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 심은석
  • 승인 2013.12.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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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석의 세상사는 이야기]범죄를 예방하고 범인을 잡는 파수꾼

   심은석 충남경찰청 정보과장
마지막 남은 12월 달력 한 장이 달랑댄다. 몸도 마음도 바빠졌다. 중국에서 수시로 날아오는 미세먼지와 차가운 바람에 외출을 접고 종일 방안에 눌러 앉는다. 충남경찰이 새로 이전한 예산, 홍성의 언저리 내포 신도시는 예로부터 벌판이 넓다.

용봉산과 수암산을 뒤로하고 멀리 10km에 이르는 들판위에서 시뻘겋게 떠오르는 아침햇살은 눈이 부시다. 눈부시게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 풍경은 즐겁다. 충남경찰청사 꼭대기 층에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바라보는 풍경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

오늘, 범죄의 흔적을 찾아 24시간 불을 밝히는 청사 2층에 있는 과학수사 현장 감식실을 방문했다. 첨단 수사 장비들이 진열되어 있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증거 수집 장비뿐만 아니라 지문 채취 분석 장비와 사진 분석과 혈흔채취 등 다양한 장비들이 구축 되어 있다.

얼마 전에 충남경찰에서는 제 65주년 과학수사의 날 기념식이 있었다. 과학수사 요원을 격려하고 수사장비의 점검과 연구 성과를 되돌아보는 행사가 있었다. 과학수사는 자연과학·사회과학 등 과학적 지식과 기구·시설을 이용하는 합리적인 수사 기법을 의미한다. 1948년 11월4일 내무부 치안국에 설치된 '감식과'에서 시작되어 경찰은 매년 과학 수사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후 65년간 과학수사 기법은 첨단 수준으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증거 중심주의, 공판주의가 강조 되며 수사와 과학의 융합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한국 과학수사 기법의 핵심인 지문과 유전자를 이용한 신원확인 기법은 2004년 '동남아 쓰나미 사건', 2006년 '서래마을 영아 살해사건' 등을 해결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미세증거'와 '혈흔형태'로 대표되는 전문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미세증거 분석은 섬유, 페인트, 유리, 먼지 등 범죄감식 현장에 남아있는 작은 증거를 통해 범죄의 단서를 잡아내는 기법이다. 혈흔형태 분석은 사건 현장에서 핏방울의 위치, 크기, 모양 등을 관찰해 사건 발생 당시 일어났던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하는 기법이다.

지난 10월 보령 목사 부인 살인사건의 범인을 검거하는 데에 과학 수사 장비와 기법이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장문과 체취 증거도 과학수사에 활용되고 있다. 손바닥 지문을 활용하는 장문 증거 분석기법으로 지난 4월 발생한 부산 편의점 강도 사건의 경우 현장에 남은 단 한 개의 장문만으로 범인을 확정했다. 체취증거 분석은 훈련된 경찰견을 이용해 범인을 가려내거나 시신을 찾아내기도 한다.

과학수사는 이제 해외에 전수하는 선진 단계에 이르렀지만 더욱 발전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350만대 이상의 CCTV와 대부분의 개인차량에도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어 영상 장비를 통한 증거수집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희미한 사진으로 용의자 파악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경찰청은 촬영된 용의자의 얼굴과 DB 되어 있는 범죄자의 얼굴을 비교해 자동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3 D 입체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그리고 150만 외국인과 17세 미만의 지문 확보에 어려움이 있지만, DB 되어 있는 지문검색시스템(AFIS)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또한, 지난 9월 아산 경찰 교육원 옆에 신청사로 이전한 경찰수사연수원에 가상 범죄현장, 전문기법별 실습실, 모의 법정 등을 확충해 전문적인 실무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범죄를 제압하는 최상의 무기는 협력이라고 한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모든 현장에는 실체적 진실이 남아 있게 된다. 현장에 답이 있기 때문에 범죄 현장에서 범죄의 흔적을 찾는 경찰관은 눈초리가 예리하다.

1980년대 경기 화성 지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 살인을 소재로 했던 ‘살인의 추억’ 이라는 영화에서 수사관이 과학 장비 없이 뛰어 다니던 우스웠던 시절도 있었다. 수사형사의 경험에서 나오는 연고선 추적이나 현장에서 느끼는 막연한 감과 잠복 수사, 법 규정을 무시하고 접근하거나, 홀몸으로 밤을 새워 뛰어 다니는 수사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제는 최초 범죄현장에는 CSI( Crime Scene Investigation) 라는 로고에 하얀 감식복을 입고 완전 과학 장비를 휴대한 전문 감식 경찰이 철저히 감식하는 것으로 수사가 시작된다. 당시 경기 화성지역에 지금처럼 과학수사가 발전하고 CCTV가 설치되었거나 전국적인 DNA 지문활용 시스템이 있었다면 벌써 해결 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충남과 세종에는 도시 종합 CCTV 관제 센터가 지자체별로 곳곳에 설치, 운영 되고 있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천안, 아산 지역에 2006년도 통합 관제 센터가 설치된 이후로 강력 사건이 눈에 띄게 줄었다. 천안 아산 고속철도 역사 이름을 짓는 데에도 오랫동안 반목하고 갈등했던 천안, 아산 지역이 범죄 예방을 위해 양 지자체가 같이 투자하고 양쪽 직원을 파견하여 공동의 범죄 예방 시스템을 구축한 사례는 칭찬받을 만하다. 사고와 범죄예방으로 안전하고 행복한 시민의 삶을 보장해야 하는 것은 지방정부의 당연한 책무이다. 치안 문제는 국립 경찰의 문제만은 아니다.

강력 범죄가 빈발하고 밤거리가 불안한 도시에 누가 와서 살고 싶겠는가? 범죄 수사 기법이 완벽 할수록 범의(犯意)를 막고 범죄는 줄어들게 된다. 완전 범죄는 불가능 하고, 영구 미제 사건은 있을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중요하다.

치안 인프라가 부족하여 현지 한국인들이 살해되고 납치되는 필리핀 등 불안한 국가에는 국가 발전과 경제적 성장도 기대 하기 어렵지 않은가? 단돈 50만원에 사람을 살해 하거나 특정인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거나, 20만원에 불법 총기를 구할 수 있는 나라,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검거되지 않을 것이라는 나라에는 사람들이 투자하거나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충청 지역에는 세종 특별자치시와 행복 도시, 천안 아산 신도시, 내포 신도시, 오창 신도시, 대전 노은, 도안 신도시 등 새로운 도시가 곳곳에 설계, 신축되고 있다. 사회 공동체가 형성되고 사람과 돈이 모이는 곳에는 범죄와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최대한 예방하고 안전과 안심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곧 운영 예정으로 있는 세종특별 자치시를 촘촘히 연결하는 유비 쿼터스 체제의 ‘통합 도시 정보 센터’가 범죄 예방과 검거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안전한 치안 공동체는 지역 사회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소중한 공공재라는 생각이다. 치안 인프라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생각이다.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가장 안전한 지역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필자 심은석은 초대 세종경찰서장으로 역임하고 현재 충남경찰청 정보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공주 출생으로 공주사대부고, 경찰대학 4기로 졸업하고 한남대에서 행정학박사를 취득했다. 지난 7월 시집 '햇살같은 경찰의 꿈'을 출판했고 한국 문학신문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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