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착한 며느리, 바위가 됐네"
"아~! 착한 며느리, 바위가 됐네"
  • 윤철원
  • 승인 2023.10.22 07: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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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 칼럼] 태양십이경 돋아보기... 제10경 월봉기암(月峰奇岩)
전월산 중턱에 있는 며느리 바위, "권선징악의 전설 어려 신기로워"
'달이 굴러서 오른다'는 전월산 중턱에 위치한 '며느리 바위'

월봉은 전월산의 별칭이며 기암은 며느리 바위를 일컫는 것이다. 이 바위에 대한 전설은 1976년 발간된 연기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양화리 마을에 심성이 고약한 장(張)씨 성을 가진 부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장 부자가 마당에서 퇴비 쌓기를 하고 있는데 백발이 성성한 노스님이 지나가다가 공양미 시주를 권하는 탁발 염불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심술기 그득한 부자는 스님의 바랑에 쌀 대신 퇴비를 한 삽 떠 넣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그 집 며느리는 대경실색하였다. 그리고 시아버지 몰래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바랑에 채울 만큼 넉넉한 양의 쌀을 들고나와 동구 밖을 막 나서던 스님에게 시아버지 대신 사죄하고 바랑의 퇴비를 쏟아 버린 후 들고 나온 쌀로 채워드렸다.

며칠 후, 며느리는 짐안에서 베틀에 옷감을 짜려고 도투마리를 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노승이 나타나더니 하는 말이 “오늘 오시(午時, 정오)에 이 집에 큰 변고가 생길 것이니 나를 따라 전월산으로 피해야 살 수 있소. 그리고 산에 오를 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온 곳을 돌아보면 아니되오. 만일 돌아보면 큰 화를 당할 것이니 명심하시라.”며 집 나서기를 재촉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놀란 며느리가 엉겁결에 명주실 감은 도투마리를 머리에 이고 노승을 따라 전월산을 오르는데 뒤따르던 고양이가 얼마나 시끄럽게 “야옹! 야옹!”하며 울어댔는지 무심코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대궐 같던 자기 집이 물속에 잠겨버린 것이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스님! 이게 무슨 일인가요?”라고 물어보려 하였으나 노승은 간데없고 시끄럽게 울어 대던 고양이는 바위가 되어 있었다. 그 순간 여인도 점차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전월산 중턱에 있는 바위를 며느리 바위, 연못이 되어버린 장부자 집터를 장자소(張子沼)라고 불렀다는 전설이다.

며느리 바위는 전월산 정상에서 남서쪽 숭모각 방향으로 등산로를 따라 400∼500보 정도 내려가다 보면 만난다. 이 산의 8부 능선쯤에 있는데 땅에 박힌 커다란 바위 위에 또 다른 널찍한 바위가 얹혀 있다.

여양진씨 대종회 진영은 회장의 말에 의하면 “1970년대만 해도 전월산에 지금처럼 나무가 울창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곡리에서 며느리 바위를 바라보면 마치 등에 아기를 업은 시골 아낙네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산에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지금은 숲이 우거져 그 형상을 멀리서 조망할 수 없으니 이를 두고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이 시의 주제가 월봉기암(며느리 바위)이니, 전월산이 민둥산이었던 시절 강 건너 반곡리에서 며느리 바위를 바라본다는 상상을 하면서 이 시를 감상해 본다.

봉회월전작명원(峯回月轉作名園 산봉우리 돌아 뜬 달이 멋진 정원 비출 때)

암세최기화여혼(岩勢最奇化女魂 바위 모양 기이함은 여인 넋이 변한 게라.)

행면진편장뢰뢰(幸免秦鞭藏磊磊 진시황 채찍 피해 다행히 큰 바위 아래 숨은 듯)

원초곤화입헌헌(遠超崑火立軒軒 먼 곤륜산 불마저 피한 듯 당당하게 서 있구나.)

상함벽락천추색(上含碧落千秋色 위로는 푸른 하늘 천 년 빛 머금었고)

하압장강만리원(下壓長江萬里源 아래로는 압도하니 금강이 멀리 흘러가네.)

일편한산감공어(一片寒山堪共語 적막한 산의 바위와 말이라도 나누고파)

시시출망의교문(時時出望倚橋門 때때로 나와 바라보네, 시렁문에 기댄 채)

1절 첫 구절의 봉회월전(峯回月轉)에서 봉(峯)을 전월산으로 해석하면 현지 상황과 맞지 않게 된다. 제2경 토치명월(兎峙明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반곡리에서는 달이 마을 동편의 토봉령(兎峯嶺)에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토봉령 위에 뜬 달이 전월산을 비추니 멋진 정원이 되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2절 며느리 바위가 보일 정도로 밝은 밤이니 아마도 보름달인 듯하다.

전월산

3절 진편(秦鞭, 진시황의 채찍)은 진편석혈(秦鞭石血)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옛날 진시황이 바다 건너 해 돋는 곳을 보고 싶어서 돌다리를 놓고 싶었다. 그때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돌들을 바다로 내몰았다고 한다. 그런데 빨리 가지 않자 채찍을 휘둘러 돌에서 피가 흘렀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작가는 며느리 바위가 그 가혹한 채찍을 피하려는 듯 큰 바위를 덮어쓴 채 숨었다고 표현하였다.

4절 곤화(崑火)는 화염곤강 옥석구분(火炎崑岡 玉石俱焚, 곤륜산에 불이 치솟으면 옥과 돌이 모두 탄다.)이라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우뚝 서 있는 며느리 바위가 온전한 것은 곤륜산 불길을 피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표현이다.

5절, 6절 벽락(碧落)은 푸른 하늘, 장강(長江)은 금강을 일컫는 것이다.

7절 일편한산(一片寒山)은 전월산의 특정한 부분, 즉 며느리 바위를 지칭한 듯하다. 달빛 휘황한 밤중에 집 밖으로 나온 시인이 멀리 보이는 며느리 바위와 대화하고픈 심경을 표현하였다.

8절 의교문(倚橋門)에 대한 해석이 난감하다. 직역하면 ‘다리문(橋門, 교문)에 기대서’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면 시를 읽는 맛이 나지 않는다. 교(橋)는 ‘건너다니는 다리’ 뿐만 아니라 ‘나무를 가로질러 만든 시렁(선반)’이라는 뜻도 있으니 ‘시렁문에 기대서’라고 해석하는 것이 좀 더 맛깔나지 않을까?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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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2023-10-22 08:59:14
이웃과 함께 착하게 상부상조 하며 잘 살라는 며느리 바위의 안내 판, 전월산의 정상에 위치한 용샘 등의 안내판이 없어져서 관계당국에 확인하여 조속히 복구하도록 했는데 아직도 재 설치를 안하고 있습니다. 본 전월산을 오르고 내리며 잠간의 안내판을 읽어 보면서 스스로 뒤 돌아보는 생각하는 기회 등이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조속한 복구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