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풀이 무속인으로 유명한 김향란씨(58).
그가 30여년째 불우이웃돕기를 하는 것은 젊은 시절 가난과 싸웠던 쓰라린 경험과 보은(報恩)때문이다. 지금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헐벗고 굶주렸던 그 시절, 동네 분들이 십시일반 도와준 오래된 기억과 가난의 혹독함을 누구보다 잘 알아 불우이웃을 수시로 찾아가고 있다.
“집안이 너무 가난했어요. 아버님은 편찮으셨고 남편 벌이는 시원찮고,,, 큰 애를 낳고 읍사무소에서 밀가루를 타서 먹었어요. 동네 분들도 너무 어려운 가운데 아이를 낳으니까 쌀이니 보리쌀이니 가져다주었어요. 그 기억이 제가 지금 불우이웃돕기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종시 조치원읍 봉산리에서 산신암을 지키는 그는 유난히 노인분들을 돕고 어려운 이웃에게는 쌀과 방세를 가져다주고 있다. 노인, 쌀, 방세는 역시 찌들었던 어린 시절과 관계가 있다. 백일이 되기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품속에 자란 어린 시절은 노인정을 찾게 만들었다.
“굶어보면 3일째가 가장 힘듭니다. 그래서 이웃을 찾을 때는 꼭 쌀을 가져갑니다. 가난하면 제일 참기 힘든 게 굶주림이거든요. 저는 제(祭)를 자주 지내다 보니 산신께 바친 과일과 과자 등 음식이 많습니다. 그걸 저희 할머니 생각을 하면서 노인정을 찾아 나눠드립니다.”
굳이 이웃돕기 품목에 방세(房貰)를 넣은 것도 주인집에 당했던 고통에서 비롯됐다. 방세를 내지 못해 식당에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살았던 기억과 마음의 상처로 평생동안 남아있는 집주인의 횡포는 배고픔보다 오히려 더했으면 더했다.
“가족이 방이 없으면 뿔뿔이 흩어져 버립니다. 저는 너무 잘 알죠. 그 고통을... 그게 생이별입니다. 배고픔 못지않게 가난이 주는 아픔이죠. 양식이 떨어지는 집이면 당연히 방세도 밀려 있습니다. 방세는 6개월 치를 내줍니다. 그래야 한 숨을 돌립니다.”
무병인줄 모르고 9번이나 수술했던 고통에다 찌든 가난, 출산으로 이어지는 그의 초반 인생은 없는 이웃과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만들어 냈다. 가난을 모르면 고통도 모른다. 그는 그걸 알았다. 무속인으로 이모작 인생을 살면서 마음도 있었지만 마침 여건도 되었다. ‘제’(祭)를 올리면 음식이 나왔고 법당 한켠에 절미(節米)봉투처럼 이웃돕기용 함을 별도로 마련했다. 매일 조금씩 그 통속에 신도들과 함께 돈을 저축한다. 그게 모이면 바로 도와줄 대상을 찾아 실천에 옮긴다.
“기분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요. 한번 도와주고 나면 바로 돌아서서 하루라도 빨리 다시 찾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는 이유도 제가 너무 홀가분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마음에 빚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30년을 이어오게 한 힘이 된 것입니다.”
김향란씨는 인터뷰 내내 “이런 건 소리 없이 해야 하는데...”라고 여러 차례 답변을 망설였다. 그리고 “마음에 속임이 없어야 한다”는 말도 몇 차례 강조했다. 가난을 얘기할 때는 주저 없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지만 세상은 좋은 일은 알려야 각박함이 정화되고 흐름이 된다.“꼭 약속드릴께요.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한 끝까지 할께요. 제 주변에 있는 분들을 우선적으로 힘이 닿는데 까지 돕고 싶습니다. 그게 어릴 적 가난을 잊고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은 책상에는 감사패가 널려 있었다. 남을 돕는 일은 ‘태산에 오르지 않고 뫼만 높다’고 하기 십상이다. 남에 대한 배려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회가 선진사회다. 주당풀이 3대 전수자 김향란씨는 그걸 실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