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대에 걸맞는 문화원상 정립한다
세종시대에 걸맞는 문화원상 정립한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4.11.2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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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50주년 맞는 '세종문화원'... 지역문화의 산실로서 역할

   세종문화원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50년을 대비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사진은 초창기 연기문화원 모습>
세종지역 문화의 산실(産室) ‘세종문화원’이 28일로 창립 50돌을 맞았다.

지난 반세기동안 연기와 세종지역민들의 정신적인 성장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앞장 서온 세종문화원은 향토문화 전승과 보급의 전초기지로써 지역 사회에 역사적인 뿌리를 오롯이 지켜왔다.

특히, 세종문화원은 ‘사회 속에 문화’, ‘참여하는 문화인’을 실천한 대표적인 문화 조직으로 평가받고 있다. 1962년 11월 23일에 발족한 이래 50년 동안 줄 곧 연기(燕岐)지역의 역사성과 뿌리를 찾아 미래의 자양분을 공급하는 산소 같은 역할을 해왔다.

1960년대 가난과 굶주림의 시대 속에서는 문학과 백일장 대회를 통해 자라나는 세대에게 꿈을 심어주었다. 초고속 성장을 구가했던 1970년대에는 새마을 촉진 웅변대회, 건전가요 경영대회 등을 개최, 문화가 결코 사회와 유리(遊離)될 수 없는 밀접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향토사료 보존을 위한 조직으로 역할을 다했다. 전의 비암사에서 시작된 ‘백제 충령제’는 30여년이 흐르면서 지역의 대표적인 역사 축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런가하면 1987년에는 문화원 부설 ‘향토사 연구소’를 창설, 백제의 얼이 깃든 숨어있는 향토 문화를 체계화하고 정립시키는 데 힘을 써왔다.

질적인 성장은 1990년대에 이뤄졌다. 내실을 다지며 새천년을 준비해 결과적으로 20년 후에 다가올 세종시 개막의 틀을 마련한 셈이 됐다. 서예인들을 위한 ‘연맥서예전’이 출발했고 1994년 시범문화원, 1998년 한국문화학교로 지정되는 등 질적 성장이 대외적인 위상 제고로 이어지는 시기가 되었다.

2000년대는 개화기였다. 2004년에 창단된 연기소리봉사단을 이끌던 임영이 회장이 2006년 문화원장에 취임하면서 정점을 이뤘다. 8년간 문화원 수장으로서 복무규정을 마련, 운영에 체계화를 도입하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문화원상을 정립해나갔다. 이주여성들을 위한 한국문화체험행사, 문화교실 확대, 가야금 병창보존회와 업무 교류 등이 이 기간 동안 진행된 대표적인 사업이었다. 다양한 사업과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문화행사로 활짝 핀 문화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백제의 얼이 깃든 향토사를 발굴하는 전초기지가 된 향토사 연구소 현판식 장면
특히, 2010년 대한민국 문화원상 종합경영부문 대상을 수상, 운영 평가를 객관화시키고 세종시대를 겨냥한 문화원으로서의 체질을 강화하게 됐다. 2012년 세종시 출범과 함께 ‘세종문화원’으로 명칭을 바꾸어 행정중심복합도시에 걸 맞는 모습을 갖추었다.

세종시대를 맞은 세종문화원은 이제 사회로부터 새로운 책무를 부여받고 있다. 천지개벽이라는 표현이 모자랄 만큼 급변하는 지역사회의 문화 마인드를 적극 수용하고 재창조하는 문제이다.

연기에서 조치원, 세종으로 명칭이 변경된 것처럼 일부 문화인들만의 문화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주민과 원주민을 문화로 화합시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시대가 세종문화원에 부여한 명령이 되고 있다. 지난 50년을 토대로 미래 50년을 창조해나가야 할 중요한 역사적인 반환점이 바로 2014년이 되고 있다.

‘지천명’(知天命)의 역사를 지닌 세종문화원이 원주민과 이주민이 뒤섞이는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문화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 지역사회와 더불어 성장하는 문화의 발전소가 되길 기대해본다. 

   세종문화원은 향토문화예술제를 개최하는 등 지역문화의 산실로써 역할을 다해왔다.
   매년 초 지역 인사들의 교류의 장이 된 신년교례회 모습
   군민합동 결혼식
   리틀 미스 선발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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