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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 지명고(2)
icon 장팔현
icon 2014-12-15 14:51:53  |  icon 조회: 14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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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 지명고(2)

연기군 조치원읍.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의 지명 유래에 대하여 고찰할 필요가 있어 재차 글을 쓴다.

조치원(鳥致院)이란 지명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기존의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설부터 새내설과 야설이 존재하지만, 야설은 최근에 나온 유치한 성적 농담수준으로 제외한다.

현재 널리 퍼진 지명유래로는 최치원설이 여전히 압도적인 것 같다.

그러나 최치원 선생이 살던 시대에 조치원이란 역명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당시엔 허허벌판에 지나지 않던 늪지대요, 백제시대의 두잉지현 때부터 현청이 있던 중요한 지역은 세종시 연기면 연기리라는 곳이었다. 당산 밑에 현청이 있었고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줄곧 연기현의 중심지였다.

첫 번째는 고운 최치원선생과의 인연에 의해 조치원 지명이 유래됐다는 설에 관해서 알아보자!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구전에 의하면, 최치원 선생이 당나라에서 격문 한 장으로 황소의 난을 토벌하여 명성을 날리자, 신라의 진성여왕은 사신을 보내 그를 본국으로 돌아오도록 권유했다. 이에 따라 선생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게 됐으며, 조치원 지역과 연관이 있어 최치원에서 조치원으로 변경되어 지명이 유래됐다는 설이다.

두 번째는 ‘새내설’이다. 새내에는 억새가 우거지고 철마다 철새가 날아드는 곳이다. 이에 따라 일제 강점기 철로가 이 지역을 지나면서 새로운 역명이 필요했다. 이에 일본어로‘새내(せね or セネ)’로 표기는 가능했지만, 순 우리말을 중앙부처의 다른 일본인 공무원들이 쉽게 이해 할 수는 없는 지명이었을 것이다. 이에‘새내’라는 하천명의 원뜻을 따라 한자로 해보니, 새내=조천(鳥川)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천을 지역명으로 고치면 조치원(鳥致院)이 된다.

한자로 새내로 바꿔놓고 지역명을 조천원(鳥川院)이라 하다 보니, 일본어 발음으로는‘쵸오센인’으로 들려‘조선인=조센징(朝鮮人)’과 비슷했을 것이다. 당시 일본은 조선을 실제적으로 점령한 상태였기에 조선인을 비하하는‘쵸오센징'과 비슷하게 들리니, 피지배민족인 한국인도 싫어할 것이요, 그들로써도 마땅치 않아보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궁리궁리한 끝에 새로 내놓은 지명이 바로 조치원(鳥致院)이라는 설이다.

그러나 의외로 연구를 더 하니 보니, 조치원이란 지역명은 이미 240여 년 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그들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1770년 발간된『동국문헌비고』라는 문헌에 나온다는 증거가 있다. 이 책 30권 향시(鄕市:삼국~조선초 지방에서 열리던 場市)편에“청주군내 조치원장은 4, 9일 개시한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현재의 조치원 5일장과 개장일이 똑같다.당시는 조치원읍 일부가 청주목에 속해 있었다.

따라서 통일신라시대 최치원 유래설이나 일제 강점기 때 유래설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입증된다.

이미 18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확고하게 조치원이란 명칭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당시엔 이 지역을 지나던 관리들이 묵어가던 관에서 운영하던 숙박시설(院)이 위치한 지리적 여건 등과 새들이 새내에 많이 날아들던 이미지와 어우러져 자연스레 조치원이란 명칭이 생기게 됐다는 것이다.

최치원 유래설이 근거 없음은 조치원 명칭 이전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졌으며, 조선시대 문서 어디에도 그와 관련된 전설 또는 유래에 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조치원 명칭보다 훨씬 앞선 『동국여지승람』의 청주목 역원 편에는‘장원, 청주 서쪽 39리에 있다. [場院, 在州西 三十九里]’라는 기록이 있는데, 위치로 보아 장원이 조치원으로 비정됨이 확실하다고 사료된다. 고로 최치원 유래설은 일찌감치 성립되지 않고, 일제 강점기 때 경부선을 놓으면서 조치원 지명이 유래했다는 것도 거짓이다.

다만, 기존의 조치원이라는 지명이 있음에도 역사가 오래된 것처럼 일제 강점기 때 최치원선생과 관련 있는 것처럼 견강부회가 이루어졌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고로 조치원=최치원에서 유래됐다는 전설 또한 이 당시부터 회자된 것으로 추측된다.

새내설이 근거 없음 또한 조치원 문화원 측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원래 조천원(鳥川院)이었는데 1902년 경부선 역을 지어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조천원(鳥川院)의 일본식 발음이 조선인(朝鮮人)과 같아 지역주민의 반발이 예상되어, 신라 때 학자인 최치원에서 유래된 것처럼 날조했다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참고로 조천원(鳥川院)의 일본식 발음은‘쵸오센인’이다.
어찌되었건 최치원 유래설이나 새로 생긴 기차 역 이름에서 유래한다는 설은 그 근거가 없다할 것이다.

최소한 조치원이란 지명은 조선 중기에도 최치원과는 전혀 관계없는 장원(場院)으로 불리다가 1770년부터 조치원이라 불리기 시작했다는 점이 정부간행 문서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기군(燕岐郡)의 제비라는 연(燕) 자가 새를 연상시키고, 더불어 억새가 많던 새내(鳥川)에 철새들이 많이 날아들던 곳이란 이미지에서 따온‘조치원’이란 지명에서 18세기 후반부터 유래됐다고 봄이 가장 타당하다.

실제로 조치원이란 이름대로 우리 지역에 행복도시가 건설됨으로써 봉황새가 날아들긴 날아든 것 같다.



**** 요즘 조치원읍, 조치원역을 세종읍, 세조역으로 변경하자는 논란이 많은 가운데 조치원에 대한 지명 유래에 대하여 정히 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 인용 시는 출처를 명기 해 주세요.
2014-12-15 14: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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