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일하며 소설 쓰는 게 행복해요”
“식당에서 일하며 소설 쓰는 게 행복해요”
  • 황우진 기자
  • 승인 2022.02.28 13:5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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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소설가 박수남... 연변에서 온 조선족 소설가
백수문학회원, "돈보다 사람의 아름다운 심성 키울 터"
새벽 4시에 출근해 식당일을 하는 박수남 소설가는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쨤쨤이 소설을 쓰고 있다.

“우리는 더 잘되기 위해 한국으로 왔어.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는 돈은 벌었지만 잃은 게 더 많아, 나는 그렇게도 아끼고 목숨처럼 지키던 내 몸과 소중한 가정을 내 손으로 더럽혔고, 너는 그토록 너를 사랑해주던 남편이 저렇게 되어 있고….”

이 대사는 ‘백수문학’에 실려있는 박수남(60) 소설가 단편소설의 한 대목이다.

1956년 창간된 세종시 계간 백수문학(白樹文學) 97호. 박수남 소설가의 작품 <고향을 떠난 연인들>에 실려 있는 한 장면이다.

소설의 한 대목을 읽으며 한국의 정서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고 작가에게 전화해 취재를 요청, 2월 어느 날 그가 일하는 식당을 찾아 취재를 했다.

“식당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쓰고 있어요. 손님이 없을 때 조금씩 쓰고, 음식을 하다가 생각나면 좀 쓰고 그렇게 쓰고 있어요.”

박수남 소설가는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출신으로 연서면 봉암리에서 <수라식당>이라는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ek.며 문인들 사이에는 음식솜씨가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그는 2000년도 39세의 나이에 한국으로 이주한 조선족 여성이다.

연변에서 한국에 온 이유는 돈을 벌어 당시 17세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러나 고향을 떠난 이후 한 번도 고향 땅에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그의 인생 여정이 가볍지 않게 느껴졌다.

가족사 이야기 말미에 현재 아들은 중국 소주에서 미국 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조선족 여성과 결혼해 손자도 보았다는 대목에서는 소설의 해피엔딩처럼 위안이 됐다.

“처음 한국에 와서 지인의 소개로 식당일을 시작했어요. 수원. 화성. 용인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계속 일했어요. 2007년 일하던 식당 주인 소개로 연기면 종촌에서 식당일을 시작했고, 세종시에서 한국 남자를 만나 재혼하고 쭉 식당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1남 3녀의 가난한 농가 장녀로 태어나 연변 조선족 .중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학업을 하지 못하고 생업에 종사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소설가가 됐는지 궁금해 물었다.

세종시 백수문학회 문인들과 식당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세종시 백수문학회 문인들과 식당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어릴적 꿈은 작가나 기자가 되는게 꿈이었어요. 시골에는 겨울철에 시간이 많아 수필을 써 보았는데, 연변일보에 기고해 채택됐어요. 그 인연으로 27세 때 <그녀의 충고>라는 연재소설을 썼고 <연변인민라디오방송국>에서 3회에 걸쳐 방송이 됐어요.”

중국에서의 작가 활동은 그것이 끝인 것으로 기억했다. 그리 많지 않은 작가 활동으로 어떻게 낯선 한국 땅에서 그것도 정서와 어투, 어법이 다른 한국에서 소설을 쓰게 됐는지 자못 궁금했다.

“3년 전부터 다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미용실 지인이 백수문학 이야기를 하며 회장님 전화번호를 주어 회장님과 통화하고 나서 쓰기 시작했어요. 회장님의 따뜻한 격려의 말에 감동을 받고 펜을 들었는데 처음에는 소설은 못 쓰고 수필을 시작했어요.”

당시 김일호 백수문학 회장은 “원고지에 써 보낸 박 소설가의 글이 재미는 있으나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 많아 일일이 고쳐가며 컴퓨터 작업을 해 문학지에 실어 주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시작한 박 작가의 글은 일취월장, 한국의 기성 작가 못지않은 소설가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남편이 ‘식당하면서 너무 고생한다’고 글쓰기를 반대했는데, 요즈음 노트북도 사주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어요. 저는 식당에 나오는 것이 학생이 학교 가는 것처럼 즐겁고, 식당에서 일하면 글 쓰는게 좋아요.”

박 씨는 새벽 4시에 식당으로 출근해 5시 반부터 아침 손님을 받는다. 현장일꾼들이 아침 식사를 하러 오기 때문에 항상 오전 4시에 출근하고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것이 일과이다. 그런 바쁜 식당일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는데서 인생의 만족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음식 재료도 제일 좋은 것을 사용하고 베푸는 마음으로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 나를 위하는 길”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한국 생활에 매우 만족해했다.

또한 “자신의 남편은 장기가 고향이고 자신의 운명을 바꾼 사람”이라며 “이제는 식당을 운영하며 두려움이 없어지고 자신감이 생겼다”며 웃었다.

박수남 소설가가 자신의 식당에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왼쪽 첫번째 박수남 소설가)

이제까지 한국에서 10편의 소설을 써낸 그의 소설 <고향을 떠난 연인들>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 순선이가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어금이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 오른다.

소설의 주인공 순선이는 박 작가 자신의 연변 고향사람이라며 고향과 사람들 이야기를 마저 들려주었다. 씁쓸해 하는 박 소설가의 얼굴을 보면서 고향을 떠나온 동포들의 어려운 삶과 애환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세종에서 소설가로 자리 잡은 박 작가의 소설이 중국과 한국의 가교 역할을 하고, 민족의 애환과 아픔을 대변해 주기를 기대하며 취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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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일 2022-06-17 10:25:15
이런 포스팅도 참고하여 연계하면서 박수남 소설가님이 우리 한국문단에서 빛나는 별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7787452&memberNo=11702619&vType=VERTICAL

안종일 2022-06-17 10:24:13
世有伯樂, 然後有千里馬, 千里馬常有而伯樂不常有.
故雖有名馬, 祇辱于奴隷人之手, 駢死于槽櫪之間, 不以千里稱也. 馬之千里者, 一食或盡粟一石, 今食馬者不知其能千里而食也. 是馬雖有千里之能, 食不飽, 力不足, 才美不外見, 且欲與常馬等, 不可得, 安求其能千里也?
策之不以其道, 食之不能盡其材, 鳴之不能通其意, 執策而臨之, 曰: “天下, 無良馬.”
嗚呼! 其眞無馬耶? 其眞不識馬耶? 당송팔대가의 한 분인 한유(韓愈) 선생은 잡설(雜說)에서 상기와 같이 말씀 하시었습니다. 황우진 기자님과 박수남 소설가 님은 바로 "백락과 천리마" 같이 훌륭한 분들이십니다. https://www.newsclaim.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7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