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든 먼 들녘, 소와 양 알아보겠네"
"붉게 물든 먼 들녘, 소와 양 알아보겠네"
  • 윤철원
  • 승인 2022.10.31 09: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철원칼럼]태양십이경 돋아보기...제3경 나성낙조(羅城落照)
노년 독락정 올라 해지는 풍광 바라보면 인생무상 읊은 선비
태양 12경은 세번째로 '나성 낙조'를 노래했다. 지금은 호수공원이 만들어지고 물에 비친 호수의 모습이 그지 없이 아름답지만 예전에는 나성리 쪽 낙조가 금강물과 대비를 이루면서 장관을 연출했으리라. 사진 서영석 기자

나성낙조는 나성동의 노을 진 광경을 바라보며 느낀 소감과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한 시라고 볼 수 있다.

나성동은 원래 공주군 관할이었으나 1973년에 연기군으로 편입되었다가 2012년 세종시 관할이 되었다. “토성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일명 나리재라고도 한다.

일설에 의하면 신라가 백제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토성이라서 나성(羅城, 신라의 성)이라고 했다지만 믿을 건 못 된다.

나성동에서 주목할 만한 유적은 독락정(獨樂亭)이다. 임난수 장군의 둘째 아들 임목이 부친을 절의를 사모하며 조선 초기(1437년, 세종 19년)에 건립한 정자로서 금강팔정에 들었을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임난수 장군은 고려말 공조전서(판서)를 지내다가 나라가 망하자 세종시 전월산 아래로 낙향하여 고려에 대한 지조와 절개를 굽히지 않았던 행적으로 유림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나리포사실(羅里鋪事實)에 의하면, 1720년(숙종 46)에 국영 해산물 점포인 나리포창(羅里鋪倉)을 개설하고 2년간 운영한 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해산물과 소금을 판매한 이익금으로 곡식을 매입하여 호탄리 동창에 보관하였다가 충청, 전라, 제주도 지역에 기근이 발생하면 백성을 구휼했다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광선(廣船) 10척, 해선(海船) 20척 등 30여 척의 배가 이곳에 배치되어 있었다고 하니 서해안의 큰 배가 이곳까지 왕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나성동은 수운이 편리한 나루로써 이름나 있었지만 1932년 금강제방이 준공되기 이전까지는 해마다 홍수가 범람하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독락정 일대는 지대가 높아서 물난리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마을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각설하고 이 시를 감상하기 위하여 금강에 제방이 없던 그 시절의 풍광을 그려본다.

강과 들이 맞닿은 일망무제(一望無際)한 평원, 그 지평선에 작은 산들이 잇대어 있는 모습, 맑은 날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 그리고 벌판에 봉긋 솟은 산 위에서 금강을 굽어보듯 멋들어지게 서 있는 독락정을 상상하면서 시를 감상해 본다.

아마도 노년에 독락정에 올라 시상을 떠올렸으리라

<제3경 나성낙조>

창창석일거여기(蒼蒼夕日去如期, 맑은 날 저녁해는 기약대로 흘러가고)

계자라성탁절사(界自羅城卓節師 나성 경계에는 절의사표(節義師表) 서 있구나.)

백입심림조작란(白入深林鳥雀亂 밝은 빛 숲에 드니 참새들 어지럽고)

홍수원야우양지(紅隨遠野牛羊知 붉게 물든 먼 들녘, 소와 양 알아보겠네.)

초의륜괘부상엽(初疑輪掛扶桑葉 처음엔 동녘에서 해가 뜨나 했었는데)

대각영침약목지(大覺影沈若木枝 그림자 사라짐에 해 지는 줄 깨달았네.)

역려광음종고시(逆旅光陰從古是 세상 가는 세월 예부터 이러한데)

경공하사루점위(景公何事淚沾爲 경공은 어찌하여 눈물을 흘렸던가?)

1. 2구절, 여기(如期)는 ‘기약대로, 예정대로’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탁절사(卓節師)는 임난수 장군을 지칭한 것일 것이기 때문에 독락정으로 보아야 한다. 평원을 가로지르는 금강 변에 우뚝 솟은 독락정을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지조와 절개를 지닌 스승’의 상징으로서 탁절사라고 표현한 것이다.

3, 4구절, 작가는 지금 독락정에 서서 우거진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볕과 참새들이 어지럽게 나대는 모습, 붉게 물든 노을 속의 들녘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소와 양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하였으니 아직은 해가 남아 있는 듯하다.

5, 6구절, 윤괘(輪掛)는 태양이 하늘에 떠 있음의 표현이며, 부상(扶桑)은 ‘해가 뜨는 동쪽’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약목(若木)은 산해경(山海經)에 「회야(灰野)의 산에 잎은 파랗고 꽃은 붉은 약목(若木)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태양이 들어가는 곳’이다」라고 하였으니 해가 지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나성동 모습

7구절, 역려(逆旅)와 광음(光陰)은 이백이 지은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라는 시의 첫 구절 「부천지자만물지역려(扶天地者萬物之逆旅, 대저 천지라는 것은 만물이 쉬어가는 여관)이요, 광음자백대지과객(光陰者百代之過客, 광음이라는 것은 백 대에 걸쳐 흘러가는 나그네)」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므로 역려(逆旅)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며, 광음(光陰)은 ‘흘러가는 세월’을 말하는 것이다.

8구절, 경공(景公)은 제(齊)나라의 군주였다. 어느 날 우산(牛山)에 올라가서 북쪽에 있는 자기 나라의 성을 바라보다가 “아름답도다, 내 나라여! 초목은 울창하고 무성하거늘, 내 어찌 이를 두고 죽을까?”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부귀영화를 두고 죽는 것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는 경공의 고사는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하는 시에 자주 등장한다.

작가는 어느 날 독락정에 나들이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붉은 노을 속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주변 경치와 인생무상을 노래하였으니, 아마도 이 시를 지을 무렵 그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의 앞부분에서는 드넓은 나성 들녘에 우뚝 선 독락정과 노을 속에 지는 해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표현했으며, 후반부에서는 인생무상을 노래 것이 인상적이다.

역사적 기록이 된 '나지포사실'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동윤 2022-11-01 18:43:22
윤철원 님께 감사합니다.
어려운 한시를 재미있게 풀이하시니 이해하기 쉽고 고향 산천이 그립습니다.

김욱 2022-10-31 09:24:34
진짜 인생 무상이다.

삶은 찰나와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