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인사청문회 ‘먹구름’… 정치력 좀 더 발휘될 순 없나
세종시 인사청문회 ‘먹구름’… 정치력 좀 더 발휘될 순 없나
  • 류용규 기자
  • 승인 2024.02.2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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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단상] 의회, 조례 따라 실시 요구… 최 시장, ‘인사권 침해’ 관점
시장-의장 만나 숨통 틔울 방법 모색했으면… 고집으로는 해결 안돼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 형국… 이대로 가면 서로 상처·파국만 남을 뿐
보람동에서 바라본 세종시 청사(왼쪽)와 세종시의회 청사(오른쪽)
보람동에서 바라본 세종시 청사(왼쪽)와 세종시의회 청사(오른쪽)

세종시의회 인사청문회 요구와 관련, 취재 과정에서 파악한 이순열 의장의 진심은 이렇다. 작년 10월 인사청문회 조례를 통과시켰으니, 의회 ‘위상을 올리고, 좀 폼이 나도록’ 청문회를 열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순열 의장이 오는 7월부터 시작되는 제4대 의회 후반기(2년) 의장을 ‘한 번 더 하고 싶어 그러는 것 아니냐?’는 세종지역 여권 성향 인사들이 품는 의구심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듯하지만, 일단 청문회를 해서 의회 위상을 높여 보자는 것에 더 무게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최민호 세종시장은 의회 인사청문회 개최는 ▲임원추천위원회에 이은 중복검증이고 ▲청문회를 열고 말고는 시장의 재량 행위라고 강조한다. 시청 간부들과 한 비공개 회의 등에서, 최 시장이 “청문회 개최는 시장 인사권 침해”라고 말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세종시의회가 확인해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이미 7개 시·도가 인사청문회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시행하고 있다. 과문인지는 몰라도 이들 7개 시·도의 시장, 도지사들이 “중복검증, 인사권 침해”라고 공식 입장을 밝힌 뉴스는 없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들 7개 시·도의 시장, 도지사들은 인사권 침해 여부에 감각이 둔감한 바보들인가?

인사권 침해라고 못을 박아 버렸으니, 이를 풀어낼 길이 막힌 이순열 의장측은 해묵은 감사원 감사 자료까지 뒤져 박영국 세종시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임용예정자의 ‘얼룩’을 찾아내 언론에 내놓은 것 아닌가.

지역 여권 성향 인사들이 주장하는 것은 또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이춘희 전임 시장 때는 인사청문회 조례를 제정하지 않고 강력하게 요구하지도 않다가, 국민의힘 당적을 가진 최민호 시장이 취임하니 청문회 조례를 만들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의회는 이렇게 해명한다. 모(母)법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법에 지방자치단체 인사청문회 조항이 내내 없다가, ‘지방자치단체 의회도 인사청문회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간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지난해 9월 20일 비로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모법에 근거가 생겼기에 한 달 뒤 조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인사청문회 취재 과정에서 놀란 점이 하나 있다. 인사청문회와 관련, 최민호 시장과 이순열 의장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은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시의회 제86회 정례회 제1차 본회의가 열린 날인 작년 11월 13일 오전 9시40분쯤부터 단 15분간이다. 정례회든 임시회든 본회의가 매번 오전 10시에 개회하므로, 그 직전인 약 15분간 의장 접견실에서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이를 놓고 여태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고는 석 달이 지나가 버렸다.

그 사이 이순열 의장은 시 행정부시장, 기획조정실장, 문화체육관광국장을 여러 차례 불러 다그쳤겠지만 “시장 인사권 침해”라고 못박은 최 시장의 한 마디 때문에 재량권이 없는 행정부시장, 기조실장, 국장을 몰아붙여본들 무슨 효과가 나겠나.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는 속설을 꺼내보았자 의미는 없다. 그러는 사이 3개월이 넘는 아까운 시간만 흘러갔다.

의장실에서 부시장, 실장, 국장의 이야기를 한두 번 들어보면 이들이 재량권이 없음을 금세 눈치챌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이 의장은 최 시장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모처에서 단 둘이 만나 협상을 하자고 했어야 했다. 이순열 의장은 “왜 매번 약자인 의회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나?”라고 기자에게 물었지만, 절실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고 고개를 숙인 정치인들은 숱하디 숱하다. 

칠순의 이시종 전 충북지사는 2021년 3월 3일 세종시청 4층 여민실에서, 나이로 따지면 한참 아래인 당시 우원식 민주당 균형발전특위 위원장에게 갑자기 큰절을 해 지켜보던 400여명을 놀라게 했다. 상병헌 전 의장도 2022년 7월 6일 세종시청 여민실에서 400명에 가까운 시민과 공무원들에게 큰절을 했다. 

물론 이 의장이 최 시장에게 큰절을 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지난 14일 언론에 배포한 논평의 뒷부분에 제시한, ‘임원추천위원회 기능 축소 및 변경’안을 앞에 부각해 제시했더라면 최민호 시장도 조금은 솔깃해 하지 않았을까. 협상을 위한 대화를 나누다 최 시장이 끝내 거절한다면 압박할 카드를 챙겨 가는 것은 이 의장 몫이고. 정치의 기본은 ‘협상이고 거래’임을 두 사람은 잠시 잊은 것 아닌지 궁금하다.

‘거래’라고 하면 경기어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겠지만, 정치의 세계에서 100% 승리, 100% 패배는 없다. 100%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면, 거래와 조율을 통해 조정하고 개선책을 찾는 게 정치이다. 평범한 시민들도 친구·동료 사이에, 거래처에게 “부탁하는데, 이것 좀 해줘”, “해 주겠는데, 해 주면 뭐를 줄 건데?”라고 흔히 말한다. 이런 대화는 거래 아닌가?  

어두워 보이는 인사청문회 전망을 놓고 몇몇 세종시 출입기자들끼리 점을 쳐 봤다. 한 기자는 “3월 임시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최 시장 공약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할 수도 있고…”라고 중얼거렸고, 다른 기자는 “5월 행정사무감사 때 문화관광재단과 시청 담당 실·국을 강하게 조리돌림 할 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그저 예상일 뿐이다.

최 시장과 국민의힘이 내내 편하게 가자고 했으면,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시의원을 적어도 11명 이상은 당선시켰어야 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의원직 사퇴를 하지 않는 한, 2026년 6월 30일까지 세종시의회에서는 20석 중 13석을 가진 민주당이 다수당이다. 이 한계를 조금이라도 순탄하게 넘어가자면 먼저 손을 내밀고 거래를 하자고 해야 한다. 거래라는 말이 불편하다면, 협상으로 바꾸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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