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아이들이 손편지로 답장해 주네요”
“아파트 아이들이 손편지로 답장해 주네요”
  • 문지은 기자
  • 승인 2022.02.26 10:0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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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아파트 아이들에게 손편지 받는 경비 성주일 할아버지
경비로 인생 2막...호텔 요리사 50년 경력으로 아이들과 소통해

“아저씨께서 없으셨다면 나무들은 죽고 또 쓰레기는 엉망이었을 거에요. 설날 즐겁게 보내세요.”

한 어린이가 경비아저씨에게 보낸 손편지 중 일부다.

어린이들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건넨 쪽지, 예쁜 글씨체로 홍삼을 건네며 건강 조심하시라는 이야기, 지역주민들이 써 준 시까지….

세종시 금남면 달전리에 살고 있는 성주일 할아버지(76)가 들고 온 파란 파일에는 그런 손편지들로 가득했다.

파일 한 켠에는 주민들에게 받은 과자 한쪽, 사탕 한 개까지 꼼꼼하게 기록돼 있었다. 작은 것이라도 받은 것은 잊지 않는다는 성주일씨의 마음이 엿보였다.

세종시 가락마을 13단지에서 5년 동안 경비원으로 근무했다는 성주일씨는 지역주민과 소통한 파일을 들고 세종의소리를 찾았다.

요즘 다른 지역에서는 경비에 대한 갑질이 빈번하게 불거져 나오는 시점에 세종시는 아파트촌이라도 서로의 정이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증거였다.

“서울의 특급호텔에서 50년을 요리사로 근무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수프도 끓여주고 샌드위치도 만들어 주니 이렇게 손편지를 써 주는 거에요. 너무 감사해서 자랑하려고 들고 왔어요.”

호텔 요리사로 일하며 롯데호텔에서 헤드셰프까지 했던 성주일씨는 11년 전 고향인 세종시 금남면 달전리로 내려왔다.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논과 밭에 농사를 지었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도 그리워 아파트경비원으로 일을 시작한 지 11년.

대전 대덕구 신탄진에서 4년 정도 근무하다 세종시로 근무지를 옮겼다.

호텔에서 고객에게 서비스하듯 아파트 주민을 대하고 손주같은 아이들에게 샌드위치며 수프를 만들어 주다 보니 아이들도 성주일씨를 친밀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친해지니 부모와도 친해져서 선물을 주고 가는 지역 주민도 생겼다.

하루는 한 주민에게 고기 선물을 받았는데 돼지고기가 14㎏이나 됐다. 솜씨를 발휘해 햄버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니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부모들의 감사 인사도 줄을 이었다.

이른 아침 교통안내를 할 때에도 짙게 선팅된 차량 안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손을 흔들고 인사하며 “좋은 하루 되세요”, “조심운전 하세요” 등 인사말을 건넸다.

하루는 손주가 돌이라고 자랑하니 아파트의 한 주민이 아이 돌옷을 사들고 경비실에 찾아와서 선물로 주고 가 감동했던 기억도 있다고 했다.

“이 나이까지 건강 지키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다 하느님께 받은 복이라고 생각해요.”

아들이 목사라는 성주일 할아버지는 아들 하나 딸 하나에 손주가 다섯 명인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아들 내외가 찾아오면 솜씨를 발휘해 양식 요리를 차려내고 손수 농사지은 토마토로 파스타를 만들고 감자로 수프를 끓여내는 요리사 할아버지다.

아직은 일을 더 할 수 있는 건강이 있다지만 76세의 성주일 할아버지는 계약 만기로 지난 1월 말 경비원직을 퇴직하고 달전리 노인회 회장으로 즐거운 인생을 보낸다.

성주일씨가 아파트 어린이, 지역주민들에게 받은 손편지.
성주일씨가 아파트 어린이, 지역주민들에게 받은 손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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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희 2022-03-05 21:54:25
13단지에서 몇년 동안 뵈었는데 일하심에 최선을 다해 기분좋게 일 하시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항상 웃으시면서 인사해주시고 친절하시고 아이들도 잘 챙겨주시고 너무 좋으셨습니다. 기분좋은 기사로 만나게되어 더 반갑네요. 건강하세요.

윤주화 2022-03-03 15:33:01
회장님 수고많으셨습니다.
어린이들에게 항상 다뜻한 할아버지로 남아있기를 소망하며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