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를 기억하고 극락왕생 염원이 특화된 사찰, 백제대제 행사 지내는 곳
비암사는 세종시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세종시 전의면 외곽에 고즈막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국보가 삼층석탑 상단부에서 발견되어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더욱이 비암사를 시작으로 서광사 등 연달아 발견된 유물들은 ‘연기 불비상’이란 한국 불교 미술사의 독특한 위상을 가지게 하여 그 의미는 더욱 커진 곳이다. 더불어 이곳이 연기지역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하는 연기팔경 중 제8경인 비암만종(碑庵晩鐘)을 간직한 곳이라 여러모로 그 가치를 풍성하게 하는 곳이다.
연기팔경 중에 ‘비암만종’이 나와서 의아하게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비암사가 유명해진 것이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국보 108호(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시기가 앞당겨지기 때문이다. 『추운실기』에 의하면 연기팔경의 제정은 일제강점기 때라고 상정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 비암사가 나온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비암사가 지역 내에서 나름 대표성을 갖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처음 비암사를 가본 것은 90년대 초 한겨레 신문 대금 수금을 위해서였다. 당시 온라인이나 지로가 활성화되지 않았기에 직접 수금을 하려 다녔다. 당시 기억으로 비암사는 전의면의 인가에서 한참 떨어진 깊은 숲속에 있었다. 인가에서 많이 떨어진 이 산사의 주지 스님이 87년 6월 항쟁의 열기로 만들어진 한겨레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기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수금을 해야만 했다.
지금은 다비숲 정리사업, 도로 포장 등으로 갓 이발한 것처럼 단아하고 정결한 모습이지만 당시의 기억은 좁은 산길을 오토바이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나오는 외딴곳의 사찰이었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걸어 그리 높지 않은 돌계단을 오르면 옆으로 오래된 나무 그늘이 있고, 앞으로는 삼층석탑과 극락보전이라는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극락보전 좌측 옆으로 한 계단 높은 곳에 대웅전이 있었고, 극락보전과 대웅전 사이길 뒤 높은 곳에 사당 같은 알록달록 산신각이 있었다.
비암사는 다른 사찰과는 좀 다르게 극락보전이 동선의 중심에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개의 사찰은 화신불인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하는 대웅전이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하는 대적광전이 중심을 이루는데 비암사는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 부처님을 본존불로 하는 극락보전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는 사찰의 많은 역할 중에 비암사는 죽은 이를 기억하고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특화되었다는 말과 같다.
이런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매년 양력 4월 15일(원래는 음력인데 행사 편의를 위해 양력으로 고정)에는 백제 역대 왕과 대신 그리고 백제의 부흥을 위해 숨진 이들을 위로하는 백제 대제라는 큰 행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를 알고 있어서인지 비암사를 갈 때마다 왠지 모를 숙연함을 느낀다. 나라를 잃은 백제 유민의 슬픔 그리고 부흥 운동을 하다 숨진 일가 친척의 넋이라도 좋은 곳에 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소와 시기는 다르지만 동학 농민의 마지막 넋이 잠들어 있는 공주 우금치를 가서 느끼는 것처럼, 5.18 광주 민주 항쟁의 넋들이 모셔진 망월동 묘지를 가는 것처럼, 어린아이들의 마지막 음성이 남아 있는 팽목항에 가는 것처럼 비슷한 감정이 일어난다.
그런데 연기팔경 중 ‘비암만종(碑庵晩鐘)’의 저자들은 비암사가 가지는 이런 불교 사찰의 기본적 의미보다 좀 다른 유교식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비암만종의 저자들은 사찰에서 치는 만종의 의미를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퍼지게 하려는 의미와 지옥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보다 유교식 생활 방식을 중심으로 사찰의 종소리를 듣는 입장에서 풍광을 노래하고 있다. 더욱이 만종(晩鐘)의 문자적 의미가 저녁 종소리인데도 아침을 깨우는 새벽 종소리에 초점을 맟추어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1933년 발행된 『연기지』에서 회운(晦雲) 윤철식(尹哲植)은 비암만종(碑庵晩鐘)을 이리 노래하고 있다.
碑庵禮佛曉嗚鐘 비암사의 아침 예불 새벽 종소리 울리는데
聲徹靈區立立峰 소리는 절안에 번지고 산 봉우리에도 울려펴지네
更有村鷄隨後唱 그 위에 촌 닭이 뒤따라 소리치니
喚醒舜跖各相從 잠깨니 이사람 저사람이 서로 따라 일어나네
—회운(晦雲) 윤철식(尹哲植)
일반적으로 팔경시에 나오는 만종(晩鐘)에 관한 시는 어스름 저녁의 일상을 마무리하는 풍광을 펼치는 것이 보편적인데 왜 연기팔경의 만종에 관한 시상은 아침을 이야기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암사가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국보 시기 이전부터 지역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다는데 그 의미를 두고 싶고, 사찰이 가지는 동네의 시계탑 역할에 만족을 해야 할 것 같다.
한편으로 필자는 비암만종에 대한 새로운 한시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은 가져본다. 비암사는 백제 왕과 부흥 운동을 한 분들의 넋을 기리는 백제 대제가 거행되는 곳이고, 당시의 시대상을 기록한 국보 108호(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기에 불교식 범종의 의미를 담아 지역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한시(漢詩)말이다. 그럴 때 진정한 비암만종의 시적 표현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주제와는 조금 벗어날 수 있는 소망을 더 피력하자면 이제는 지역 밖으로 나가 있는 국보와 보물을 다시 들여와 ‘연기불비상’박물관을 신설했으면 한다. 과거 연기군 시절에는 군세가 약하여 운영하기에 부담이 되었지만 지금은 특별시도 되고, 다른 주제의 박물관이 들어서고 있는데 정작 우리 지역의 유물들을 계속 외지에 방치하는 것이 좀 외람스럽기 때문이다.
‘연기불비상’이란 세종 지역 문화유산 주제는 세종 지역만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1,500년 전 연기 지역의 주민들이 연기불비상을 만들었다면 지금의 세종시 후손들은 그 의미를 잘 보전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해야 할 꼭 필요한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임비호, 조치원 출생, 국제뇌교육과학대학원 지구경영학 박사과정, 세종 YMCA시민환경분과위원장(현), (전)세종생태도시시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전)세종시 환경정책위원, (전)금강청 금강수계자문위원, 푸른세종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전), 연기사랑청년회장(전) 이메일 : bibo10@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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