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욱일기 붙들고 뭘하려는가
지는 욱일기 붙들고 뭘하려는가
  • 조한수
  • 승인 2013.08.12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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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수의 세상과 놀다]일본 천황제 폐지 않는 한 야욕 계속돼

해마다 8월15일 광복절이 다가오면 온 대한민국은 이웃나라 일본으로 인해서 신경이 곤두서 있게 된다. 유럽의 독일이 유태인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게 무한사죄와 보상을 법으로 만들어 끝까지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면서 나치 전범자들을 스스로 찾아내어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행동은 동북아의 한국과 중국의 국민들 모두에게 부러움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양심있는 이웃이 없기 때문이다. 양심이 있기는커녕, 오히려 독일과는 정 반대로 군국주의 망령에 이끌려서 지금도 망국의 길을 스스로 가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와 그들에 대한 저주가 습관같이 터져 나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심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행위에 대해서 그들의 뼛속까지 스며있는 사상이요 종교인 ‘신토니즘을 알지 못하면 결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이 일본 군국주의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신도(神道)는 일본의 정신생활의 기본이 되는 그들의 고유사상이다.

그들은 이 사상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신도의 최고의 신은 황조(皇朝) 천조대신(天照大神)이며, 가장 실질적인 신은 현인신인 천황이며, 신도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조선에 봉사하는 심리, 즉 숭조관념(崇祖觀念)이요 천황 및 국가에의 봉사, 즉 충군애국(忠君愛國)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를 강제 병합하여 신도사상으로 식민통치하던 그들의 통치이념에서 나온 내용이다.

 
신도는 고대 일본인의 가미(神)에 대한 신앙과 이에 대한 제사의식에서 기원된다. 기원전 7세기경 천황의 부족이 일본역사에 등장하면서 태양의 여신이 최고신의 지위를 하였고 이 천황 가계의 조상신으로 숭배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가미에 대한 신앙은 고대 일본의 정치세력의 발달과 함께 중앙 집권화 되는 과정에서 정치신화로 형성되었고, 천황의 권력이 절대화되어 갔으며 천황의 조상신(천조대신:天照大神)을 중심으로 한 신화적인 인물이나 역사적인 영웅을 신사에 봉제하여 숭배하는 신앙의 형태로 굳어지게 되었다.

특히 일본의 국가 신도(新道)는 처음부터 “천황중심주의와 그것을 옹호하기 위한 무력주의”의 깊숙한 연계 속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천황제와 군국주의가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제국주의적 침략정책 및 식민지 지배에 이용되었다. 이러한 신도와 군국주의와의 결탁은 침략적 전쟁을 치르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그 한 예로, 일제말기에 일본정부는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 변태적인 Neo-Shintonism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신토사상에 세뇌된 일본국민들은 사회분위기와 군중심리에 따라 맹목적으로 따라 갔다. 대동아 전쟁 말기, 코너에 몰린 일본 엘리트들은 일본군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무(無 - nothingness)사상에 바탕을 둔 죽음 사상을 내세웠다.

‘죽음은 단지 영혼이 이쪽에서 조상들과 연합하기 위해 저쪽으로 전이하는 이벤트일 뿐,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고 용기, 영광, 충성에 의한 자기희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전투에서 궁극적인 불명예는 항복하거나 포로로 잡히는 것이라며 그럴 바에는 전사하거나 자살하는 편이 훨씬 명예스럽다는 죽음사상을 팽배시켰다.

그 결과 어느 전쟁터에서는 60-70%의 일본군들이 가족에게 마지막 편지를 써놓고 자살을 택하기도 하였고 우리가 잘 아는 ‘가미가제’특공대는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1868년 천황이 권력을 잡고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단행하면서 신도(神道)는 종교적으로 다시 부활하여 황실의 권위를 높여주는 국가주의적 종교가 된 것이다. 이리하여 일본천황은 태양의 여신의 성육신(成肉身:incarnation), 절대적인 신의 현현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특히 메이지 유신 헌법에 따르면 제1조에서는 천황의 가계는 태초부터 시말까지 일본을 다스렸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제3조에서는 천황은 신성불가침의 존재라고 명시한다. 즉 천황은 오류가 없는 절대 권세자요 살아있는 신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일반 대중 사이에는 천황은 신으로부터 권위를 받은 전 우주의 통치자라는 극단적인 믿음까지도 횡행했다.

이러한 생각은 일본정부에 의해서 공식적인 지지를 받았고 궁극적으로 일본은 전 세계를 다스릴 운명을 타고났다는 확신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군부가 정권을 잡은 후,1877년 일본은 신사를 종교로부터 분리시킨 후,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만약 신사참배가 중단된다면 제국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까지 하며 결연을 다졌던 것이다.

이미 메이지 유신 이래 정부는 황실신도를 주축으로 천황을 신격화하고 외경(畏敬)과 경애(敬愛)의 이념을 온 국민들 마음에 심고, 민중은 가정과 마을을 매개로한 종교적 공동체 의식을 국가 공동체로 확대하면서 천황신앙을 배양해 갔다. 1910년 을사늑약 이후부터 일제는 한국민의 일본 신민화 정책을 위해서는 신민으로 만드는 교육을 시행함과 더불어 일본 황실의 조상과 전몰장병을 참배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1919년 7월 2일에 신도 종교의 조선 본산이 될 웅대한 신사건설을 남산에다 착공하였다.

1925년 이를 준공하면서 존센징구(朝鮮神宮)라 이름하여 태양신 ‘아마데라스 오미까미(천조대신:天照大神)’와 일본 황실의 제 조상과 명치 천황에게 헌당하였다. 이로부터 총독부는 한국의 방방곡곡에 신사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1930년 이후 일본의 군벌이 권력을 행사하면서부터는 신사참배는 한층 더 강요되어 일본 국민에게는 물론 한국민 전체에게도 강요되었다.

이때에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진 기독교 학교들이 문을 닫거나 선교사들이 자국으로 쫓겨나기도 하였고 많은 목사들이 옥에 갇히거나 순교를 당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1938년 조선장로교회는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이에 반대하는 목사들은 모두 목사직을 면직시키고 총회의 임원 목사들이 솔선수범하여 신사에 가서 절을 하고 심지어는 바다에서 또는 학교 운동장 등에서 간누시(신도의 사제)에 의한 신도 세례식인 ‘미소기하라이’ 세례식에 목사들이 세례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고 말았다.

이분들 중 많은 분들이 한국의 원로로 행세하며 큰 교회들을 이끌고 오던 분들이다. 이것이 일본으로 인한

     
 
     
 
 
조한수, 서울출생, 미국 Lee University졸업(B.Sc), 동대학원 졸업(M.div), 총신대 수학,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수료, 뉴질랜드 선교 20년간 사역, 현재 세종개혁교회 목회 사역 중irchurch@naver.com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러기에 일본의 천황제가 폐지되지 않는 한, 그들의 군국주의 야욕은 끊이지 않을 것 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일제의 흔적이다. 일제에 붙어서 충견노릇을 하던 자들이 지금은 시대적 이데올로기에 탑승하여 사이비 보수계의 지도자나 진보세력의 나팔수 역할을 하며 나라를 갈라놓고 있으니 이것이 걱정이다. 우리 안에 있는 이러한 사이비들을 걸러내지 않는 한, 일본은 미소 지으며 자신들의 군국주의의 망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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