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친왕 흔적 찾아 김재식 고가, 관광상품화해야..."
"의친왕 흔적 찾아 김재식 고가, 관광상품화해야..."
  • 세종의소리
  • 승인 2023.07.06 0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유태희 세종시장 문화특보, 부강 김재식 고가에 머문 의친왕
"홍순형, 김재식 행적 밝혀지지 않는 건 의친왕과 함께 비밀독립운동 때문"

유태희 세종시장 문화특보가 부강면 김재식 가옥에 얽힌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했다. 여기에 의친왕이 머물렀던 새로운 사실을 구술을 통해 확인했고 문화재적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1편 '왕실 독립운동의 시작', 2편 '부강의 김재식 가옥에 의친왕이 머물렀다'는 순서로 글을 게재한다./편집자씀

유태희 문화분야 특보<br>
유태희 문화분야 특보

세종시 의회는 지난 5월 24일 세종시에서 제출한 관광조례안을 3번째 시도 끝에 23일 행정복지위원회 원안이 가결되었다. 그 후 6월 15일 조례안 심의·의결, 22일 예결의 추경안 심사, 27일 본회의 추경안 심의·의결을 거쳐 통과되었다. 이로써 최민호 시장의 핵심 공약인 문화관광도시 업무를 수행할 관광재단을 만들기 위한 ‘세종시 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하 관광재단조례안)’이 지난 6월 23일 시의회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이제 세종시는 문화와 예술을 바탕으로 관광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도전을 앞두고 있다. 오늘 눈에 드는 뉴스는 <한국 공략 강화 나서는 삿포르·아사히 ‘일본의 맛’ 다시 인기>였다. 지난해 4분기부터 일본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일본 맥주 역시 국내 시장에서 다시금 주목받는 분위기다. 맥주 성수기인 여름철 매출을 두고 주요 일본 맥주 브랜드들도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종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대상을 특정해야 한다. 그것은 먼저 바로 가까운 일본인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강에 살았던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부강초등학교 출신으로 아나키스트 박열의 부인이었고 조선의 독립유공자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인정받았던 가네코 후미코. 아직도 그녀의 살았던 집이 남아 있으니 관광지로 개발하기도 쉽다. 더구나 일본에 가네코 후미코 연구회도 운영되고 있으며 팬클럽도 있다. 이뿐 아니라 사람들은 새로운 관광지를 원하지 않던가.

청주시를 살펴보면 세종대왕이 눈병치료를 위해 머물렀다는 초정행궁을 복원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의친왕도 부강의 김재식가에 머물렀으니 행궁을 못 지을 이유도 없다.

‘나의 아버지 의친왕’을 쓴 이해경의 증언과 역사편찬위원회 회장으로 활동한 서울대 이태진교수에 의해 밝혀진 내용은 이같은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당시 의친왕을 도왔던 제국익문사의 독리(장관급으로 제국익문사의 수장을 ‘독리’라고 부른 기억이 난다)였던 이호석이 있는데, 이호석 대감은 아버지가 일본에 보빙대사로 해외를 나가신 시절부터 총애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바로 흥선대원군의 서장손이 되므로 아버지와는 육촌관계가 되는 종친이기도 하다.

이호석 대감과 함께 아버지께서 부강에 들르시면 꼭 들르셨던 곳이 바로 김재식의 고가이며, 근처 홍순형 대감의 댁에도 자주 들르셔서 독립운동 자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홍순형 대감은 또한 운현궁 흥선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의 장인이자 헌종비의 조카로 대한황실의 외가댁이자 사돈이 된다. 그런 연고로 홍순형 대감은 궁내부 특임관을 지내고, 역시 운현궁의 이호석 대감과 김재식 선생과 함께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들로 왕실 독립운동 자금 마련에 중심이 되었다.

김재식 고택에 걸려있는 김재식 선생 사진 등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김재식 고택에 걸려있는 김재식 선생 사진 등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사돈이자 외척인 홍순형은 운현궁과 사동궁의 정신을 이어받아 일본이 주는 작위도 거절하고 제국익문사의 요원으로써 비밀리에 의친왕과 함께 비밀독립운동에 투신한다. 부강 지역에서 특히 홍순형 대감이나 김재식의 행적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역사편찬위원회 회장으로 활동한 서울대 이태진교수에 의하면 당시 충청도에서 의친왕께서 기거하시던 김재식 고가에 항상 함께 가셨던 제국익문사 독리 이호석 대감의 손자 이해철은 “사동전하 (의친왕을 지칭한다)께서 전하의 호인 ‘춘암’에서 ‘암’자를 따서 ‘송암’이라는 호를 김재식에게 내려주었다. 그리고 부강포구와 부강역을 통해서 특히 김재식에게 만주로 무역 교역을 할 것을 명하였는데, 이는 신흥무관학교와 만주에 위치한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전달하고 블라디보스톡의 제국익문사(지금의 비밀첩보원)요원들에게 자금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고 하였다. 

실제로 김재식은 만주 지역으로 교역을 통해 큰 부자가 되어 충청권에서 알아주는 갑부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전부 독립자금으로 쓰기 위한 중요한 행위였다고 한다. 그리고 독립운동의 특성상 기록과 자료를 남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왕실 내부에서 어른들께서 들은 이야기들을 이렇게 집대성하고 자료를 모아 세상에 내놓는 일은 황실의 후손들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황실의 종손이자 아버지의 장손인 준이와 함께 (‘이준 황손을 지칭) 의친왕기념사업회를 설립하여 24시간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이름을 세상에 밝힐 수 없이 활동했던 수많은 제국익문사 독립운동가 요원들의 삶을 재조명하고자 한다고 했다.

우리는 한 시대를 잃어버리고 한 시대를 잊고 살았다. 조선의 말기와 왕실문화다. 그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위대한 세종대왕의 아호를 딴 세종시에서 이것들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세종시 역사에서의 르네상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역사를 찾아야 하고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 이로써 우리 세종시는 왕실문화를 대중에게 제공하는 관광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충과 효를 강조한 현판
충과 효를 강조한 현판

이것은 왕실과 관련된 역사적인 장소를 보존하고 유지함으로써 가능하다. 행궁을 짓고 전통정원 등을 복원하여 관광객에게 역사적인 경험을 관광상품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서 왕실과 관련된 유물과 문화재를 전시하고 관리하여 오랜 역사와 문화를 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유무형의 전통과 문화를 후손들에게 전승하고 계승하는 것이 어른 된 자의 몫이기도 하고, 꿈이 없으면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