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 임영호
  • 승인 2014.01.14 17: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영호의 독서길라잡이]폴리처 상 수상자 도리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인간, 링컨을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켄터키의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태어났으며 가난해 학교를 다니지 못하였으나 수 마일을 걸어 책을 빌려와 장작불 아래에서 열심히 책을 읽었고, 그 후 변호사가 되었으며 초기 두 번의 주 하원의원의 성공과 그 후 아홉 번의 실패, 그리고 대통령 당선, 노예 해방과 남북전쟁승리 그리고 워싱턴의 한 극장에서 암살당했다는 것이 아는 것의 전부이다.

퓰리처상 (역사부문) 수상자인 도리스 컨스 굿윈(Doris Kearns Goodwin)이 쓴《권력의 조건》은 이와 같은 전기는 아니다. 링컨의 전기이긴 하나 일반적 일대기와는 다르다. 1860년 5월18일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후보 공천일 아침, 링컨과 그의 경쟁자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당시 대통령후보의 영광이 뉴욕출신의 잘생긴 월리엄 헨리 슈워드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에이브러험 링컨(Abraham Lincoln, 1809년 2월 12일~1865년 4월 15일)에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함께 경쟁한 대통령병에 걸린 완벽한 남자 새먼 P 체이스,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후에도 ‛고릴라’ ‛긴팔원숭이’라고 링컨에게 굴욕을 안긴 스텐턴, 대가족 열일곱 명의 아버지로 그 지역에서 가장 사랑받는 에드워드 베이츠 판사가 그 주인공들, 바로 그들의 이야기가 이 책《권력의 조건》이다. 영문으로는 Team of Rivals 라고 되어 있다.

Team of Rivers를 해석하면 《링컨과 그 라이벌들》이다. 그런데 왜 번역자는 권력의 조건이라고 책 제목을 달았을까. 권력이라면 부조리, 부패, 지배하는 힘과 같은 퇴행적 권위적인 냄새가 난다. 권력의 조건은 이런 나쁜 이미지인 권력을 쟁탈하기 위하여 필요한 배경이나 리더가 갖추어야할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권력이란 것이 어디서 나오고 어떻게 힘을 얻게 되는 가를 강조하기 위한 번역자의 은유적 수사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미국상황은 이랬다.
동부지역의 급진적인 노예해방론자들은 노예제를 통하여 대규모 농장경영이 가능한 남부주에 있는 흑인들에 대한 즉각적인 해방을 원했지만 전체 북부 인이 그러한 의견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 헌법에도 노예제를 인정한 만큼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목소리가 더 컸다. 문제는 새로이 편입된 서부지역을 노예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로 할 것인가에 대하여 남부와 북부는 의견이 충돌되었고, 급기야 여러 차례 합의와 조정과정이 있었지만 결국 남부가 연방에서 탈퇴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중북부지역들은 노예제보다는 남부주가 연방제에서 탈퇴한 것이 중요했다. 연방문제를 중시하는 쪽은 보수파, 노예문제의 전면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쪽은 진보파가 되었다.

링컨이 보여준 진정한 권력의 의미는 무엇일까
대개 평범한 대통령들은 명백하게 자기의 뜻을 따르는 자기 사람을 주변에 심기 마련이다. 링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링컨의 용인술은 파격적이었다. 링컨은 하나의 나라와 노예해방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기를 버리고 최고의 적임자를 뽑았다. 비록 대통령이란 한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던 바로 그 라이벌과 잠재적 라이벌이었던 그들을 자신의 핵심동료로 삼았다. 그들은 물론 저마다 ‘얼토당토 않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고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링컨보다 더 유명하고 더 많은 교육을 받았으며 공직생활 경험도 풍부한 사람들이다.

링컨은 가장 강력한 라이벌 슈어드를 국무장관에, 베이츠를 법무장관에, 체이스를 재무장관에, 스텐턴을 육군 장관에 임명했다. 이것은 모든 파벌과 당파를 통합하고 끌어안겠다는 의지와 자신감과의 표현이다. 링컨은 권력의 속성상 자칫 그 라이벌들을 쓰레기로 만들 수 있는 것을 예술로 만들었다.

저자는 링컨의 힘은 보수주의자로부터 극단적 급진주의자까지 아우르는 포용력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링컨은 다른 정치지도자와는 달리 적을 만들지 않았다. 선거에서 패배한 뒤에도 과거의 적과 우정을 맺을 만큼 관대했다. 이것은 전쟁을 벌이면서까지 대립했던 남부의 적대세력까지 일관되게 적용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평소에 링컨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중요한 직책인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장관에 대통령 경선 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클린턴 힐러리를 임명한 것도 링컨으로부터 얻은 가르침이 아닐까.

그는 라이벌을 포함한 다양한 대립되는 파벌을 조정하여 중도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언어를 신중하고 정확하게 사용하였으며 깊은 인간적 이해를 통하여 개인적 신뢰감을 쌓았으며 인내심과 관대함, 유머로써 관계자를 설득하고 통합하였다.

그는 취임사에서 남부를 달래기 위하여 연방의 유지와 단결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면서 노예제 자체에 대하여 간섭하려는 의도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도망간 노예를 단속하는 법을 인정하는 등 노예주의 권리를 폭넓게 인정하였다. 또한 전쟁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과격한 흐름을 억제하고 균형을 유지시켰다. 이번 전쟁을 ‛흑인을 위한 전쟁’일 뿐이라고 선동한 남부 출신인사에 대하여 관계자 체포 및 신문 폐간 등 과잉조치를 한 군부를 누르고 관계자 추방과 복간 등으로 정치적 균형을 유지하였다.

링컨은 여론을 잘 이해했다. 그는 여론과 완벽하게 교감했으며 적절한시기를 찾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흔히들 반대를 무릅쓰고 나가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오해하지만 신중하게 중요한 목표와 여론이 함께 호흡해 가는 것이 민주적 리더십의 요체이다. 이제 전쟁에서 승기를 잡아가자 목표를 연방 구하기에서 흑인 해방으로 바꾸었다. 민심과 여론의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했다는 평가이다.

이미 링컨은 1863년 1월 1일 노예 해방 선언을 하여 노예주는 노예를 전부 해방시켜 그 흑인들에게 북군에 참여 기회를 주었다. 남부에서 일하던 흑인들이 살던 곳을 탈출하여 북부지역으로 오면 노예 신분을 벗을 수 있음을 의미 하는 것이다. 참전한 백인들을 대신하여 생산에 종사한 흑인들의 이탈은 남부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북군으로써는 막대한 병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노예 해방선언은 약점이 있었다. 당시 링컨은 전시 상황을 들어서 헌법의 일부 조항을 정지시켰는데 전쟁이 끝나면 링컨이 선포한 노예 해방선언이 법원으로부터 폐기될 수 있었다. 그래서 링컨은 노예제를 완벽하게 폐지하기위하여 헌법을 개정하려 했다. 이것이 영화에 나오는 내용, 수정 헌법13조이다.

링컨으로서는 절박했다. 전쟁의 명분으로 노예제 폐지 필요성을 미국 중북부 및 공화당 보수파를 설득했는데 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끝나면 더 이상 그 명분을 내세우기가 어려웠다. 이제 노예제 폐지와 전쟁, 노예제 유지와 평화의 선택지가 링컨의 앞에 놓였다. 링컨은 전쟁을 얼마간 더 끌더라도 노예제는 이번에 끝장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국민의식 수준의 발전을 이끌어 오면서 가장 적절한 시점에서 인간의 자유를 위한 조치들을 발표했지만 노예제도만큼은 무리를 해서라도 성사시키고자 했다. 그는 민주주의 본질은 모든 이들에게 길을 열어 주고, 희망을 주며 모든 이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공평하고 관대하며 번영하는 체제에서는 노동이 자본보다 우선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수정헌법 13조는 상원은 통과되었으나 하원은 통과되지 못했다. 수정안을 재상정하고 수정안 통과까지 20표만을 남겨놓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링컨의 사려 깊음은 빛났다. 투표권도 주어야 한다는 소속당인 공화당내 강경파의 주장은 보수파와 부동표의 반발을 불러 올 수 있어, 노예해방에 대한 최소 정의적 접근인 법 앞의 평등으로 목표를 조정 설득시켰다. 한편으로 그는 반대파의 지지획득을 위하여 정치적 흥정이나 소위 낙하산 인사인 우체국장등 자리약속, 뇌물매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빌려온 책이 비에 훼손되어 그 책값만큼 책 주인집 일을 하여 갚고, 젊은 시절에 뱃사공, 점원, 장사꾼, 우체국장, 측량기사의 궁핍한 삶속에서 진 빚을 10여 년 동안 갚았던 정직한 링컨이 의외의 행태를 보인 것이다. 그는 고심 속에서 노예제 폐지 신념과 책임 윤리를 더 크게 생각했을 것이다. 누군가 정치란 바로 진흙탕 속에서 연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고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이란 영화에서, 흑인부인을 둔 투표에 참여한 스티븐슨 의원이 자기 부인에게 수정헌법이 통과되었음을 감격적으로 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 순수한 영혼의 열정으로 19세기 가장 위대한 일을 사주와 부패로 통과 시켰다.” 결국 하원이 통과되고 각주 의회가 비준을 마무리함으로써 노예 해방은 완성되었다. 링컨은 펜을 들어 잉크에 담그다가 서명 란으로 손을 옮겼지만 손이 떨려서 펜을 내려 놓아야했다. 그리고 “내 평생 이 선언서에 서명하는 것보다 더 옳은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세 시간 동안 악수를 했더니 팔이 절이다면서 “이 일로 나의 이름과 영혼이 역사에 길이 새겨질 텐데, 선언서에 서명할 때 손이 떨리면 앞으로 이 서류를 본 사람들이 내가 주저했다고 말할지도 모르지요”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펜을 들어 조심스레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그 서명은 드물게 대담하고 뚜렷하며 확고했다고 국무장관 슈어드는 회고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노예제에 관련되어 링컨이 황당할 정도로 양보한 사건이 있다. 그의 일관된 노예제 폐지소신을 읽을 수 있다. 1855년 일리노이 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링컨은 바로 상원의원으로 출마했다. 당시의 상원의원은 하원에서 선출했다. 1차 투표에서 더글러스파 민주당원 제임스 쉴즈가 41표, 하원의원 리이먼 트럼벌이 5표, 링컨은 45표를 얻었다. 투표가 이어졌고 링컨은 승리하는데 네 표 부족한 47표까지 얻었다. 그럼에도 소수였던 트럼벌 지지자들은 링컨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9차 투표 이후 링컨은 자신의 지지자들이 트럼벌에게 표를 던지지 않는다면 더글러스파 만주당원들의 손에 상원의원 자리가 넘어 가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노예제 반대연합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을 우려했던 링컨은 자신 대신 트럼벌을 지지하라고 요청했다. 47명이 다섯 명에게 양보한 것이다. 속은 아팠지만 링컨은 트럼벌이 당선된 것은 우리의 대의에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되기 바로 전 1858년에 링컨을 유명하게 만든 사건 있었다. 링컨은 49세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에 두 번째 도전하여 패배하지만, 민주당 거물정치인 스티븐 A. 더글러스와 벌인 노예제도 논쟁에서 인상적인 연설과 확고한 신념으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더글러스는 노예제도를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는 각 지방 정부에 일임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국민 주권론’ ‘주민투표론’ 의 캔자스 네브래스카 법을 지지하였다. 더글러스는 모든 주가 어느 때든 대다수 주민이 원할 경우 노예제를 유지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하였다. 이에 링컨은 노예제 확산을 위해 자치의 원칙을 이용하는 것은 그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선언서에 위배된다며 상대방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도 없다고 말한다. 만약 노예제 확산을 허용한다면 미국 사람은 독립선언과 전면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끝으로 저자는 ‛마음을 얻는 것이 권력의 시작이다’라고 말한다. 링컨 대통령은 항상 자비가 엄격한 정의보다 더욱 풍성한 결과를 만든다고 믿었다. 지도자의 인격적 겸양, 지혜로움, 관대함은 위대한 결정을 만든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링컨은 논리와 힘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세대 간, 지역 간, 남북 간, 이념 간, 갈등이 산적한 대한민국에서 국민통합을 시키면서 자기소신과 철학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지혜로운 정치인은 없을까? 한국의 정치현실에 링컨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링컨은 말한 것 중 내 마음에 느낌을 준 말이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있어서 이 세상이 더 좋아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정치인은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민생에 마음을 두어야한다. 지금 여야가 하고

 
     
 
 
임영호, 대전 출생, 한남대, 서울대 환경대학원 졸업, 총무처 9급 합격, 행정고시 25회,대전시 공보관, 기획관, 감사실장, 대전 동구청장, 18대 국회의원, 이메일: imyoung-ho@hanmail.net
있는 진영논리에 빠진 패거리 정치, 힘겨루기 정치, 경쟁이 아닌 투쟁의 정치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어느 분은 링컨과 노무현을 동일하게 보지만 차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링컨은 어렵게 성장했지만 그 함정에 빠지지 않고 대의를 위해 넓은 이념의 정치적 스펙트럼인 중도정치를 표방했지만, 노무현은 당시의 독재정치에 대한 투쟁 탓인지 지나친 편 가름으로 분열과 대결을 야기했다. 800페이지의 많은 분량이라 부담은 된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