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탁구, 부활시켜야죠"
"한국 탁구, 부활시켜야죠"
  • 김중규 기자
  • 승인 2022.09.2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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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세종으로 사무실 옮긴 박일순 한국중고등학교 탁구연맹 회장
전문체육, 생활체육 양립한 가운데 저변확대 통해 선수 발굴·육성 절실
전국단위 스포츠 단체 중 유일하게 세종시에 사무실을 낸 박일순 한국중도탁구연맹회장은 탁구 부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탁구는 제 인생이고 전부입니다. 탁구에 미쳐 인생을 바쳤습니다.”

탁구 인생 스토리를 지금도 엮어가고 있는 박일순 한국중고탁구연맹 회장(67)을 26일 세종시청대로 드림빌딩 2층 연맹사무실에서 만났다.

전국 규모의 스포츠 연맹이 세종에 자리한 것은 탁구가 최초이다. 지난 해 1월 이사를 왔다. ‘세종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으면’ 하는 생각에 세종시청 맞은 편에 터를 잡았다.

이곳을 지키는 체육인이 바로 박일순 회장이다. 넓직한 2층 공간에 명패가 정면에 위치해 있고 역동적인 말 그림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방 오른 켠에는 각종 트로피와 기념 사진 등이 그의 과거 경력을 대변해주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운동과 떨어진 적인 없는 박 회장에게 “도대체 탁구가 뭐냐”고 물었더니 바로 “인생의 전부”라는 답이 돌아왔다. 미리 준비한 이력서를 살펴보니 20여개 경력 대부분이 탁구와 관련된 것이었다.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 탁구 코치에서 상하이 세계선수권대회 총감독,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에다 호수돈 여자 중·고등학교 체육교사 등등….

그의 탁구 인생은 대전 원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유성중학교 3학년 때 운명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핸드볼, 야구, 배구 등 만능 스포트맨이었던 초등시절을 지나 중학교 3학년 때 탁구에 전념했다.

“계기가 있었지요. 동네 탁구장에서 잘 치니까 한번 시합에 나가보라고 했는데 덜컥 우승을 했어요, 1971년으로 충남 종별선수권대회였어요.”

무명에 엘리트가 아닌 생활체육 출신이 우승을 했으니 난리가 났다. 그 때 지역 유력지였던 대전일보 권오덕 체육기자가 ‘이변, 혜성같이 나타난 선수’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유남규 감독과 함께 작전을 짜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유남규 감독과 함께 작전을 짜고 있다. 

당시 고교 탁구는 신진공고, 경기상고가 판을 휩쓸고 있었다. 전학 요청이 있었지만 대전 중앙고교에서 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충남대학교에 특기자로 입학했다. 당시 국립대에서 체육 특기자 선발은 최초였다.

낭중지추(囊中之錐)일까. 당시 충남대는 전국대회 우승과 준우승 등 석권하다시피 했다. 졸업 후 첫 직장으로 탁구부가 유명한 대전 호수돈 중·고등학교 체육교사였다. 말이 체육선생이지 탁구 전담코치였다.

100년 역사의 호수돈 여고 탁구부는 그의 손끝에서 또한번 도약을 하게 된다.

“단체전 우승이 37회였고 개인전은 수도 없을 만큼 좋은 성적을 냈죠. 현 대한항공 김경화 코치, 김나영 국가대표선수 등이 호수돈 출신이죠. 그 시절에는 정말 열심히 운동했죠.”

지금은 데이터를 토대로 과학적으로 운동을 하지만 그 때는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게 최상책이었다. 야간 운동을 얼마나 했는지 교장선생님이 전기료 많이 나온다고 만류할 정도였다.

대전에서 내공을 쌓은 박 회장은 세계 주니어 탁구 선수권대회 단장을 거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탁구 총감독까지 오르게 된다. 지도자로서는 정점을 찍은 것이다.

김택수 선수 등이 맹활약하면서 단체전 남자 은메달, 여자 동메달, 개인단식 은메달을 따내는 성적을 거뒀다.

한일 탁구 교류전에서 한국선수를 이끌고 참가 후 기념사진(맨 위)과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북한 선수와 함께 찍은 사진(오른쪽 아래),  천영석 탁구협회장과 선수들이 기념촬용한 모습(아래 왼쪽)
한일 탁구 교류전에서 한국선수를 이끌고 참가 후 기념사진(맨 위)과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북한 선수와 함께 찍은 사진(오른쪽 아래),  천영석 탁구협회장과 선수들이 기념촬용영한 모습(아래 왼쪽)

박 회장이 전국 탁구협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도 탄탄한 대전의 탁구 저변이 크게 작용했다. 동산중·고, 호수돈 중·고, 한남대, 대전시설관리공단, 한국담배인삼공사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선수 육성을 도왔고 전국을 제패하는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한국 탁구가 세계를 호령할 때 코치, 감독, 단장, 총감독으로 지휘자가 됐다. 유남규, 현정화, 김택수, 오상은 선수가 활약했던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2004년 베이징 올림픽 등등...

“지금은 안타깝죠. 3연속 올림픽 노메달이었으니까요. 예전에는 중국을 제외하고서는 올림픽 최다 메달을 땄어요. 이제 중국은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일본에도 뒤지고 인도, 홍콩, 대만도 어려울 정도죠.”

원인을 생활체육강화를 위해 엘리트 체육을 희생시킨 탓에서 찾았다. 지난 10년간 일본이 그랬다. "올림픽만 열리면 슬프다"는 게 일본 사람들이었다. 일본은 다시 반등하고 한국이 일본의 슬픈 전철을 밟고 있다.

“상황이 너무 힘들어요. 대한민국 탁구가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정책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이면서 탁구 선수가 대물림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참담한 현장 상황을 전했다. 게다가 정신력, 또한 나약하기 짝이 없어 쉽게 포기하고 쉽게 의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악착같은 악바리 근성이 없다는 뜻이다.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은 좋아졌지만 성적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라는 게 문제죠.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지만 전문 체육과 생활 체육을 합치돼 저변이 더 확대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펼쳐져야 해요.”

중고탁구연맹회장으로서 세종시 탁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박회장
중고탁구연맹 회장으로서 세종시 탁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박 회장

탁구만 따질 때 일본은 40만명이 선수로 등록되어 있다. 우리는 고작 1000명 미만이다. 전국상황이 이렇다. 그러면 세종은 어떨까.

“전문체육 분야가 너무 뒤떨어져 있어요. 환경이 안되니까 그나마 있는 선수들도 외지로 빠져나가요. 심지어 탁구 종목도 세종시로 내려왔다가 다시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박 회장은 할 일이 있다. 바로 세종체육을 세계 속으로 밀어올리고 세종이 국제적인 체육도시가 되는 일이다.

“중·고등학교 탁구 선수들을 잘 키워서 국가대표선수로서 메달을 따고 국제대회에서 한국 위상을 높힐 수 있는 기틀을 다지고 싶습니다.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 인구는 적지만 세종시 국가의 중심이 되어 큰 대회를 치르는 도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탁구가 맺어준 결혼, 세계탁구연맹으로 진출해 탁구 지도자로 성장을 꿈꾸고 있는 아들, 박 회장과 가족의 몸 속에는 후천적인 탁구 DNA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땀의 댓가는 반드시 이뤄진다.’

체육인으로 그는 신조이자 신념을 인터뷰 말미에 혼자말처럼 던졌다.

베이징 올림픽 선수단과 찍은 기념사진
국가대표 올림픽 선수단과 찍은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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