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초, 코로나19 한복판에서 세워진 학교였다
해밀초, 코로나19 한복판에서 세워진 학교였다
  • 세종의소리
  • 승인 2022.06.2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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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석 교장의 해밀초 이야기] 스머프학교, 새로운 학교 탄생의 기록

프롤로그 그리고 쉼의 재발견

유우석 해밀초 교장

프롤로그

해밀초등학교는 20년 9월에 개교하였다. 학교를 찾는 방문객이 아주 많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20학년도에 2~30팀, 21년에 120여 팀, 22년 지금까지 30여 팀 정도 되니 최소 150팀 이상, 보통 4~10명 정도이니 어림잡아 천여 명이 다녀갔다.

첫 번째 이유는 해밀초가 가진 공간적 특성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얘기한 학교와 교도소와 군대의 건물 형태는 똑같다. 관리와 통제를 위한 공간이었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더뎠다. 우여곡절 끝에 세종시청과 교육청의 협력모델로서의 학교가 세워졌고, 이곳은 여느 학교의 공간과 다른 모습으로 조성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러한 공간에서 만들어 가는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이다.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곳이니 당연한 말이지만, 해밀초는 조금은 ‘다른 학교’를 지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공간적 특성이 큰 몫을 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좋은 여건임에도 해밀초는 코로나19 한복판에서 세워진 학교인 셈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에도 코로나19에서 세워진 학교라는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해밀초가 코로나19를 지나면 그동안 구성원과 함께 만들어 간 이야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이야기, 함께 만든 사람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2020년 9월 개교 당시, 1학기 동안 등교한 날이 채 열흘이 되지 않는다는 수도권에서 전학 온 아이. 수학 특정 단원을 잘 이해하지 못해 확인해봤더니 전체 단원을 원격수업으로 진행하여 수업을 소홀히 했다는 아이. 평소 꼬박꼬박 시간을 잘 챙기던 아이가 어느 순간 일상이 흐트러졌다는 아이. 학교에 가는 것보다 원격수업이 더 좋아 오히려 코로나 상황을 더 반기는 아이.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 먹고, 학교 가고, 점심 먹고, 학원가고, 친구들과 놀고, 저녁 먹고, 숙제하고, 게임하고, 씻고, 자는 평범한 하루 일상이 깨졌다. 어느 기자의 말처럼 위급하고 당황스러운 2020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로 인한 빚은 백년은 갈 것이라고 했다. 일상의 회복, 아이들에게는 ‘학교’가 단순히 배우는 공간을 넘어 일상을 지키는 삶의 공간이었다.

해밀초 조감도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에서 학교의 맨 얼굴도 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자기 주도적 학습’을 내세웠지만 정작 학교는 그렇지 못했고, ‘우리 학교만의 특색 사업’ 등 학교가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상황에서 저마다의 색깔(?)은 소용없었다. 다름을 이야기했지만, 실제 학교 모습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3월 개학의 연기, 체크만 해도 출석 인정, 영상 수업 등 코로나로 인해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깨지고 있었다. 우리가 ‘교육적’이라고 하는 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교육이, 학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해야 할 것은? 실현 방법은? 그 안에서 학교의 역할은? 교사의 역할은? 수많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새로운 상황에서 사각지대는 드러난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새로운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답해야 할 차례이다. 학교는 위기에 잘 적응하고 있는가 혹은 여전히 사각지대인가? 학교는 이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오래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새로운 학교의 모습이 아닐까? 해밀초등학교는 이러한 물음에 답을 여럿이 함께 찾아가고 있다.

쉬는 시간의 재발견

21학년도 교육과정을 계획하며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코로나19 감염위험이 있었지만, 그동안 누적되어온 방역 관리와 교육공동체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 학교는 방역과 교육 사이에서 교육을 선택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러한 선택을 할 때, 고민도 깊었지만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좋은 선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것을 좋게 만들면 그것이 곧 좋은 선택이다.

“우리 학교 너무 좋아요!”

계단에서 마주친 6학년 아이가 내려가며 한 마디 던졌다.

“왜?”

내심, ‘선생님이 좋아요.’ 정도의 대답을 기대했다.

“쉬는 시간이 길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쉬는 시간이 줄었다. 동선 중복을 최소화한다는 의미이다. 보통 10분 정도의 쉬는 시간이 있으나 코로나19 상황에서는 5분, 그것도 반별로 달리하여 화장실을 다녀올 정도로 운영되다가 경험이 쌓이면서 쉬는 시간도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마스크 쓰기’, ‘코로나19의 증상 조기 발견’이 가장 큰 방역 원칙으로 자리 잡고 다른 교육활동은 원래대로 돌아가기로 했다. 당시로선 어렵고 큰 결정이었다.

쉬는 시간 중에서도 ‘중간놀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시간이 있다. 학교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없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이 시간은 보통 1,2교시를 연 차시로 한 후 가지게 되는 30분 정도의 조금 긴 쉬는 시간을 말한다. 실제 1,2교시 연 차시 후에 30분을 쉬는 것은 1교시 후에 10분씩 쉬는 것과 비교하면 10~20분 정도밖에 차이가 없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맞은 개교<br>
코로나19 상황에서 맞은 개교

그러나 이 시간이 가지는 의미는 다르다. 교사 입장에서는 1,2교시 연 차시 80분 정도의 수업으로 설계하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아이들이 80분 동안 집중하고, 의미 있는 활동을 위해 이른바 교사의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다.

아이들은 보통 쉬는 시간이 10분. 10분 동안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하고, 주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개인 활동을 한다. 그러나 10분 동안 벌어지는 일을 보면 ‘뭔가를 하려고 하다가 멈춘 단계’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다툼이 생겨도 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업 시간이 된다. 즉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이 발생하고, 경험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하지 못한다.

다툼이 일어나지 않아 좋은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학교는 아이가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기르는 곳이다. 즉 (언제, 어떻게, 왜) 등에 대한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것까지 하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전문가가 아이들의 성장발달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다양한 경험이며 특정한 고급화된 경험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잡다한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상황 맥락을 이어주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 시간을 견디기 쉽지 않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이지만 못 견디는 것은 어른들이다. 왜냐하면 사소한 다툼이 일어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이 시간을 해결하기 위한 에너지가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자칫 ‘무책임’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님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소한 갈등이나 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머리로 이해하지만 당장 ‘내 아이’의 문제가 되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쉬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항상 ‘어른’이 되는 것보다 스스로 경험하고 해결해봐야 한다. 모른 척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을 관심 있게 보며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연은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삶에서 쉼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코로나19 이후에 교육회복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최재천 교수의 말처럼 일상회복, 교육회복을 넘어 일상복원, 교육복원이 포스트코로나 시대이다. 예전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본질, 교육의 본질, 쉼의 본질을 생각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중간놀이 시간에 노는 아이들
중간놀이 시간에 노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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