선배 경찰관들은 오늘날 선진 민주경찰의 초석이 되셨다.

올해 경찰에서 특단의 노력으로 추진하는 범죄 피해자 보호 원년의 해 선포와 각종 시책의 추진은 창경 70주년을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인식과 발상의 대 전환이며 시대적 소명이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원상회복을 통해 사법정의와 치안 공공재의 굳건한 바탕이 되기를 소망한다. 대한민국 경찰의 멋진 새 출발을 축하하고 그동안의 성과와 헌신에 경의 드린다. 

<필자 심은석은 초대 세종경찰서장으로 역임하고 현재 영동경찰서장으로 재직 중이다. 공주 출생으로 공주사대부고, 경찰대학 4기로 졸업하고 한남대에서 행정학박사를 취득했다. 지난 7월 시집 '햇살같은 경찰의 꿈'을 출판했고 한국 문학신문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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