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치 동학군, 우세한 화력 앞에 꽃잎처럼 쓰러졌다
우금치 동학군, 우세한 화력 앞에 꽃잎처럼 쓰러졌다
  • 송두범
  • 승인 2024.01.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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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범칼럼] 동학농민혁명군의 기세 꺾은 우금치 전투
공주 우금티 동학혁명군 위령탑

1894년 9월 10일경 전봉준은 전라도 삼례 일대에 대도소(大都所)를 마련하고 제2차 봉기를 위해 농민군을 규합하였다. 손병희는 10월 14일경 논산에 이르러 전봉준 부대와 합류하였다. 이미 동학농민군은 공주를 중심으로 남쪽 논산, 동쪽 유구, 서쪽 홍주, 북쪽 목천 세성산 등지에 대규모 세력을 집결하였다.

점점 공주 충청감영의 위기는 높아만 갔다. 충청감영 자체만으로 동학농민군의 공격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 전봉준 부대의 공주 공격이 임박해지자 다급해진 충청감사 박제순은 정부에 긴박한 상황을 알리는 동시에 위기에 처한 충청감영에 지원병 파견을 요청하였다.

공주가 위기에 처하자 일본군은 물론 정부군 역시 최대한 군사력을 공주로 집중, 이동시켰다. 충청감사 박제순이 충청감영을 방어하기 위해 지원병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전봉준은 충청감영을 점령하기 위해 군사작전에 들어갔다.

전봉준과 손병희가 이끄는 동학농민군의 목표는 충청감영 점령이었다. 경천(敬天)을 점령한 농민군이 노성(魯城)을 거쳐 공주로 들어가는 길은 판치(널치)를 넘어 효포(孝浦)와 웅치(곰티)를 경유하는 길과 이인(利仁)을 거쳐 우금티로 들어오는 길이 있다. 전봉준은 동학농민군을 두 부대로 나누어 진격하도록 하였다.

10월 23일 이인전투를 시작으로 서울 진격을 위해 넘어야 할 충청감영 점령이 시작되었다. 이날 밤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은 효포로 이동하였다. 10월 25일 전봉준은 여명을 틈타 효포에서 감영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곰티를 일제히 공격하였다. 그러나 전봉준 부대는 곰티 고개를 넘지 못한 채 70여명의 전사자를 내고 경천으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동학농민군이 10월 하순 이인·효포전투를 통해 1차 공주 점령에 실패한 것은 동학농민군의 전략에 큰 차질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성과 경천 일대에서 전열을 정비한 전봉준 부대는 11월 8일 공주감영을 점령하기 위한 최후의 전투를 감행하였다. 농민군은 수적 우세를 앞세워 질풍노도처럼 관군을 포위·공격하였다.

공주 점령에 필요한 효포, 웅치, 이인까지 농민군이 진출할 수 있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전봉준은 전날의 여세를 몰아 공주 점령을 시도하였다. 농민군은 총집결하여 동쪽으로 판치 뒷봉우리에서 서쪽으로 봉황산 뒤편까지 30~40여 리에 걸쳐 산위에 진을 쳤다. 북쪽을 제외한 삼면에 진을 치고 공주 감영을 에워쌌다.

공주 용못(송장배미) 조형물

그러나 공주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지형 구조상 우금티를 넘어야 했다. 이미 우금티에는 일본군과 정부군의 방어진지가 구축되어 있었다. 또한 우금티 왼쪽 봉우리, 견준봉, 고개 밑, 금학동, 웅치, 효포 봉수대, 금강나루와 산성, 봉황산에는 일본군과 관군이 방어선을 구축했고 일본군과 정부군 연합부대도 농민군의 공격을 대비해 만반의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사실상 일본군과 관군 등 모든 병력이 동학농민군의 총공격에 대비하여 우금티 주변에 총집결한 상태였다. 드디어 11월 9일 오전 10시경부터 목숨을 건 ‘우금티 전투’가 시작되었다. 치열한 전투가 시작된 지 40분이 지난 10시 40분 동학농민군 주력부대는 우금티에서 약 500m에 있는 산 위까지 전진하였다.

이렇게 동학농민군은 우금티 마루로 올라오고 산 속에 숨었던 일본군은 사격을 퍼붓는 공방전이 40~50차례나 이루어졌다. 우금티 전투는 11월 9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종일 전개되었다. 그러나 우세한 일본군의 화력 앞에 동학농민군들은 꽃잎처럼 지고 말았다.

동학농민군들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고 남쪽으로 물러났고 계룡산 등지로 후퇴하여 20일간의 치열한 공방전은 농민군의 패배로 끝났다. 우금티 이후 살아남은 동학농민군은 1만 명에서 500명에 불과하였다. 전봉준은 우금티 전투 이후 재기를 노렸으나 논산, 전주, 원평 등지에서의 전투에서 연이어 패함으로써 11월 26일 태인 전투를 끝으로 농민군을 해산하고 12월 2일 순창에서 체포되었다.

공주 우금티전적 알림터

 

송두범, 행정학박사. 전 공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전)충남연구원 연구실장, 전)세종문화원부원장, 전)세종시 안전도시위원장,이메일 : songd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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