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같은 만남, 기후 같은 일상
날씨 같은 만남, 기후 같은 일상
  • 문지은 기자
  • 승인 2023.03.29 0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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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석 교장의 해밀초 이야기] 등굣길에 만나는 아이들
“날씨는 변덕스럽지만 언제나 봄·여름·가을·겨울이 온다”
유우석 교장이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의 교통지도를 하고 있다.
유우석 교장이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의 교통지도를 하고 있다.

개교 때부터 아침맞이를 했습니다.

보통 아침맞이는 교문 앞에서 하는데 저는 사거리에 횡단보도에서 합니다.

개교 때 주변 도로가 정리되지 않아 등굣길을 챙기자는 마음으로 사거리에서 녹색어머니회 깃발을 들고 길 건너는 아이들을 만났고 2년 반이 넘은 지금 등굣길은 정비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아이들을 만납니다.

“횡단보도 잘 건널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누나는 여기서 인사하자.”

1학년 친구에게 제안했습니다. 이번에 입학한 친구인데, 항상 중학생 누나가 초등학교 정문까지 데려다주고 갑니다. 엄마 같은 누나입니다. 매일 아침 거의 똑같은 시간에 동생을 데려다주고 중학교로 가는데 아름다울 정도로 예쁩니다.

“혼자 갈 수 있겠어?”

누나가 물어보자 동생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신호가 바뀌자 동생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누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횡단보도를 다 건너 동생이 누나를 보고 손을 흔들고 막 뛰어갑니다. 동생이 모습이 사라지자 중학생 누나에게 내게 인사하고 중학교 발길을 옮겼습니다.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길 건너 아이가 인사합니다. 올해 3학년이 된 친구인데 이 친구는 아침마다 길 건너에서 한번, 길 건너에서 학교로 향하는 2층 보행데크를 건너며 나를 내려다보며 또 한 번 인사합니다.

어제보다 목소리가 큰 걸 보니 여러 번 불렀나 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2층 보행데크를 건너며 한마디 던집니다.

“저기서 몇 번이나 인사 했다구요. 안 돌아보시고.”

“미안, 못 들었어.”

시간이 지나면 엄마나 아빠랑 같이 오는 아이들이 등교를 합니다. 날마다 비슷한데, 아침에 스포츠 클럽(농구, 배구, 핸드볼)하는 친구들은 8시 전에, 친구들과 같이 오는 아이들은 8시 20분경, 부모님과 같이 오는 친구들은 8시 30분경 옵니다. 8시 30분 이후에는 유치원 친구들이 많이 옵니다.

“안녕하세요. 너도 인사해야지.”

엄마와 같이 온 1학년입니다. 엄마가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

인사를 하고 아이에는 손을 흔들어줍니다. 가끔 고개를 숙이는 인사가 좀 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실내에서는 괜찮은데 실외 특히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실외에서 굳이 고개를 숙여 인사할 필요가 있을까. 손을 흔들거나 정말 가벼운 목례와 반가운 목소리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사를 즐겁습니다. 정말 미묘한 차이인데 인사를 나누는지, 인사를 할 때 살짝 보이는 표정은 첫인상을 결정짓게 만들기도 합니다.

8시 50분쯤 되자 인적이 드뭅니다. 차량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신기할 정도도 주변이 조용해집니다.

그때 저 멀리 한 아이가 천천히 걸어옵니다. 교통 안내를 하며 아침맞이를 마치게 해줄 친구입니다.

“기다렸잖아.”

“교장 선생님 혹시 저 지각이에요?”

“아니. 지금 가면 딱 맞춰 도착할 거야.”

교문 쪽에 다다르자 OO이 혼자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이 친구는 저와 인연이 있어 함께 많은 얘기를 나눴던 친구입니다.

“왜 교실에 안 가고 있어?”

“실내화 가방을 두고 왔어요. 지금 아빠가 갖고 오신다고 했어요.”

“그래. 아빠 서울에 계시지 않니?”

아빠 직장이 서울이라 주말에 만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기차 타고 서울 가신다고 했어요.”

잠시 후에 자전거를 타고 온 아빠가 아이에게 실내화 가방을 건넵니다. 아빠와도 가볍게 인사를 나눕니다.

아침에 아이들을 맞이하고 교장실에 들어왔습니다. 컴퓨터를 켜 공문을 살피는데 ‘쥬키니 호박 공급 중단’ 공문이 눈에 뜁니다. 마트에서 쥬키니 호박을 보며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유전자 변형 돼지 호박 급식 공급 중단’이라고 학교 오기 전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쥬키니 호박이 돼지 호박?

영양 선생님이 교장실로 들어오셨습니다.

“혹시 공문 보셨어요?”

“쥬키니가 돼지호박인가봐요.”

“아, 보셨군요. 돼지 호박이라고 잘 부르지 않는데. 우리 학교는 카레 할 때 쥬키니 호박을 놓고 대부분은 애호박을 사용하는데 마침 모레 메뉴가 카레였어요. 아침에 공공급식센터에서 연락이 주고 받으며 주문 취소하고 메뉴를 조정했어요.”

영양 선생님은 급식과 관련된 여러 상황을 공유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행정 실장님이 들어옵니다.

“올해부터…”

일상입니다. 일상은 기후와 날씨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각각의 색깔을 지닌 사계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날씨는 비가 오기도 하고 맑기도 합니다. 때로는 겨울인데 따뜻한 날도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매우 변덕스러운 것 같지만 조금 더 길게 보면 매년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옵니다.

날마다 아침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것, 날씨처럼 만나지만 기후처럼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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