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에 써주세요"
"좋은 일에 써주세요"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4.12.18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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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단상]부대 배치 받은 이등병이 보내온 만원 편지

   훈련을 마치고 조치원역에 집결해있던 이등병이 전해준 만원짜리 사랑의 편지. 그는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사랑의 열매' 로고가 새겨진 옷을 보고 만원을 내밀었다.
‘세종의 소리’ 직원들이 ‘밥 드림’ 봉사활동을 하던 지난 12일.
‘사랑의 열매’ 로고가 그려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조끼로 직원 넷과 정준이 세종시 의원, 서영일 모금회 사무처장 등 6명이 복장을 통일했다.

지난 달 27일 늦장가를 든 막내 곽우석 기자는 다음 날 보도에 필요한 사진을 찍으면서 배식을 도와주고 있었다. 나름대로 의미를 두고 결정한 봉사활동이지만 이날은 마침 메뉴가 자장면이어서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요란만 떠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하기도 했지만 도움으로써 얻는 평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은 없었다.

정말 잠간동안 바빴다. 한 끼의 점심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한꺼번에 밀려온 오전 11시 10분이 지나면서 그랬었다. 하지만 한양수자인 현장건설팀과 남양유업 팀들이 함께 봉사활동에 나서서 일손은 오히려 남음이 있었다.

이 때 잠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곽기자가 활짝 웃으면서 나타났다. 왼손에는 예의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반대 편 손에는 만원 짜리 한 장과 꼬깃꼬깃한 메모장을 가지고 왔다.

“군인 아저씨가 ‘사랑의 열매’가 새겨진 옷을 보고 성금으로 냈어요. 작은 돈이지만 불우이웃돕기에 써달라고 당부하면서요. 막 훈련을 끝내고 부대를 배치 받은 이등병이었어요.”

‘부대 배치’.
대한민국 남자들이 한번쯤은 경험한 일이다. ‘훈련의 끝’은 곧 ‘고생의 시작’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곧 다가올 새로운 환경, 그리고 낯선 전우들과의 만남에다 보직 등등...

전출 명령서 한 장 달랑 들고 찾아가야 하는 부대는 훈련이 끝났다는 안도감보다는 불안과 초조, 궁금함이 한데 얽혀 복잡한 심경의 변화를 갖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 있던 한 병사가 ‘사랑의 열매’만 보고 돈 만원을 낸 것이다. 그 병사는 바로 21사단으로 가는 서울 강동구에 주소를 둔 배 모군이었다.

이등병에 대한 얘기는 잠시 동안 계속됐다. 연탄불 옆에서 곁불을 쬐면서 손을 녹이던 ‘세종의 소리’ 식구들은 좋은 소식이라며 모두들 반겼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여유가 나왔을까”, “나는 절대 그렇게 못했을 것” 등등의 얘기를 주고받았다.

엿새가 지났지만 감동의 여운은 가시질 않았다. 널리 알려야 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차일피일했다. 지금도 병사가 처했을 절박한 상황과 내민 돈 만원을 오버랩시키면 가슴이 뚜듯해진다.

“뭐 별스런 일도 아닌데 요란을 떠느냐”고 질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작은 것이 변화를 시킨다. 역사의 물줄기를 돌린 사건의 이면에는 항상 작은 일이 불씨가 되곤 했다. 이등병의 성금 편지는 그래서 감동적이었다.

재산세를 많이 낸다고 해서 부자가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남을 위해 얼마나 쓰느냐가 부자의 기준이다.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할 때 이 세상에는 부자가 많아진다.

연말연시다. 각 단체에서 후원의 밤도 열고 불우이웃을 위한 모금운동도 시작됐다. 평소 일 때문에 못했다면 적어도 연말이라도 이웃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또, 내년에는 이등병의 마음으로 한해를 보내는 이웃들이 많기를 기대해본다. 하루를 시작하는 추운 겨울날 아침에 이 글을 독자들에게 보낸다. 따스한 곁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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