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수입과일 판매 ··· 農心 '울분'
농협이 수입과일 판매 ··· 農心 '울분'
  • 금강일보 제공
  • 승인 2012.05.3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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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하나로마트 '다문화가정 과일코너' 운영
"다문화가정 배려 차원" 시민들 "매출확대 꼼수"

 대전 서구 탄방동에 자리한 모 농협 하나로마트에 ‘다문화가정 과일 코너’가 설치돼 칠레산 포도, 뉴질랜드산 키위, 캘리포니아 오렌지, 필리핀산 바나나·파인애플 등이 판매되고 있다. 최 일 기자
지난 주말 대전 서구 탄방동에 자리한 모 농협 하나로마트를 찾은 주부 강 모(41) 씨는 매장 한가운데를 점령한 외국산 과일들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매대를 응시했다.

칠레산 포도에 뉴질랜드산 키위, 캘리포니아 오렌지, 필리핀산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이 농협 매장에서 버젓이 판매되는 현장을 목격한 강 씨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왠지 모를 거부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다문화가정 과일 코너’란 문구의 안내판 밑에는 ‘다문화가정 증가로 인한 고객들의 요청에 의해 부득이 소량에 한해 수입 농산물 코너를 운영한다’라는 설명이 기재돼 있었다.

대형마트와 별반 다름없는 수입 농산물 판매 행위에 대해 강 씨는 “이곳이 과연 농협에서 운영하는 유통시설이 맞는지 내 눈을 의심하게 됐다. 다문화가정에 대해 배려하는 듯한 표현이 참으로 어색했고, 농협의 속보이는 상술에 어이가 없었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전의 한 소비자단체 회원인 박 모(38) 씨는 “다문화가정을 위해 수입 과일 코너를 설치했다면 캘리포니아산 오렌지는 미국 출신 결혼이주여성, 칠레산 포도는 칠레 출신 결혼이주여성을 위해 갖다 놓은 것이냐”라고 반문하고, “도시지역에선 수입 과일 파는 곳이 널려 있는데 굳이 농협에서까지 팔아야 할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대형마트의 미끼 상품처럼 고객 유치를 위한 궁여지책에서 전용 코너를 마련한 것 같다”고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이 같은 비난 여론에 대해 농협 측은 “다문화가정이 점차 늘어나고, 하나로마트 이용도가 높아지면서 고향에서 즐겨먹던 과일을 찾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적지 않다”며 “남편이 조합원인 경우 국산 농산물만 취급하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하루 평균 몇 명의 결혼이주여성들이 매장을 방문하느냐’라는 질문에 수치 대신 “다문화가정 증가세에 맞춰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해서라도 구색을 맞춰 수입 농산물을 취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대전지역 일부 농협 하나로마트의 수입 농산물 판매와 관련해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농협으로선 ‘매출 증대 목적보다는 다문화가정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강변하지만 ‘수입 농산물 판매에 따른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다문화가정을 내세우는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의 농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도 수입 농산물 취급 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 “농협의 설립 목적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수입 농산물 판매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일부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당시 농협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농협 공판장 전체 취급 물량 중 오렌지·바나나·레몬·포도 등 수입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3.2%에서 2010년 4.4%, 작년에는 6.1%(7월 기준)로 꾸준히 늘고 있다.

농협 대전지역본부 관계자는 “대전 38개 하나로마트 중 5곳이 수입 농산물을 파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실태는 파악해 보겠다”며 “수입 농산물을 취급하는 회원농협에는 자금 지원 등에 있어 불이익을 주고 있지만 조합장의 재량사항이므로 지도에 그칠 뿐 판매 금지를 강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농협 충남지역본부 관계자 역시 “충남에는 252개 하나로마트가 영업 중인데 몇 곳이 수입 농산물을 취급하는지 모르겠다”며 “다문화가정뿐 아니라 일부 농민들마저도 ‘왜 값싼 수입 오렌지 등을 갖다 놓지 않느냐’라며 일부러 다른 시장이나 유통업체를 찾아야 하는 불편을 호소해 외국산 과일을 팔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농협 측의 주장에 대해 한국농업경영인 충남도연합회의 한 임원은 “한국 농업을 지켜야 할 최후 보루인 농협마저 수입 농산물을 파는 행위는 반농업적 행태”라며 “농협이 FTA(자유무역협정)로 인해 향후 수입 농산물 판매에 본격 나서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고 꼬집었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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