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기관 추진대책만 열거 30여분 만에 끝나
유기적 공조 논의없이 원론적 대책 되풀이
대전 모 여고 같은 반 친구 2명의 잇따른 자살 비보가 거센 충격파를 낳고 있다.
대전시교육청과 충남도교육청은 물론 대전시와 대전시의회, 경찰까지 나서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에 골몰할 정도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결에 나선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재발 방지를 위한 유관기관 간 유기적 네트워킹이나 실효적인 방안 도출보다는 ‘어른들의 걱정’수준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번 만큼은 지속가능하고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을 수 있게끔 유통기한 없는 공조가 요구된다.
사건을 계기로 학교폭력 전반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현재 검토 중이거나 발표한 개선책들이 하나같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미봉책에 불과한 상황이다.
염홍철 대전시장과 이상태 대전시의회의장, 김신호 대전시교육감, 이상원 대전경찰청장은 18일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대전을 대표하는 기관장들이 특정된 사안을 두고 한자리에 모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에서는 애초 취지였던 협력체계 구축 등의 공동 대응 논의는 없었고, 각 기관에서 추진해온 대책들만 각자 열거한 채 30여분 만에 끝났다. 이마저도 대부분 기존의 학교폭력 관련 방안을 손질한 수준의 논의로 학교폭력 근절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마저 사고 있다. 대책 발표 시점을 놓고 엇박자를 연출하기도 했다.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사전 업무공조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앞서 17일 김신호 교육감 주재로 열렸던 대전 초·중·고교 교장단 긴급회의에서도 원론적인 내용만 논의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배포된 자료에 따르면 학생자살·학교폭력 관련 주요대책은 ▲자살예방을 위한 위기관리위원회 구성 및 활동 ▲학생, 학부모, 교직원에 대한 자살예방 교육 ▲폭력 등에 대한 대처 교육 강화 ▲고 위험군 학생 지도 및 관리 ▲학교폭력신고전화 117 일원화 ▲건전한 졸업식 대책점검단 구성·운영 및 예방지도 ▲방학 중 고위기학생 및 일반학생 생활지도 등이 골자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동안 교육당국의 위기학생 관리 및 지도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개선책 역시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시달한 계획이거나 기존 대책을 강화한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충남도교육청이 발표한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학부모 교육 의무화’ 방안 역시 실효성이 의문이다.
도교육청은 학부모 교육 전문 강사를 확보한다는 계획이지만 현재의 부족한 인력구조 등을 감안한다면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또 부모의 자녀 양육 및 지도 방법 기술을 익히도록 하면 학교폭력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는 게 도교육청의 설명이지만 학부모 등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로 근본적 처방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도교육청이 가정폭력과 사회폭력을 줄이기 위해 펼친다는 캠페인 및 교육 역시 각종 사건이 터져 나올 때마다 늘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허울만 그럴듯한 대책을 내놓기 보단 학교폭력 및 학생자살에 대한 근본적인 현실진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여론이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급조된 개선책을 내놓기보다는 교육당국의 무력한 현실을 반성하고 근본 원인을 파악한 뒤 시간을 두고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