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의 의미는 무엇일까
'위대한'의 의미는 무엇일까
  • 임영호
  • 승인 2014.02.1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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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독서길라잡이]F.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노벨수상자 월리엄 포크는 그의 수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 가를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치열한 삶속에서 그들의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고 승리하는 가를 보여준다. 문학책을 읽는 것은 한 인생을 보는 것과 같고 그것을 통해 얻는 것이 많다.

나는 소설책 읽기를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 굉장히 인내를 가져야 한다. 영화를 통하여 이 책의 내용을 대충 알았지만 읽어보려고 노력한 직접적인 동기는 무라카미 하루끼(村上春樹)의〈상실의 시대〉에서 이 책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이란 책 제목도 한몫 했다.

20세기 미국문학의 대표로 꼽히는 소설은 F.스코트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 1896, 9. 24일 ~ 1940, 12. 21) 의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이다. 그러나 이 책은 러시아 문호들의 소설처럼 철학이 스며든 무거운 주제가 아니다. 그저 연애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다. 그런데 나는 이소설의 제목 속에 들어있는 〈위대한〉 이란 말이 이 소설 속에서 커다란 보석처럼 생각되어 어떤 의미인지 궁금증을 가지고 헤쳐 보았다.

작품을 이끄는 ‛나’는 주인공 개츠비의 낭만적인 인생관을 높이 평가하고 이해하는 것 같다. 책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그의 아버지가 화자(話者) 닉 캐러웨이에게 충고한 말을 소개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 두는 것이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서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화자는 오만한 시선으로 다른 인간의 내면을 내려다보는 그런 요란한 행보를 피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나의 창으로 보면 실제보다 훨씬 근사해 보이는 것이다. 그는 균형 잡힌 인간이 되고자 했다. 화자 닉이 이 소설에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통하여 그려지는 것과 통한다.

닉은 중서부에서 뉴욕근처 롱 아일런드만으로 이사와 40에이커가 넘는 궁궐 같은 두 저택을 사이에 둔 집을 월 80달러에 세를 산다. 한집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개츠비의 저택이고 한쪽은 미모의 부잣집 딸 데이지와 결혼한 힘 좋은 폴로선수이며 갑부인 톰 뷰캐넌이 살고 있다. 톰은 잔인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다.

개츠비는 5년 전 상류층 딸 데이지와 결혼을 약속하나 가난해서 사실 감당할 능력이 없었고 그가 군인으로 해외복무중이라 떨어져 있어서 그사이에 데이지는 톰과 결혼한다. 개츠비는 소문에 밀주 업으로 졸부가 되었다고 하나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큰 부자가 돼서 돌아온 그는 평생 사랑한 데이지를 잊지 못한다. 어쩌면 속물적이거나 통속적이 않고 하나만 아는 둔한 존재이다.

개츠비가 자기 인생을 걸고 사랑한 이 여성은 실로 그런 사랑을 바칠만한 존재가 아니다. 닉의 먼 친척인 데이지는 톰과 결혼하기 반년 전 에 했던 약혼을 파기하고 부잣집 아들 톰과 눈도 깜짝 안하고 결혼했다. 데이지는 개츠비 집에서 영국제 셔츠를 보고 좋아서 울기까지 하는, 안락한 생활만 쫒는 속물로 나약하고 철없는 여자이다.

개츠비는 그녀의 집이 보이는 만의 반대쪽에 저택을 사서 주말마다 속삭임과 샴페인 그리고 별빛으로 가득한 호화로운 파티를 열고 언젠가 데이지가 오지 않을까 만날 날을 고대한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닉의 집에서 만난다. 개츠비는 그녀가 이제는 부자가 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의심하지 않았고 데이지도 결혼생활에 지루함을 느낀 터에 개츠비의 출현을 환영한다.

개츠비와 톰의 갈등은 시작되고 데이지가 개츠비의 차를 운전하다가 남편과 싸움하다 도로에 갑자기 뛰어든 톰의 정부를 치어죽이고 달아난다. 이때도 개츠비는 자기가 운전한 걸로 하려고 했다. 개츠비가 차를 몰았다고 생각한 그 여자 남편 윌슨은 개츠비를 찾아가 죽인다. 그런데도 데이지는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남편과 여행을 떠난다. 데이지는 꽃 한 송이, 조전하나 보내지 않았다. 그의 장례식에는 성황을 이룬 화려한 파티와는 달리 닉 이외에 겨우 한명의 손님만 참석한다. 닉은 도덕성이 결여된 동부의 도시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다시 젊은 날의 가슴 떨리는 중서부 고향으로 돌아간다.

개츠비의 〈위대함〉은 그가 인류에 뭔가 공헌했다 것이 아니다. 도대체 위대함이란 것을 찾을 수 없다. 개츠비의 삶은 참으로 가엷고 허무한 것이었다. 돈 때문에 떠나간 사랑을 돈으로 찾겠다는 극히 단순한 발상과 흘러간 과거를 돌이 킬 수 있다는 망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축재행태, 사랑의 대상을 제대로 파악 못한 어리석은 낭만주의자, 모든 것이 생각이 없는 무뇌(無腦)의 행동이다.

데이지와 톰, 개츠비가 지닌 인간성과 서로의 관계를 시종일관 지켜보았던 화자 닉이 개츠비에게 마지막으로 위로의 말을 던진다. “너는 그 빌어먹을 인간들 다 합친 것 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야” 무가치한 존재를 무모하게 사랑하고 그러면서도 의연하게 그 실패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위대하다.(p 237)

아마 저자는 1920년대, 청교도적인 미래에 대한 이상을 찾는 아메리카 드림이 순수함과 낭만, 성실함을 잃고 물질만능주의와 퇴폐주의로 타락해가는 시대에, 저자 피츠제럴드는 부자들의 위선적이고 핏기 없는 차가운 세계와 달리, 개츠비의 단순하고 순수한 꿈을 하나의 위대함으로 보았을 것이다. 이 또한 저자의 삶을 이 소설에 투영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 피츠제럴드는 대법원 판사의 딸 젤다 세이어와 약혼하지만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파혼 당한다. 그러나 그의 첫 장편소설 〈낙원의 이쪽〉이 출간되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 젤다와 결혼한다. 그 후 문학적 천재로 당대의 성공과 즉각적인 열광을 꿈꾸었으나 그 알콜 중독과 빚으로 그의 삶은 무너졌고 돈 벌기 위하여 할리우드로가 시나리오도 쓰고 여러 가지 돈 되는 글도 썼으나 도중 심장마비로 죽는다.
결국 피츠제럴드가 인생에서 표적에 쏘아올린 화살들은 모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꽂혔다.

 
     
 
 
임영호, 대전 출생, 한남대, 서울대 환경대학원 졸업, 총무처 9급 합격, 행정고시 25회,대전시 공보관, 기획관, 감사실장, 대전 동구청장, 18대 국회의원, 이메일: imyoung-ho@hanmail.net

이 책의 판매는 데뷔작 〈낙원의 이쪽〉의 절반도 팔리지 않았다. 작가는 제목을 잘못 지은 게 아닐까 후회했다고 한다. 1940년, 그가 44살이 되어 죽었을 때는 거의 잊힌 작가였다. 놀랍게도 그가 죽은 후 예수의 부활처럼 되살아나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써 어떤 서점이든 반드시 놓여있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다. 잊혀진 것만이 진정으로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도 우리나라 방송의 시청률을 올리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재미가 있다. 도스토옙스키와는 다른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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