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잔이상 술이면 망신살이 될 수 있다"
"석잔이상 술이면 망신살이 될 수 있다"
  • 세종의소리
  • 승인 2023.05.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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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정환 한국영상대 교수, 술에 얽힌 얘기로 풀어보는 음주 방식
술에 대한 예의... “한잔을 마셔도 열 잔처럼, 열 잔을 마셔도 한 잔처럼”
김정환 한국영상대 경찰행정과 교수
김정환 한국영상대 경찰행정과 교수

술(酒)을 대하는 지혜로운 삶, 술 석 잔 이상이면 주정에 망신살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一杯之酒 藥, 二杯之酒 笑, 三杯之酒 酒酊, 四杯之酒 亡身)

“한 잔은 약이요, 두 잔은 웃음이요 석 잔은 주정이고 넉 잔 이상은 망신이라.”

술은 살아서도 석 잔이고 죽어서도 석 잔이다. 술의 역사를 보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만들어 먹었다고 하니 그 역사는 수천 년 전부터 일 겁니다. 어떻게 ‘밀’이라는 곡물로 미생물 덩어리인 누룩을 만들고 그 누룩과 쌀을 버무려 발효시켜 마시면 한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물을 만들었는지, 참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그 신비로운 물이 역사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인간을 파멸시키고 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하는 독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고려 시대 ‘동국이상국집’의 저자이며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을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내 민족의식을 고취 시킨 ‘술의 시인 이규보’는 술을 의인화한 소설, ‘국 선생 전’에서 술과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많은 일 중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와 분수는 어디까지인지? 머물 때와 물러날 때는 언제인지?’를 가르쳐 주면서 술과 문학, 그리고 정치의 3박자를 잘 조화시킨 작품을 남겼습니다.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도 명나라에 보내는 국서를 단숨에 써 내려가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칭송받은 애주가이며 청백리로 대사헌까지 지낸 ‘손순효’는 성종으로부터 하루에 석 잔 이상은 마시지 말라는 엄명과 함께 은잔을 하사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손순효는 더 많은 술을 마시기 위해 하사받은 은잔을 두드려 얇게 펼쳐서 큰 대접을 만들어 마셨는데 이 소식을 들은 성종은 크게 웃으면서 “앞으로 내 속이 좁아 보이거든 그 잔처럼 두드려 넓게 해다오”라는 말과 함께 가끔 술과 음식을 내려보냈다는 고사가 전해 내려옵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무도했던 연산군 시대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는 방안의 하나로 ‘요즘 술로 인해 일도 안 하고, 도덕이 무너지고 흉년에 금주령에도 민간에서 술 빚기를 그치지 않는다’ 이를 구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과거시험 문제를 내자

‘사람의 마음에 생기는 화의 근원은 술에서 비롯되며 술을 마시면 마음이 혼탁해지며 나약해지고 어리석어진다. 술은 마음을 갉아먹는 문(門)이기 때문이다’라고 ‘김구’라는 유생이 답을 써냅니다.

하지만 제사상이나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기쁠 때나 슬플 때 술을 찾는 건 동서고금, 인류의 오랜 풍습 중 하나 임에도 술 때문에 병이 나거나 망신을 당하거나 화를 입으면, 자신의 의지로 실컷 마셔 놓고 결국 ‘술’을 탓하게 되는 것이 사람입니다.

이러한 폐단과 국가 전매사업의 이유 등으로 제가 어릴 적에는 밀주를 철저하게 단속했습니다.

어느 해 추석 즈음, 동네 입구에서 선친이 웬 모르는 사람을 가로막고, 서로 밀치고 당기는 모습을 보고 싸우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술 조사를 나온 공무원을 막아 세우고 말을 시키고 있는 사이에 동네 사람들이 명절 제사상에 올리려고 몰래 빚어 놓은 술을 감추도록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아주 사려 깊은 행동이셨지요. 지금의 잣대로 재보면 선친께서는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계신 거였습니다.

막걸리의 힘을 빌려 그 힘든 농사일을 하던 시절, 명절에는 시골 동네 여기저기에서 큰 소리가 납니다. 농사일 안 도와주었다며, 부모를 잘 못 모신다며, 돈 꿔 주지 않았다며, 물꼬나 논두렁 문제. 논·밭·산 경계선 문제 등으로 형제, 사촌, 종친, 이웃 간, 일 년 동안 쌓아 놓은 섭섭함을 술의 힘을 빌려 화풀이를 하는 겁니다.

물론 명절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원래의 인정 많은 시골 인심으로 돌아 가지만...

적당한 음주, 절제된 술문화가 사회에 필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평생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으셨던 선친께서는 “기분 좋자고 마신 술에 취해서 소리 지르고, 시비 걸고, 싸움하고, 심지어 며칠씩 출근도 안 하는 사람이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하시면서 술 마시고 실수하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시면서도 “술을 마시려면 우리 정환이처럼 한잔을 마셔도 열 잔처럼, 열 잔을 마셔도 한 잔처럼 마셔야 한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처가 집 냉장고에 있는 모과주를 마시려다가 멸치 액젓을 마시고 기겁을 해서 주방으로 뛰어가던 일, 지방 근무 시 몸에 좋다는 이상한 동물 술을 얻어먹고 병원을 전전하면서 다 죽었다 살아난 일, 전철에서 곯아떨어져 종점까지 갖다가 택시로 다시 돌아온 일이 다반사였던 것은 지금까지도 선친께는 비밀입니다.

지구대 파출소에 근무하다 보면 주취자 관리로 너무나 힘들고 골치 아픈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특히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이 되면 그런 분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지요. 경찰의 큰 부담일 뿐만 아니라 선량한 시민을 위한 치안 서비스가 엉뚱한 곳으로 쏠리는 현장입니다.

또한 경찰에서는 대외적으로 술 드신 분들을 보호하는 중차대하고 너무 너무 힘든 일에 더해 대내적으로 직원들이 음주운전을 하지 않도록 365일 ‘술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상급자는 부하직원들에게 술을 마시면 반드시 대리운전으로 귀가하도록 귀 따갑게 이야기하면서 대리비도 내주고 심지어 직원의 대리기사도 자처한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렇게 ‘술’을 마시고 운전하게 되면 파면이나 해임 등의 중징계를 받게 되고 이로 인해 조직에서 배제된다면 10억 원 이상의 금전적 손해와 조직의 배신자로 동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되고 가족에게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며 본인은 평생 죄인의 꼬리표를 달고 다닐 수밖에 없는 이런 무모한 행동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를 조금이나마 예방하기 위해 제가 지구대 파출소 직원들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았을 때 매주 금요일 오후 모든 직원에게 ‘음주운전 예방을 위한 금요일의 막내 생각’이라는 제목으로 직접 만든 문자를 매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설이나 추석 명절 즈음에는 ‘음복 주의보 발령, 잘 마시면 복이요, 잘 못 마시면 독이 되나니 음주운전, 나와 내 가족과 조직이 함께 죽는 트리플 아웃입니다’

인사발령 철이면 ‘그동안 밤새워 쌓아온 동료애! 석별의 정을 나누는 것도 좋겠지만 음주 후 차 키는 절대 안 돼요! 순간을 편 하자고 평생을 담보로 잡히시겠습니까?’

계절별로는 ‘가을 단풍이 물들어가는 것처럼 선배님의 얼굴도 물들고 있지 않은가요? 그렇다면 대리기사님을 부르세요!’

협박성 메시지로는 ‘단비는 2천 5백억 이익, 음주운전은 4억 5천 손해, 산삼 보약 백 첩 먹은들 청산가리 한 숟가락이면 동반 폭사’

읍소형으로 ‘혹시 술 한잔하시고 운전석에 앉으셨나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옆자리엔 가족의 사랑이, 뒷자리엔 국민의 믿음이 타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강조를 하고 또 하였습니다만 얼마 안 가서 또 음주운전 보고가 들어 오지요.

어느 날 새벽, 사무실에서 자고 있는데 지구대장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과장님 엊그제 발령받은 시보 직원이 음주 사고를 냈는데 그 아버지가 시골에서 올라오셨는데 과장님을 보고 싶답니다.” 에구구 저를 본들 무슨 해결책이 있겠습니까?

술 주(酒)자를 보면 물 수(水)변에 닭 유(酉)로 술을 마실 때 한꺼번에 마시지 말고 닭이 목을 들어 물을 먹듯이 조금씩 마시고 유시(오후 5시~7시) 이후에는 술을 삼갈 것을 권하는 글자랍니다.

얼마 전 상습적으로 음주운전을 했을 60대 전직 공무원이었다는 사람이 대낮에 음주 만취한 상태로 운전을 하다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나던 9살 ’배승아 양‘을 치어 숨지게 하는 일이 벌어져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저 만행을 저지른 저 인간에게 무슨 무슨 법을 적용해서 처벌하겠지요. 하지만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계신 그 예쁘고 착한 ’승아‘양의 유가족에게 그 법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음주가 주로 직장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호주는 가정에서 술마시는 풍토가 만들어져 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사진출처 : 네이버

이제는 정말 음주하고 운전대를 잡는 못된 행태가 절대 나오지 않도록 강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만든다고 하지만 이에 더해서 단 한 번이라도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를 일으킨 경우 변명을 받아 주거나 관용을 베풀어서는 절대 안 되며 ’원 스트라이크 아웃‘을 적용하여 평생 면허 취소에 차량 압류의 강공법을 적용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저녁 모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차를 집에 두고 대중 교퉁을 이용, 모임 장소에 가서 제 주량에 맞게 간단히 마시고 21시 이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나 택시로 귀가를 합니다.

술 좋아하시는 분들, “한 잔은 약이요, 두 잔은 웃음이요 석 잔은 주정이고 넉 잔 이상은 망신”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한잔을 마셔도 열 잔처럼, 열 잔을 마셔도 한 잔처럼”

이것이 술에 대한 지극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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