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원혼 천도해 나라의 안녕 기원
떠도는 원혼 천도해 나라의 안녕 기원
  • 신도성 기자
  • 승인 2014.11.02 2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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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비구니청림회 안면도에서 ‘‘갑오년 국운융창 합동 수륙대재’ 봉행

11월 1일 기지포해변에서 사부대중 2천여명 동참

효경 대전비구니청림회장 스님이 갑오년 국운융창 수륙대재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전비구니청림회(회장 효경 스님)가 주최한 ‘갑오년 국운융창 합동 수륙대재’가 11월 1일 오전 10시부터 태안 안면도 기지포해수욕장에서 대전지역 등 18개 사찰에서 모인 사부대중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됐다.

대전지역 조계종 비구니 스님들의 모임인 대전비구니청림회는 이날 갑오년 국운융창 이웃돕기 합동 수륙대재를 개최해 먼저 가신 유주무주 고혼들과 선망부모 영가들이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했다.

이번에 수륙대재가 열린 태안 안면도지역은 지난 2007년 겨울 최악의 기름유출로 무수한 생명들이 죽은 곳으로 2009년 7월 4일 청림회에서 처음으로 이들의 넋을 기리고 천도하기 위해 수륙대재를 연 데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열었다.

청림회장 효경스님은 “올해는 특히 세월호 참사와 여러 가지 어려운 일로 인해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어 안타깝다”며 “지난 역사를 보면 나라가 혼란스럽고 국민이 서로 화합하지 못할 때 왕궁에서부터 수륙대재를 봉행해 국운융창을 기원한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재를 올리자"고 말했다.

이날 수륙대재는 부처님의 위신공덕으로 악도에서 헤매는 중생을 건진다는 뜻이므로, 먼저 바다와 육지에서 돌아가신 고혼을 바닷가에 나가 청혼하는 의식으로부터 시작됐다. 이어 불보살을 모시는 시련의식과 부처님께 공양하는 불공, 모든 중생을 위하는 설법, 그리고 영혼들에게 베푸는 시식, 중생에게 베푸는 회향에 이어 기지포 해안 백사장에서 사부대중이 마지막 위패를 태워 영혼을 보내는 소전의식으로 진행했다.

특히 이날 재가 끝날 무렵에 산사람과 영혼 그리고 모든 중생에게 베풀고 화합하는 행사인 회향에서 단체 승무춤에 이어 스님의 애절한 회심곡에 참석한 신자들이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봉창하여 감동을 주었다.

참석한 신도들은 기지포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지역 특산물 팔아주기 행사를 가졌으며, 청림회에서는 기지포해수욕장번영회에 발전기금 100만원을 전달하는 한편, 태안군 불우이웃을 위해 태안군에 자비의 쌀 1500㎏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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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대재(水陸大齋)란 무엇인가?

수륙대재는 일체 고혼을 천혼하는 공양의례.로 정치적인 격변기에 억울하게 희생된 원혼을 국가적 차원에서 진무하기 위해 생성된 불교의례이다. 여기에는 내생(來生)을 받지 못하고 떠도는 수많은 원혼을 집단적으로 해원시키며, 동시에 신도들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희구가 담겨 있다.

수륙재 의식은 중국 양나라 무제(武帝)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불교에 대한 신심이 두터웠던 무제는 신승의 계시에 따라 유주무주(有住無住, 떠도는 넋)의 고혼들을 널리 구제함이 제일가는 공덕이라 생각하고, 승려들과 상의한 후 스스로 수륙의문(水陸儀文)을 짓고 재를 설(設)한 것이 처음이라고 전해진다.

고려 때는 국중수륙대재(國中水陸大齋)를 실행하였고, 조선의 태조도 진관사(津寬寺)와 석왕사에서 시행하였다. 수륙재는 조선조 중엽까지 국가의례로서 전승되던 중 유생들의 반대로 중단되었다가 오늘날에는 민중적인 의례로 전환되어 사찰 마당이나 강 또는 바다에서 시행하고 있다. 수륙재의 수륙은 여러 신선이 흐르는 물에서 음식을 취하고, 귀신이 깨끗한 땅에서 음식을 취한다는 뜻에서 따온 말이므로 청정한 사찰 또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행하여도 무방하다.

1599년 임진왜란 이후 민심수습을 위해 국가 위령제로서 수륙재를 개설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승수군 300여명이 참전하였고, 종전 후의 피폐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선조대왕이 600여석의 쌀을 공양하여 자운 스님과 300여 대중, 그리고 통제영의 모든 백성이 합동으로 천혼재를 지내게 된 것이 연원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충무공이 전사한 남해 노량에서 청혼을 하여 전라좌수영 영내에서 지내다가 나중에는 흥국사가 중창되면서 흥국사로 옮겨 300여 년간 시행되었다. 1896년 좌수영 폐지와 함께 승군도 해체되면서 수륙재가 쇠퇴하다가 일제강점기에는 거의 중단되다시피 하였으며, 해방된 이후 부정기적으로 시행되었다. 현재는 매년 진남제의 행사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고, 대전에서는 청림회가 수륙대재를 여는 등 전국적으로 큰 사찰에서 행하고 있다.

 유주무주고혼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영가를 모신 위패와 시련, 번들이 제단에 입장하고 있다. 
 서해바다 등대와 번에 적힌 글귀가 잔잔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스님들의 단체승무가 유주무주 고혼들을 위로하고 있다.

 청림회 합창단이 찬물가를 부르고 있다.

 재를 마치고 소각을 위해 드넓은 안면도 기지포해수욕장을 향해 걸어가는 신도들.

  백사장에서 나팔을 불며 소전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백사장 위에서 원을 돌고 있는 스님과 신도들
백사장 모래 위에서 위패 소각을 하며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다. 

 백사장 소전 의식을 참관하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 부부.

 공주에서 딸들과 온 류현순 여사(80)가 휠체어에 탄 채 수륙대재 의식을 바라보고 있다. 
 효경 스님이 태안군에 자비의 쌀 150포를 전달하고 있다. 

 위패 입장 

시련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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