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님, 이거 얼마 만이유~"
"성님, 이거 얼마 만이유~"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6.05.30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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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석교리 주민들, 10년 만에 만나는 돌다리 만들고 향수달래

   2007년 고향을 떠난 석교리 주민 150여명이 29일 옛 금석초등학교인 사랑의 일기 연수원에 모여 향수를 달래고 옛정을 나눴다.
“성님! 어떻게 지냈슈.”
“이거 얼마 만 입니까. 고향 어른들을 만나니 너무 좋습니다. 그려.”

돌다리 마을사람들이 10년 만에 만났다.

담 하나를 경계로 이웃의 정을 나눴던 형님과 아우, 그리고 아저씨와 어른 분들이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면서 짧은 하루동안  만남을 가졌다.

그 이름은 ‘돌다리, 10년의 만남’이었다.

이제는 행복도시가 되어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옛 향수를 잊지 못하는 금남면 석교(石橋)리 마을 주민 150여명이 29일 오전 11시 '사랑의일기 연수원'에서 회동했다. 어린 시절 앞 집 아저씨가 다녔고 내가, 동생이 글을 깨우쳤던 옛 금석초등학교가 바로 일기로 사랑은 전하는 연수원이 됐다.

어느 한 곳인들 추억이 없는 곳이 있으랴마는 도시화로 재편성된 석교리 일대에 그나마 금석초등학교가 남아있고 그곳에서 향수를 찾아가는 모임을 갖는 자체가 즐겁기 그지 없었다. 석교(石橋)는 예전에 동네를 가로지르는 냇가에 놓인 돌다리가 있어 그걸 명칭으로 사용했다.

이날 행사에서 식순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빈 소개니 국민의례는 지나가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만남 자체가 고향을 돌아보게 만들고 이제는 흩어져 사는 어른들을 한 곳에서 뵐 수 있다는 게 의미를 새롭게 했다.

제주에서 온 김홍기 노인(70)은 “고향 분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만사 제쳐 놓고 한 걸음에 달려왔다” 며 “이곳에서 옛 친구들을 한꺼번에 보니 눈물이 난다”고 감격했다.

만남의 반가움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제작한 옛 석교리 생활상을 기록한 영상물을 보면서 배가되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을 빌었던 탑신제와 쥐불놀이, 모내기와 산신제 등은 잠시나마 10년 전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이날 모임에서는 한번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많다는 의견을 취합, 매년 5월에 한차례씩 정례 행사를 갖고 고향을 떠나온 향수를 달래는 시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동네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자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임상전 세종시의장, 신상철 남세종 농협 조합장, 이은영 세종시 생계조합장 등이 주민들과 함께 옛 정을 나눴다.
회장으로 선임된 전 석교리 노인회장 출신인 심규만 옹(80)은 “석교리는 예로부터 경로효친사상이 강한 마을이었고 이 마을에서 자란 후손들이 어른을 공경했다” 며 “오늘 처음 만났지만 모임이 지속되어 매년 한번씩이라도 그리운 얼굴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복도시에 삶의 터전을 내 주기 전 석교리에는 120가구에 480여명이 살고 있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용포리 두진 아파트에 거주하고 일부는 도램마을 행복아파트, 종촌동 이주민 아파트와 천안, 제주 등 전국에 흩어져 있다. 

백제시대에는 소비포현(所比浦縣), 고려때는 공주군, 조선말에는 공주군 명탄면 지역이었던 석교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 연기군 금남면으로 편입된 곳이다. 풍수지리적으로 산의 오른쪽구릉에 우 백호가 있고 왼쪽 구릉이 좌 청룡이 어서 오른쪽인 여자의 기(氣)가 강해서 여자들이 성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을의 지형은 돼지가 드러누워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형국이다. 행복도시 건설로 이제는 집현리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게됐다.

   석교리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날 지신 밟기를 하고 있다. 이날 옛 석교리의 생활상이 사진으로 보여줘 향수를 달랬다.
   동짓날을 앞두고 팥죽을 쑤고 있는 석교리 옛 주민들
   탑신제를 준비하고 있는 주민들

   이날 10년 만에 만난 석교리 행사에는 주민 15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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