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권리는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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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의소리
  • 승인 2022.05.01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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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칼럼]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4학년 박영훈
영화 ‘더 포스트’로 보는 언론,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
박영훈 배재대 4학년

‘기레기’. 한 번쯤은 들어 본 적 있는 단어일 것이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한 단어로, 허위보도나 가짜뉴스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기자로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미디어 및 인터넷이 발전함에 따라 정보 전달 기능은 매우 진화했으며, 그에 따라 가짜뉴스를 생산해내는 언론사들 또한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레기’들이 판치는 현재 언론은 시민들의 눈을 가리고 진실을 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2017년에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는 이상적인 언론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1971년 당시 미국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펜타곤 페이퍼 폭로 사건을 워싱턴 포스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뉴욕 타임즈’로부터 시작된 펜타곤 페이퍼 사건으로 인해 미국의 여론은 혼란한 상황이 되고, 결국 미 정부는 언론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펜타곤 페이퍼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게 된 워싱턴 포스트 또한 신문 발행에 관해 의견 대립을 보이게 된다.

‘더 포스트’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가 있다. 바로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다. 정부의 압박에도 그들은 진실을 추구했고, 언론사로서 당당하게 있을 수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언론의 결단력과 용기였고 국민들이 원하는 알 권리이기도 했다.

지금의 언론은 어떠한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기 일쑤고, 언론인의 전문성이나 저널리즘은 뒤로 한 채, 조회수와 광고수익에 눈이 멀어 싸구려 기사들을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필력이나 정보수집 능력보다는 조회수와 작성 기사 수가 평가의 기준으로 변해버렸고, 국민들은 더 이상 언론을 믿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 현대 언론은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선거철만 되면 시작되는 언론사의 헐뜯기식 보도, 과하게 표현하는 정파주의, 뉴스 덮어버리기 등 이것이 현대 언론의 모습이다. ‘더 포스트’에서 보여주는 선한 언론사의 모습과 달리 국내에서 언론사는 악한 이미지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공범자들’, ‘내부자들’만 봐도 언론사는 언제나 사건의 흑막, 부정부패의 집합체로 표현된다.

다양한 미디어에서 다루는 것처럼 여론을 조작하고 분란을 일으키는 모습. 이것이 우리나라 언론의 현실이다. 시대가 변하고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언론 만큼은 본질이나 의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어느 시대에서나 권력은 많은 문제를 만들어냈고 그것을 감시하고 알리기 위해 언론이 존재하는 것이다. 작품 끝 무렵 워싱턴 포스트를 향한 법원의 판결은 이렇게 나온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현대 언론은 무엇을 섬기고 있는가? 확실한 건 국민은 아닐 거라는 거다. 과거 최순실 게이트 사건 때의 저널리즘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부패의 뿌리를 뽑던 그 진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언론이 정부를 비판하면 매국인가? 그것이 국격을 떨어트리는 원인인가? 전혀 아닐 것이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 현 시대에도 여전히 적용되는 격언이다. 기사 하나로 세상이 뒤집어 지기도, 피를 보기도 한다. 그만큼 언론이 갖는 영향력은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언론사는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며, 스스로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인지하고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것이다. 법적, 경제적 압박을 무릅쓰고 정부의 추악한 모습을 밝힌 ‘더 포스트’의 워싱턴 포스트처럼, 과거 부패 권력을 끌어내린 과거 국내 모습처럼, 언론인의 사명감과 정의로운 사회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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