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전의 한 모임에서 나온 얘기였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일부 기자들이 잇달아 물의를 일으키면서 사법처리까지 간 사건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부끄러웠다. 말은 계속되었다.
“명품도시를 건설한다면서...기자들도 업그레이드되어야 명품도시가 되는 게 아닌가.”
사뭇 비아냥이 들어있었다. 이번에는 은근히 화가 났다.
“기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거든... 요즘 기자들은 달라. 예전의 구태는 없어졌어. 그리고 자정 운동을 통해 의식이 많이 변했어.”
모임이 끝날 때까지 언짢았다. 하지만 이게 세종시 언론인을 보는 일반인의 시각이었다. 세종시 출범 전후로 구속되거나 수사 선상에 올랐던 언론인들이 잇따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시각은 자업자득이었다.
2년 전 세종시에 들어오면서 느낀 점은 “언론의 시계가 멈춰 있는 곳”이었다. 과거 잘못된 구태가 상당부분 그대로 남아있었다. 골프장에 가서 가뭄에 물을 준다고 시비를 걸고 건설 현장을 찾아가 이것저것 트집을 잡고 돈을 갈취해갔다. 심지어 돈을 받은 업체를 다른 기자에게 인수인계까지 하고 있었다.
기자가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건 본연의 일이다. 그 지적이 금품을 요구하기 위한 위협이라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또, 그게 협박의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사욕 채우기로 나타나면 사이비가 된다. 백지 한 장 차이다.
이곳에는 알다시피 공사 현장이 무수히 많다. 막 출범하는 도시라서 공사장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잘 관리해도 허술한 곳이 있기 마련이다. 그게 기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사이비에는 ‘갈취형’과 협회를 결성한 후 회장 중심으로 집단으로 협박하는 ‘회장님형’이 있다. 세종시에 적용되는 대표적인 유형이다.
1인 미디어 시대까지 등장하면서 ‘흔한 게 기자’가 되었다. 세종시에 등록된 기자 수 만해도 연기군 시절 60명에서 140명으로 늘어났다. 수적 증가가 힘의 약화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펜의 힘은 있다는 얘기다. 그 힘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사실대로 보도할 때 생겨나고 있다. 사이비는 그런 언론이 만든 힘에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면서 기생한다.
짧은 기간 동안 세종시는 천지개벽하고 있다. 그 변화를 보지 못하고 사이비 행각으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면 언론의 생명은 그걸로 끝이다. 도덕성을 잃은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글을 써도 냉소와 비웃음 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제 앞도 가리지 못하면서 남의 일에 콩이니 팥이니 간섭하면 세상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세종시가 명품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정부 부처의 공무원들이 내려오고 첫마을이 생겨나면서 민도(民度)도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내년이면 외지인이 세종시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하게 된다.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변화 속에 있는 언론인들도 마땅히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그게 여의치가 않는 모양이다.
사회 공기로서 문제를 지적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일부에서 죄의식 없이 행해지는 사이비 행각이다. 열 번 잘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면 그것만 기억하는 게 세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시 출입기자의 구속과 경찰 조사는 똑똑히 기억하는 한 번의 잘못일 수도 있다.
최근 일련의 세종시 일부 언론인들의 사이비 행각은 소속사를 떠나 모두가 부끄러해야 할 일이다. 1차적인 책임은 언론인 스스로에 있다. 어렵고 힘든 얘기지만 지역 언론계 분위기를 사이비 기자들이 발을 못 붙이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또, 지금하려는 행동이 사이비에 해당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면서 자정능력도 키워야 한다.
세상에는 필요한 것과 소중한 것이 있다. 돈이라든가 직위 등은 필요한 것이다. 반면 사랑과 우정, 명예 등은 소중한 것이다. 우린 때로 이걸 착각하는 데서 비극은 시작된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소중한 명예를 버리고 필요한 금품을 쫓는다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다. 세종시의 잇단 언론인 관련 구설수가 이번이 마지막이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