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할머니, 생활비 쪼개 기부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죠”
90세 할머니, 생활비 쪼개 기부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죠”
  • 문지은 기자
  • 승인 2022.01.07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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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소담동 거주 이옥희 할머니, 네 자녀가 보내주는 용돈 모아 50만원 기탁
“자식 키울 때 쪼들려 춥게 살던 기억… 남몰래 하려 했는데, 민원 보다 들통났네”
새샘마을 6단지 경로당에서 만난 이옥희 할머니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죠.” 

구순(90세)의 나이에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며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기부한 할머니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세종시 소담동 새샘마을 6단지에 사는 이옥희 할머니가 그 주인공.

1933년생으로 올해 90세를 맞은 이옥희 할머니는 소담동 주민자치센터에 어려운 이웃을 도와달라며 50만원을 기부했다.

이름도 안 밝히고 돈만 두고 가려 했다는 이 할머니는 마침 창구에서 민원을 보게 돼 직원이 이름과 나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소담동에서 맞춤형 복지담당을 맡고 있는 김가영씨는 구순 노인이 이웃을 위해 기부를 한 사례는 세종시는 물론 주변에서도 최고령이 아닐까 생각해서 주변에 알리게 됐다고.

기자는 7일 오후 이옥희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새샘마을 6단지 경로당을 방문했다.

코로나19 방역지침 때문에 할머니 네 명이 멀리 떨어져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입을 모아 이옥희 할머니를 칭찬했다.

경로당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은 맏언니이지만, 주변에 좋은 말만 해 주고 필요한 일에 기꺼이 부담을 같이 하는 고마운 언니라는 평이었다.

잠시 후 경로당에 들어온 백발의 이옥희씨는 구순의 할머니라고는 믿기지 않는, 곱고 반듯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웃을 위한 기부를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몇 가지 물었다.

-어떻게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게 됐나?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고생할 이웃들이 걱정됐다. 나 자신도 어려웠던 시절이 었어 적은 돈이지만 정말 필요한 사람을 위해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조금씩 모아 기부했다.”

정말 몰래 하려 했는데, 경로당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져 부담스럽다는 말을 이옥희 할머니는 반복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 달라며 작은 금액을 주민자치센터에 냈다. 마침 민원처리도 한 가지 하려던 참이라, 이름과 나이를 들켜 민망하다. 복지담당 공무원이 선행을 주변에 알려서 다른 사람들도 작은 금액이라도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설득해서 기자를 만날 결심을 했다.”

-과거에 어려웠다고 했는데 어떤 삶을 살았나?

“충남 청양이 고향인데, 부여군 은산면에 사는 6남매 중 맏아들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시동생 시누이를 챙기며 자녀 넷을 낳아 키우다 보니 돈이 쪼들릴 때가 많았다. 은산에서 도시인 대전에 나와 아이들을 교육시키다 보니 겨울에 불도 제대로 못때고 춥게 살았다. 어렵게 키운 자식들이 다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게 되어 늙은 어머니에게 월 30만원씩의 용돈을 보내 준다.”

-월 120만원으로 혼자 살기도 어려울 텐데….

“나이가 드니 별로 돈 쓸 데가 없다. 자식들이 반찬도 해 주고 경로당에서 친구들도 만나고 즐겁게 보내니 남을 도울 여유도 조금씩 생긴다. 남편이 20년 전에 죽고 큰아들은 벌써 은퇴해 69세가 됐다. 남 모르게 조금씩 기부를 해 왔다.”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조금씩 모아 매년 기부한다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선한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다.

-주민센터에 기부금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

“대전에 살 때는 KBS나 MBC 등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는 곳에 돈을 갖고 가 냈는데 지난해 골반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몸이 불편해 가지 못했다. 주민센터에 가 보니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랑의 저금통’도 있고 해서 여기에 주면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겠구나 생각해서 기부했다.”

소담동은 행복도시에 있고 아파트 가격도 만만치 않아 중산층만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다문화가정, 한부모 가정, 독거노인 등 다양한 취약계층이 사는 임대주택도 있어 도움을 필요한 이웃들이 적지 않다.

소담동에 낸 이옥희 할머니의 기부금은 세종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소담동 지역주민을 위해 추진 중인 다양한 복지사업에 사용된다.

정경식 소담동장은 “2022년 새해부터 어르신의 따뜻한 마음이 소담동을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동네로 만들었다”며 “이 마음을 마중물 삼아 더욱 살기 좋은 소담동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시 소담동 주민센터에 있는 사랑의 저금통. 누구나 저금통을 가져간 뒤 동전을 모아 소액으로도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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