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성을 만리장성이라고 우기다니…”
“고구려성을 만리장성이라고 우기다니…”
  • 신도성 기자
  • 승인 2012.08.31 13:5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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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사람들, 고구려가다]<5> 역사는 민족의 얼이다

세종시 고구려기행단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정에 압록강변의 한 산성(山城)이 눈에 들어왔다. 고구려의 산성으로 알려진 호산산성이다. 시간이 촉박해 산성에는 못 올라갔지만 지척에서 바라보는 심정은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고구려의 역사를 왜곡하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좀 더 확실한 역사의식을 가져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됐다.

역사는 민족의 얼이다. 사람이 이른바 정신을 일컫는 얼이 빠진 자라는 욕을 얻어먹듯이 조상의 역사를 잊어버리면 얼빠진 민족으로 사라지게 된다.

  고구려성이 하루 아침에 중국의 만리장성으로 뒤바뀐 호산장성의 정문 
왜곡된 민족의 역사를 되찾아 바르게 알고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최근 중국과 일본이 역사왜곡에 혈안이 되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 흥분하기보다는 왜 그들이 역사를 왜곡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지난 역사는 바로 우리의 뿌리이다. 과거의 역사를 잃어버린다면 곧 우리의 미래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웃나라들이 역사 왜곡에 흥분하기 보다는 우리 자신부터 조상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독도의 역사도 정확하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이 지난 역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역사왜곡의 심각성은 물론 최근 일본인들의 군국주의 부활로 독도와 위안부 등을 놓고 어거지를 쓰고 있는 것이 도를 넘고 있다. 자신들의 선배들이 인정한 위안부 문제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실정이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비참한 과거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할 책임이 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려면 국민들이 살아있는 역사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얼빠진 국민을 면할 수 있다.

호산산성은 중국 요녕성 단동시 동북쪽 압록강변에 있는 산성이다. 원래 고구려 박작산성인데 중국당국이 호산장성이라 이름하여 만리장성의 동단이라고 우기고 있다. 산성은 북한땅인 압록강 윤중도와 20여미터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정상까지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하다. 호산장성에서는 한걸음만 건너면 북한땅이라는 이뿌꽈(一步跨)를 사이에 두고 북한의 우적도와 의주군이 보인다. 중국은 1992년 동북공정에 의해 이곳을 명나라의 만리장성 동쪽 끝이라고 선전하며 1킬로미터를 복원하여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한국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호산산성은 역사왜곡의 장소로 둔갑하고 있다.
최초 공개 때는 고구려 박작성(泊灼城)이던 것이 나중에 만리장성이라 우겨

1991년 중국 학자들이 애하첨고성 동쪽에 있는 호산(虎山)에서 명나라 장성을 찾다가 고구려 산성을 하나 찾아냈는데 이 성이 바로 고구려 박작성으로 알려졌다. 보장왕 7년(648) 당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박작성은 산을 이용하여 요새를 세웠고, 압록강으로 튼튼하게 막혀 있었기 때문에 함락시키지 못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지금까지 압록강 입구에서 발견된 고구려 성은 애하첨고성과 이 호산산성 뿐인데 애하첨고성은 평지에 쌓은 성이기 때문에 유일한 산성인 호산산성이 박작성이 되는 것이다.

1998년 7월 말, 한국학자가가 호산에 도착해 보니 고구려산성은 보이지 않고 최근 중국이 복원한 어마어마한 명나라 장성이 앞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앞서 일본방송국에서 제작한 ‘만리장성’이란 프로에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잠깐 보여준 것은 만리장성이 아니라 고구려산성이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사이에 갑자기 명나라 장성이 등장한 것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 중국이 압록강 가에 대규모 장성을 새로 복원한 것은 이민족인 청나라의 지배를 벗어나 오히려 그 땅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정당화하기 위한 강력한 의사표현과 같은 것이다. 기록에는 이 장성 끝 어디에 고구려 산성이 남아 있다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고 새로 쌓은 명나라 장성만 괴물처럼 버티고 있다.

 중국에 의해 막대한 돈을 들여 복원한 호산산성은 만리장성의 모습과 비슷하다.
한국 학자는 끈질기게 수소문한 끝에 고구려 산성은 현재 명나라 장성을 복원해 놓은 산 뒤쪽, 다시 말해 압록강 쪽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트럭을 타고 애강 가 둑을 달려 조그만 마을에 닿아 옥수수 밭을 한참 동안 헤치고 가자 드디어 호산산성이 나타났다. 고구려 이후 1300년이 지나도록 땅속에 묻혀 있던 산성유적이 발굴된 것은 1991년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이었다. 한국의 학자들이 처음 접한 것은 1998년으로 국내에 호산 고구려 유적에 대한 글이 발표됐다.

완벽하게 남은 대형 우물과 다양한 유물 발견 고구려산성 특징 보여줘

국내에 발표한 글에 따르면 이곳 유적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을 치라면 역시 우물이다. 고구려 산성에는 어디나 반드시 우물이 있는 것이 특징이지만 이처럼 완벽하게 남아있는 대형 우물은 처음 보는 것이다. 우물은 둥근꼴인데 안벽의 지름이 4.4m나 된다. 우물 벽은 모두 잘 다듬은 쐐기꼴 돌을 곧게 올려 쌓았는데 아직까지도 53층이나 남아 있고 깊이가 11.25m나 된다. 지금도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면 사철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되도록 깊이 팠던 것이다. 고구려 산성에서 보았던 메주같이 다듬은 돌로 절묘하게 쌓은 우물은 '고구려 우물'의 대표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물 바로 앞에 만든 부채꼴 건축물도 특이한 것이다. 이 유적은 비교적 큰 돌로 쌓았는데 평면은 대개 부채꼴이고 반지름이 14m 쯤 되고, 둘레는 담을 쌓았는데 뒤끝이 비교적 뾰족한 쐐기꼴 돌로 정연하고 단단하게 쌓았다. 계단은 없지만 평면이 마치 로마의 원형극장처럼 생긴 이 건축물은 무엇에 쓰였을까? '물을 담아 놓은 저수지일까?' '그렇다면 바닥이 바위여야 할텐데 돌을 깔아놓았으니 물이 다 새버릴 것이 아닌가?'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기는 빠르다. 우물 윗쪽에 있는 돌벽도 그 쓰임새가 분명하지 않다. 성벽 같기도 하고, 성벽에서 튀어나온 치성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밖으로 물이 흐르도록 물길을 만들어 놓은 흔적이 계속 이어져 있어 발굴을 더 해 봐야지만 그 분명한 쓰임새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물 속에서 잘 보존된 통나무배(獨木舟), 삿대, 나무구유, 나무통, 나무주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통, 널빤지, 호리병 쪽박, 갈대자리, 동아줄, 질그릇 항아리, 쇠저울추, 고기뼈, 새뼈, 식물의 씨앗 같은 30여 가지 유물들이 쏟아져 나와 연구 결과에 따라서는 고구려 문화를 밝히는 획기적인 유적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나온 통나무배는 길이가 3.7m나 되는 것이고, 여러 가지 나무로 된 기구들도 대단히 특이한 유물들이라 앞으로 고구려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유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국이 아직 발표를 하지 않고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동아일보 2006년 6월7일자 보도에 따르면 ‘고무줄 만리장성…中, 고구려-발해땅까지 연장, 中정부 “총길이 2만1196km”… 기존보다 배 이상 늘려’라는 기사가 있다.  다음은 동아일보 당시 기사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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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이 만리장성의 길이를 기존보다 크게 늘려 발표했다. 특히 장성의 동쪽 끝을 옛 고구려와 발해의 영역이던 지린(吉林) 성과 헤이룽장(黑龍江) 성까지 연장한 고고학 조사 결과를 내놓아 한국 등 주변국 학계가 반발하고 있다. 고구려와 발해가 지은 성들까지 만리장성의 자락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국 국가문물국(문화재청) 둥밍캉(童明康) 부국장은 장성 유적지 중 하나인 베이징(北京)의 쥐융관(居庸關)에서 "2007년부터 진행한 조사 결과 역대 만리장성의 총 길이가 2만1196.18km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발표했다고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광밍(光明)일보가 6일 보도했다. 이는 중국이 앞서 발표한 만리장성 길이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것.

둥 부국장이 발표한 자료는 만리장성 유적지는 현 중국의 가장 서쪽인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서 시작해 닝샤후이(寧夏回)족자치구, 칭하이(靑海) 성, 간쑤(甘肅) 성, 산시(陝西) 성, 허난(河南) 성, 산둥(山東) 성, 산시(山西) 성,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허베이(河北) 성, 베이징, 톈진(天津) 시, 랴오닝(遼寧) 성, 지린 성을 거쳐 동쪽 끝의 헤이룽장 성까지 15개 성·시·자치구에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확정된 만리장성 유적지는 모두 4만3721곳으로 사실상 중국 북부 대부분의 지역에 만리장성이 존재했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명나라 때 장성을 포함해 진(秦)·한(漢) 및 기타 왕조 때 쌓은 장성을 포함한 것이다. 중국 정부가 역대 만리장성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은 2006년 국무원 명의로 '(만리)장성 보호조례'를 제정하면서 만리장성에 대한 본격적인 보호와 연구 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중국 정부와 학계는 끊임없이 만리장성을 동·서로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

이에 앞서 2009년 중국 국가문물국과 국가측량국은 명나라 때 쌓거나 보수한 장성을 기준으로 만리장성의 길이가 종전에 알려진 6300km보다 2500km 이상 긴 8851.8km라는 측량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중국 정부는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을 랴오닝 성 단둥(丹東) 시 북쪽 후산(虎山) 산에 있는 보줘(泊灼) 성(고구려 유적지인 박작성)이라고 발표해 당시 한국 학계 등에서 지나치게 늘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박작성은 3세기경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구려 성이다. 만리장성의 동단은 베이징 인근의 허베이 성 산하이관(山海關)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국가문물국은 이후 보줘 성에서 '만리장성 동단 기점'이라는 대형 표지판 개막식을 열었다. 이후 보줘 성이 고구려 유적지라는 기존의 관광 안내문은 모두 없앴다. 또 고구려의 발원지인 백두산 근처 지린 성 퉁화(通化) 현에서 진한(秦漢)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만리장성 유적이 발굴됐다고 발표하는 등 만리장성 늘리기 행보를 계속해 왔다.

중국의 이번 발표에 한국 학계는 중국이 장성으로 볼 수 없는 요새까지 망라해 장성의 길이를 늘임으로써 고조선과 고구려 영토까지 장성 안쪽으로 끌어들이려는 근거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법종 우석대 교수는 "중국이 '장성'의 개념을 진나라 때 만리장성뿐 아니라 명나라 장성과 각종 요새까지 연결하는 통시대적 개념으로 확대하고 있다"며 "중국이 다민족 국가로서 넓은 영역을 차지했음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복기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 교수(상고사)는 중국이 만리장성으로 발표한 헤이룽장 성 일대의 성곽에 대해 "요나라나 금나라 때의 성곽일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를 밝혔다. 복 교수는 "중국 서진 시대 지리서인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에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을 지금의 산하이관 인근으로 확정하고 있다"며 "중국이 정치적 목적으로 정설을 무너뜨린 뒤 압록강 입구까지 연장하더니 이번에는 헤이룽장 성까지 또 늘린 것"이라고 말했다. 복 교수는 "또 중국은 만리장성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까지 늘려 만주와 중국 동북쪽 일대가 진나라 때부터 중국 영토였다는 억지 주장을 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상 동아일보 2006년 6월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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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이처럼 옛 고구려와 발해 영토의 대부분을 만리장성 범위에 포함하는 것은 '동북 공정' 등 역사 왜곡의 논리를 보강하고, 다민족 국가론을 강화하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눈을 버젓이 뜨고 있는 가운데 조상이 역사를 날치기 당하고 있는 꼴이다.

중국의 역사 왜곡 의도는 무엇일까? 한반도를 포함해 동북아를 경제, 군사, 문화적인 부분에서 자신들의 영향권아래 두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의 한족이 요나라를 비롯해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현재에 자기 나라의 역사로 집어넣으려는 정통성 확보의 큰 밑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의 역사 교육은 찬밥신세다. 그러다보니 정치가를 비롯해 지도층과 국민들이 어설픈 반일감정, 반중감정으로 역사왜곡 때마다 냄비가 들끓듯이 흥분하다가 세월이 지나면 잠잠해진다. 정부차원에서 제대로 대비 못하면 진짜 각개 격파 당할 수 있다.

 한발자국만 디디면 바로 북한땅인 철조망 너머로 북한 국경수비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초중고에서 한국의 역사교육이 천대받고 있고 대학입시에서도 무시당하는 과목이 한국사이다. 그러니 무슨 제대로 된 역사의식이 있겠는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과연 국민들이 얼마나 알고 있으며, 독도의 역사에 대해 국민의 몇%가 실상을 알고 있는지 점검해볼 일이다. 이미 우리나라가 중국 등과의 역사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집을 부리며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주요 고구려 역사 유물은 전부 중국이 등재했고 단군신화도 중국소수 민족의 설화로 전락했가는 하면, 발해는 한국 혼자서만 우리 민족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이제는 아리랑까지 자기들 것이라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고 하고 있다.

5년마다 바뀌는 대통령이 바뀌는 정치판과 교육부장관의 주관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역사에 대한 교육은 백년대계를 보고 추진해야 한다.

제발 임기 몇 년 안 되는 신임 교육부장관은 취임 때마다 공적을 세우려고 즉흥 교육정책을 남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은 유한해도 국토와 민족은 영원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제발 각성 좀 하자. 서양사의 시작인 구약성경의 천지창조신화는 믿으면서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호산산성에서 세종시 고구려기행단이 느낀 역사 교육의 중요성은 두고두고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지나온 민족의 역사는 바로 현재 생존하고 있는 한국인의 얼이기 때문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바르게 알아서 지켜야 할 것이다.

 호산산성에서 바라본 북한 농가의 모습이 확연하게 보인다.  
참고로 역사연구가인 강동민 갈럼니스트의 글을 소개하면서 역사공부의 중요성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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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중국, 만리장성 놓고 장난질하는 속내
‘제2의 동북공정’ 만리장성을 한반도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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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또 만리장성을가지고 장난질을 하고 있다. 자기 나라 안에 있는 것을 가지고 새로 만들고 조작하는 것을 우리는 어쩌지 못 한다. 단지 옛 것을 올바로 지키지 않고 엉터리 거짓으로 꾸며서 사회주의 공산주의식으로 자기네들 입맛에 맡도록 정부가 조작하는 것이, 중국인들과 우리의 후손들에게 과연 올바른 길인지 묻고 싶을 뿐이다. 동이족의 일파인 선비족 나라인 진나라 진시황(영정:진시황의 본 이름)이 6국을 통일하고 난후 춘추전국시대 때 각 나라들이 자국보호를 목적으로 축조하였던 성곽들을 다시 보수하고 고쳐서, 훈족(흉노:부여의 일파)들의 공격으로부터 방어용으로 사용한 것을 ‘만리장성’이라고 부른다.

전쟁이란 힘이 있는 나라가 항상 공격을 먼저 하고 힘이 없는 나라는 방어하기 위해 성곽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은, 동이족(만주족)의 나라 청나 때부터는 힘이 없었으므로 성을 쌓지 않았다는 것으로 증명이 되며 청나라 때가 제일 크게 중국을 만든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사기흉노열전과 많은 역사책들 속에 옛날부터 기록하기를 “만리장성의 서쪽 끝은 감숙성 임조로부터 동쪽 끝은 북경 서쪽 음산 산맥의 음산까지”라고 하였으며 이곳을 요동이라고 하였다. 진시황의 진나라 수도가 있던 감숙성 서안에서 멀리 동쪽에 있다고 하여 멀 요(遼)를 붙여서 ‘요동(遼東)’이라고 하였으니 지금의 북경은 서안에서 볼 때 멀리 있는 곳이었다.

한(한)나라의 한고조 유방이후 훈족(흉노)에게 200년가 조공하고, 부여에도 214년간 전한이 망할 때까지 조공하였는데 조공품목 중에는 옥으로 만든 갑옷(옥갑)이 부여의 ‘부장품’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당시 요동의 현도군(지금의 북경지역)에 옥갑을 미리 갔다 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 하북성 진황도에 있는 갈석산(북갈석) 산해관이라고 하는 것은, 위진남북조 시대의 산해관 갈석인데 명나라 때 다시 보수한 것으로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아니다. 역사를 모르는 일반인들은 산동성 무채현 갈석산(남갈석)을 잘 모르고 있는데 이곳이야말로 진시황때의 갈석산을 말하는 것이다. 친일 식민사학자들과 그들의 제자들은 지금도 만리장성에 대하여 깊이 있게 잘 모르면서 엉터리 거짓말을 함부로 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사회주의 공산당 정권을 잘됐다고 생각하고 만리장성을 한반도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참으로 웃기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바로 잡으라고 설치한 ‘동북아역사재단’은 매년 200억원씩 국민의 돈을 쓰며 6년이 지난 오늘까지 연구한다고 하면서 제대로 된 반박 논문 한 편도 아직 발표한 것이 없다. 고조선 연구사 주목적인 ‘동북아역사재단’에는 주로 고조선과 아무 관련 없는 ‘근현대사’ ‘일본사’를 연구하던 재단 이사장들이 서울대학에서 줄줄이 자리에 앉아 있고, 엉뚱한 연구만 하고 국민들의 혈세인 세금만 축내고 있을 수도 있다. <이상 주간현대 2012년 7월1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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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이 2012-10-30 09:55:58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 해야할일이 많잖아요???

임헌표 2012-09-16 23:24:24
신도성국장님...... 칼럼 좋습니다. 가슴에 팍팍 와 - 닿습니다.

정준이 2012-09-16 10:20:07
신국장님~~!!
백두산칼럼 잘 보고 있습니다. 만리장성 갔다 어제 왔습니다.
신국장님이야말로 역사학자로서 큰 일을 하시는것 같습니다. 이칼럼 끝나면 하나로 묶어 책내세요홧팅~!!

단결 2012-09-03 19:29:02
졸면 죽는다.단결해야^^ 신도성 기자님 최고 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