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열심이 일해준 덕분에 산업포장 탔어요"
"직원들이 열심이 일해준 덕분에 산업포장 탔어요"
  • 김중규 기자
  • 승인 2020.12.17 17:4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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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수출의 날 산업포장 받은 정태봉 유진통신 대표
1987년 창업 33년째 대표 맡아 "정 흐르는 회사 만들어"
수출의 날 산업포장을 받은 정태봉 유진통신 대표는 "제가 잘해서 탄 상이 아니라 직원들이 열심히 잘 해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제가 잘해서 상을 받은 게 아니죠. 직원들이 열심히 잘해준 덕분에 이번에 큰 상을 타게 됐습니다.”

지난 8일 수출의 날에 정부로부터 산업포장을 수상한 정태봉 유진(裕軫)통신 대표이사(61)는 17일 오후 2시 세종시 연동면 응암산업단지 내 사무실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히면서 “3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 3명이나 된다”는 말로 노사가 함께하는 회사임을 강조했다.

‘유진통신’은 통신, 산업, 가정용 동축(同軸)케이블 전문제조회사로 음성과 화면을 하나의 선으로 동시에 보내는 기술로 급성장을 구가하면서 이 분야에 독보적인 회사가 되고 있다.

1987년 인천에서 창업을 했으니 30년 이상 근무면 창업 멤버나 다름이 없다. 그는 직원 100명 가운데 20년 근속자가 20명이고 70명은 최소한 10년 이상 근무했다는 말로 고용이 안정됐음을 자랑했다.

이직률이 없다는 말로 “잘하는 건 직원들 공(功)이고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라고 17일 아침 조회 석상에서 강조했던 말을 인용, 평소 근로자를 대하는 자세를 엿보게 하면서 거의 없는 이직에 대한 해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희 회사는 ‘다 같이 잘하자’는 게 모토”라며 ‘한마음 한 뜻’이 경영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다 같이 가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회사가 바로 ‘유진통신’이었다.

산업포장은 경제발전에 기여한 자에 대해 정부가 주는 상이다.

산업의 개발, 또는 발전에 기여하거나 실업(實業)의 증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기업인을 대상으로 정부가 수여하는 산업포장은 회사의 신인도를 객관적으로 입증해 주는 상이다. 산업포장은 정태봉 대표가 세종에서는 유일하게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 1987년 인천에서 근로자 5명으로 시작한 이 회사가 동축(同軸)케이블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조직으로 성장한 건 33년간 대표 자리를 지켜온 리더십과 근로자들의 애사(愛社)정신이 한데 아우러진 결과였다.

“월급날이 무서웠어요. 처음에는... 제가 인수하기 한 해 전 친구와 함께 빈 양계장을 얻어 창업을 했는데 동업하던 친구가 만세를 부르면서 어쩔 수 없이 떠안은 셈이었어요.”

초창기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실력 못지않게 운(運)도 따랐다. 바로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주택 200만호 공급’ 정책이 순풍으로 다가왔다.

아파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케이블을 이 회사에서 생산, 공급하게 된 것이다. 밤을 새워 생산해도 물량이 부족했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이른바 ‘노’가 났다.

번 돈은 재투자를 했다. 200만호 건설로 일궈낸 이익금은 1993년 세종시 현 위치로 회사 이전의 종자 자금이 됐고 종업원 20명에 연 매출 30억원의 버젓한 중소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인천 시대를 마감하고 세종 시대를 연 것이다.

“저는 운이 좋은 사업가였어요. 어려울 때 200만호 건설이라는 호재가 있었고 그걸 재투자하면서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잡게 됐지요. 다 종업원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인터뷰 도중 틈틈이 종업원의 헌신을 강조했다. 스물여덟 약관의 나이에 단행한 창업은 세 번의 운(運)이 도와주었다. 정 대표는 ‘운’(運)이라고 표현했지만 기회는 준비된 자를 만나야 확대재생산되는 게 아닌가. 좋은 운은 왔고 정 대표도 준비를 했고 결과적으로 그걸 올라타게 됐다.

‘주택 200만호 공급’이 첫 번째였다면 두 번째는 1994년 유선방송이 종합케이블로 전환하는 정책이었고 세 번째는 2000년 인터넷망의 급속 보급이었다. 구멍가게로 시작한 사업은 2000년대 초 연매출 160억원의 규모를 갖춘 회사로 성장했다.

그 사이 회사는 동축케이블 제조기술을 외국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고도화시키면서 미래를 향한 글로벌 회사로 성장 목표를 업그레이드 했다. 가스주입식 발포 동축케이블 기술을 개발하고 방송통신용 케이블에는 잡음을 없애고 외부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기술을 독자적으로 연구했다.

승승장구하던 회사는 2000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바로 미국 소재 글로벌 회사인 Amphenol 사로의 매각 결정이었다. 정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상장회사에서 인수를 결정한 건 기술력과 직원들의 인화단결을 높이 산 때문이죠. 협상 얘기가 나오면서 3일 만에 계약이 성사됐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것도 현 대표인 제가 경영을 맡는 조건이었으니 정말 파격이었죠.”

1987년 창업 4년 후인 1991년도 인천 공장 모습.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인수 금액을 묻자 “답하기 곤란하다”면서 ‘좋은 가격’, ‘조치원이 떠들썩했다’는 말로 예상을 웃도는 금액이 오갔음을 시사했다. 2000년 회사를 팔고 20년째 전권을 가지고 회사를 경영하고 있으니 많이 이례적인 셈이다.

유진통신의 현재는 2019년 매출액 726억원,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종업원 100명, 그리고 이직률이 거의 없고 무노조 경영회사다. 지금은 보편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학자금 전액지원에 출산휴가 등 사원복지는 이직을 없애고 오히려 동종 회사에서 오고 싶어하는 회사가 됐다.

1987년 창업 이후 1996년 1백만불 수출탑을 수상하기까지 10년간 태동기를 지나 2009년까지 성장기를 거쳐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제 도약기를 맞이할 10년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정 대표는 “케이블 시장이 예전처럼 급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기간산업인 만큼 경기가 급속도로 침체되지는 않는다” 며 “동축케이블 수요가 남아 있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 신규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기술력을 향상시키면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유진통신에 몸담은 근로자들이 소속감을 갖고 열심히 일해서 나오는 과실을 함께 나눠먹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매출액을 늘리는 게 꿈이 아닙니다. 다만 얼마라도 직원들에게 돌려주는 사원복지를 강화하는 회사가 됐으면 합니다. 그게 직원들이 떠나가지 않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집무실에 걸려 있는 ‘得道多助’(득도다조)를 가리키면서 “사람 간에 화합이 최고”임을 재차 강조했다. 그게 33년 경영 책임을 맡고 동축케이블 분야 최고에 오른 비결이었다.

 정태봉 대표는 항상 종업원을 최우선하며 함께하는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세종시 연동면 응암산업단지에 있는 공장의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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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ica 2020-12-23 13:54:19
이런분이야 말로 참기업인이신것 같아요!
요즘 같을때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되는것 같습니다.
이런 대표님들이 더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김윤회 2020-12-17 20:47:38
그동안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한 결과라 생각되며 축하합니다
앞으로 더 발전하여 사회의 밝은 등불이 되길 기원합니다

Yuri 2020-12-17 19:42:19
정태봉 고고

조정일 2020-12-17 19:14:01
유진통신공업 정태봉 대표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