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는 제 공직생활 종합판이죠"
"세종시는 제 공직생활 종합판이죠"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6.04.12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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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충재 행복청장, "후대에 길이 남을 도시 만들어야..."

   이충재 행복청장은 "세종시는 후대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도시가 되어야 한다" 며 사명감을 강조했다.
행복청장 이충재(61).
자그마한 키에 이웃집 아저씨처럼 생긴 얼굴을 떠올리면 맨 먼저 생각나는 건 ‘입지(立志)전적인 인물’이다. 7급에서 시작한 공직이 차관급까지 올라가 고졸신화를 기록한 사람이니 통념상 그렇게 평(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더구나 행복청 차장과 청장으로 관직이 이어지면서 무려 6년째 신도시 건설에 책임을 맡고 있으니 여러 면에서 신화(神話)를 쓰고 있는 셈이다.

세종시 건설의 한 축을 담당하는 행정복합도시건설청장 인터뷰는 그동안 우리 쪽에서 몇 차례 요청했다. 성사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세종시 한 구석에 있는 작은 인터넷 신문 ‘세종의 소리’와 대담을 한다는 건 아마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판단이 그동안 청장들이 거절 이유였던 것 같다.

이충재 청장과는 가끔 스치듯 만났다. 행사장이어서 의례적인 인사가 대화의 전부였다. 인터뷰 날짜가 잡히고 어떤 걸 물어볼까 고심을 했다. 대통령과 특별 인터뷰도 했었고 김대중 평민당 총재, 김종필 자민련 총재, 그리고 정주영 현대회장, 김우중 대우회장 등 소위 유명인사와 대전·충남지역 차세대 인물 25인과도 대담, 또는 인물 탐구를 해봤지만 묘하게도 작은 설렘은 감출 수 없었다.

행복청장에 이르기까지 인생역정, 행복청 업무, 그리고 항간에 떠도는 얘기 등으로 나눠 내용을 구성했다. 몇 차례에 걸쳐 질문 내용을 복기(復碁)하고서 그를 만났다.

“어서 오십시오. 김대표님. 저는 오래 기다렸는데 이제서야 만나는 군요.”

6일 오후 4시 행복청장실에서 만난 이청장은 두툼한 손을 내밀고는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얼마 전에 들어놓았다는 통도사 소나무 숲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오는 집무실은 어지럽게 펼쳐진 서류만 없다면 교수연구실과 같은 분위기였다. 방문자를 압도하는 소파와 과시하는 듯한 각종 기념물 대신에 가지런한 책에다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촬영한 청장 임명 당시 기념사진이 전부였다.

“세종시는 대한민국의 역사죠. 그냥 신도시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도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시스템과 커뮤니티 등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도시를 만들고 있다는 말씀이죠.”

분당, 판교, 일산 등 신도시가 많이 만들어졌지만 그건 모(母)도시와 보완관계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세종시는 다르다. 수도 개념에서 만들어졌고 균형개발과 지방분권을 상징하고 있다. 그게 성공해야 할 절박한 이유이고 행복청장이면 누구든지 사명감으로 감내해야할 부담이었다.

“제 공직생활의 종합판이 바로 세종시를 만드는 일입니다. 진정 후대에 길이 물려줄 도시를 창조하는 겁니다. 로마, 런던, 파리 등을 보러가듯이 세종시를 보러오는 그런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정말 큰 도시죠.”

세종시에 역사적, 개인적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세대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서구사회에서 300년 동안 서서히 진행되었던 산업사회로 이르는 길을 우리는 50년만에 압축 성장했다. 물질적인 풍요가 우리가 후대에 물려줄 대표적인 자산이라면 이제는 세종시와 같은 도시를 남기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처음 세종시에 와보니 그냥 신도시야. 그런 도시는 만들 필요가 없었어요. 21세기 모든 아이디어와 경제력을 다 녹여서 이곳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는 "공무원이 되었기 때문에 정보를 얻고 예산을 사용할 수 있다" 며 "자신의 자리에서 긍정의 마인드를 가지고 하자없는 업무를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당, 판교, 일산과 같은 도시는 그가 원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토지이용 공급 방식에 변화를 주고 특화된 거리, 하나의 건물에도 혼이 들어가게끔 정책을 바꾸었다. 2011년 행복청 차장으로 부임 때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결과가 지금 서서히 나타나고 있어요. 올해는 공동주택 내에 놀이, 여가, 생활공간을 만들고 제로 에너지 타운 조성 등 2-3년을 내다보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어요.”

행복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차, 교통난 등 기존 도시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잘 지적했어요. 그런 문제가 있어요. 이 도시는 미래도시입니다. 자동차가 중심이 된 도시에는 사람들이 모여 들지 않아요. 우리 도시는 도로율이 신도시 중 가장 높은데 좁다고 느껴져요. 도로는 많은데 좁게 느껴지고 주차난이 생기는 이유는 뭡니까. 바로 우리 모두가 자동차 중심도시에 익숙한 탓입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도시문화의 변화’를 꺼냈다. 걷거나 BRT, 자전거를 타고 와서 저녁을 먹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옆으로 밥 먹으로 가면서 차를 가지고 가는 게 맞지 않다는 지적도 했다. 그러려면 시민들이 불편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관건이다.

“BRT에 이제는 과할 정도로 지상버스를 투입하고 자전거도 정말 편리하게 이용하게끔 공급을 해야 해요. 거기에서 수익활동은 하면 안 됩니다. 자동차 중심도시에 길들여진 주민들도 행복청과 이 도시를 같이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도시 가치를 높이는 데 주민들이 주체로서 참여하고 부족한 것은 함께 채워나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죠.”

이 청장은 상업지역 옆 주차 차량들이 지역주민들의 것이면 계도를 통해 바꿔나가야 한다는 말로 시민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도시에 자발적인 협조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에 대해서도 ‘같이 뛰자’ 며 역시 협조를 당부했다. 작고 지엽적인 도시 문제를 부각시켜서 큰 생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 서 언급한 것처럼 이충재 청장은 입지전적인 인물로 유명하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좌우명으로 고졸 신화를 쓰면서 공직 36년을 살아왔다. 비결이 뭘까.

“제가 보다시피 좋은 대학을 나왔나 얼굴이 잘 생겼나요. 그렇지 않죠. 내가 할 수 있는 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완성품을 만드는 거죠. 만약 제조업을 한다면 하자 없는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겁니다. 공무원은 주민이 만족하는 성과를 만들어야 하죠.”

그는 감사원에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작성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밤새 고쳐가면서 다음 날 과장께 제출했더니 “그대로 보내라”고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고칠 게 없었다는 뜻이다. 공무원은 자기 역할을 가지고 평가를 받고 그걸 통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비결이었다.

   지난 해 12월 정부세종청사 개청 3주년을 기념해 열린 '천년의 풍경, 나성동' 기획전에서 이충재 청장이 내빈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부임 후 맨 먼저 호수공원에 나갔어요. 세계적인 도시 호수공원에 보도블럭 공사를 대충하고 있었어요. 말이 안 되죠. 물 속 돌 사이에 있는 이물질을 다 끄집어내라고 지시를 했죠. 직원들이 이제는 이해를 합니다만... 공공과 민간이 하는 보도블럭에 차이가 있어서는 안되는 게 아닙니까. 주민 몇 사람이 만족하는 도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게 세계적인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그는 ‘후대’, ‘다음 세대’, '역사'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나름의 역사성을 반영한 행복도시 건설이 기저에 있는 듯했다. 36년 공직 인생이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옷을 벗을 위기도 있었다. 역시 ‘진인사대천명’이 만병통치약(?)이었다.

“공공주택 부도 시 기금을 우선 변제하느냐 아니면 전세금을 먼저 주느냐하는 문제가 생겼죠. 방송사에서 특집으로 다루는 데 제 소관은 아니지만 배석을 했습니다. 취재에 도움을 주라는 뜻이었죠. 기금과 관련된 질문을 담당 과장한테 물었는데 대답을 안 해요. 그래서 ”그게 뭡니까, 질문을 정확히 해 달라“며 과장을 도와주려고 거들었는데 그것만 편집돼 방송에 나갔어요.”

“과장이 제 업무 파악도 못하고 있다” 며 옷을 벗기라는 지시가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언론보도를 보면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앞 뒤 자르고 편집하거나 인용하면 사실이 180도로 바뀌어버린다. 아마 그런 경우였던 것 같다.

그 때 평소 업무상 자주 대화를 나눴던 국정상황실 관계자가 오해를 풀어주었다. “이충재가 그런 걸 모를 리가 없다”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평소에 쌓였고 상황 파악 과정에서 꼼수가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 그걸 계기로 한 달 만에 전격적으로 의원 입법을 통해 임대 공공 주택 부도 시 변제 우선순위를 정하게 됐다.

“공무원이라면 무조건 긍정적으로 일을 되는 쪽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공직에 들어왔으니까 정보를 얻고 예산을 집행하는 권한을 받은 게 아닙니까. 그걸 가지고 사회나 국가에 이득이 되는 쪽으로 사용해야하는 게 당연하죠.”

이 청장은 ‘안 되는 쪽으로 하는 건 어리석은 일’로 단정했다. 부정적으로 검토하면 백가지 이유를 넘게 댈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긍정의 힘이 가져오는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도 강조했다. 아주 단순하지만 그게 차관급까지 올라가게 된 동인(動因)이 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안을 얘기할 시간이 됐다. 행복청의 세종시로 흡수합병이 정치권의 화두가 되고 있다. 총선에 공약으로 등장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중하게 답변을 했다.

   이 청장은 '진인사 대천명'을 좌우명으로 '트릭'없는 삶을 살아왔다.
“대한민국 특별법에 의해 2030년까지 신도시를 완벽하게 만들라는 책무를 주었어요.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균형발전의 의무를 준 것이죠.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정보, 기술, 아이디어를 총동원하고 전문가를 참여시켜 당초 목적한대로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어 갈 예정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흡수 합병의 전제가 줄어드는 예산이라는 말을 하자 그는 목소리를 높혔다. 공사가 활발할 때는 예산이 많고 새로 시작되는 단계에서는 적을 수밖에 없다며 “그게 줄었다고 해서 당장 예산이 어떻다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주어진 기간 내 주어진 예산을 사용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그는 총선을 앞 둔 시점이라 정치적인 발언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하면서 매우 신중했다. 몇 마디 말을 했다가 이 말을 빼달라고 요청하거나 정리할 때 순화시켜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다만 행복청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주어진 계획에 따라 선거에 개의치 않고 도시는 끌고 나간다”는 말로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했다.

현 정부의 세종시 건설에 대한 의지 약화 여부를 물었다. 세간(世間)에 회자(膾炙)되는 말이어서 슬쩍 질문 속에 끼워 넣었다. 그는 ‘세종시=수도’라는 등식을 거론하면서 “정권 차원에서 만든 도시가 아니다”며 설득조로 말했다.

“여기에는 행정수도가 두 번씩이나 들어오려고 한 곳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지역이라는 얘기죠. 아직 다 만든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행복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준비해온 도시를 만들어서 행복도시가 새로운 점(點)이 아니라 대전, 충남, 청주를 끌어가야 하는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그냥 몇 사람이 만족하고 정권이 만족하는 색채는 빼야 한다는 얘기죠.”

질문은 행복청 업무로 이어졌다. 국가업무를 해야 할 조직이 지자체인 세종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그는 행복청 업무의 축소보다는 중앙단위로 역할을 더 하도록 확대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우리가 대전의 일을 하면 시비를 걸어도 되지만 이 지역주민들을 위하고 도시 전체를 위해 일하는 데 시비 걸 일은 아니다” 며 “하나라도 이 도시에 더 만들고 주민이 더 만족하도록 행복청은 모든 것을 여기에 쏟아 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말은 길었지만 세종시와 함께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쪽으로 정리가 됐다.

항간에 얘기는 차기 세종시장 출마를 노린 포석이라는 말도 있다. 거기에 대한 이청장의 생각도 들어보았다. 대답은 명료했다.

“시장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 나왔어야 했죠. 만약 정치적인 생각이 있었다면 직원들한테 좋은 소리도 못 들어가면서 몇 년씩이나 뭣 하러 하겠어요. 정치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이 도시는 매일 매일 챙기지 않으면 틈이 조금씩 벌어지고 2-3년 후에는 크게 문제가 됩니다. 이걸 잘 만드는 게 저의 역할입니다. 흔들지 마세요. 흔들려면 저한테 와서 공개적으로 하라고요.”

고졸 신화를 이룬 이 청장은 방송통신대를 나와 인하대에서 석사, 단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부하는 공직자상을 만들어 냈다. 박사학위를 받는 과정이 꽤 흥미로웠다. 공직 생활의 축소판 같았다. 수료와 동시 바로 학위 논문을 직접 쓴다는 각오로 들어갔다.

   연초 기자회견을 통해 행복청 주요 업무를 설명하고 있는 이충재 청장
논문 심사 교수가 “남들은 10년 씩 걸리는데 너무 빠르다” 며 “누가 대신 써준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용 중 모든 것을 질문해주십시오”라고 대들 듯이 말했고 꼬박꼬박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지도교수가 답변을 다하지 말라고 슬쩍 귀띔을 해 박사학위가 최단 시일 내 통과됐다. 그 까칠했던 교수가 이제는 행복도시를 위해 조언을 해주는 자문 교수가 됐다니 매사 인연이란 하기 나름인 모양이다.

화제는 대전지방 국토관리청 초임 근무 당시 만났던 허정윤 여사와의 사랑얘기와 양가 집안 사정, 그리고 아이들까지로 이어졌다. 솔직하면서 자신감에 넘치는 어투는 화자(話者)에게 신뢰를 주면서 설득의 논리를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그는 벽에 걸린 통도사 소나무 숲길 그림을 가리키면서 “국토부에 있을 때에는 한 부분만 맡았지만 이 도시에는 오롯이 내 생각을 반영할 수 있어 좋다” 며 “아이들도 다 컸고...퇴직 후에는 여기에 살 수 밖에 없다”고 혼자말처럼 얘기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약 1시간 여에 걸친 대담 후에 결론은 ‘진인사’이면 ‘대천명’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열심, 성실, 긍정 등의 단어는 오래도록 잔상(殘像)으로 남았다. ‘고졸 만세!’를 외친 이충재 행복청장의 인터뷰는 ‘성공에는 트릭(Trick)이 없다’는 강철왕 A. 카네기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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