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면서 매번 학교폭력 얘기만 나오면 학교가 어떻니, 학부모가 어떻니 하면서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식의 공방에 이젠 신물마저 난다. 어려운 문제라서 그렇겠구나 하고 이해를 하면서도 수많은 전문가나 토론회에서 나오는 학교폭력 해결방안은 좀 겉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해결책을 찾아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일정한 룰과 원칙이 있어야 하다고 생각한다. 공평과 공정이 그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몇 년전 미국에서 겪은 일이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좀 심각한 목소리로 아이가 다쳤다는 거였다. 순간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아찔했지만 우선 학교에 가서 아이를 보는 일이 급했다. 가보니 응급 처치를 해놓았고 교장과 담임, 양호 선생님이 일의 전말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점심시간에 앉아있는 우리 애를 뒤에서 다른 아이가 팔을 비틀어서 팔을 다쳤다는 것이었다.
급한 마음에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병원 가는 중에는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일이 벌어진 상황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 아이의 정확한 진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 아이는 골절이라는 진단과 함께 3주 동안 깁스를 해야 했고 좋아하던 학교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순간 상대 아이에 대해서는 원망도 들었고, 또 학교에 대해서는 이렇게 학부모에게 병원 일을 모두 맡기고 방치하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복잡한 병원 진단과 치료를 마치고 집에 오자 학교에서 아이 상태를 물어보는 전화가 왔고 사건의 처리결과도 알려 주었다. 상대 가해학생은 우리 아이가 등교할 수 없는 동안에는 똑같이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학교에 나갈 때 가해학생이 진정으로 사과를 해야 하고, 한 팔밖에 쓸 수 없어서 학교생활이 불편한 기간에는 점심식사, 학교 실습용품 제공 등 우리 아이의 학교생활을 도와야 한다는 거였다. 또 만만치 않은 병원 치료비는 전부 교육청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소상히 알려 주었다.
학교마다 상주하고 있는 스쿨 폴리스(school police)의 공정한 조사와 학교에서의 엄격한 처분에 상대 아이에게 가졌던 원망과 학교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고 오히려 상대 아이와 그 부모의 입장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 아이를 정학까지 시킬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학교에서는 아이의 부모를 불러 상황 설명과 함께 정학에 대한 설명도 있었을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그 아이와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는 아이 얘기도 들었 다. 미국에서 좋은 추억하나 생겼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실수도 하고 상처가 될 수 있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일을 처리하는 방법일 것이다. 모든 일을 사전에 예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 부모나 학교는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다. 당사자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문제는 아이들이 풀 수 있게 명확한 원칙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는 공정하고 공평한 원칙이어야 한다. 학교는 그 원칙과 룰을 세우고 엄격한 잣대에 따라 실천할 때, 학부모는 그런 원칙을 수용하고 따를 때 학교폭력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이러한 원칙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그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싹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작이 아닌가 싶다. <필자 강수인은 올해 44세로 자녀 둘을 둔 가정 주부이다. 최근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학교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자녀 교육 방식을 전해주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매월 서너번에 걸쳐 미국 교육 방식에 대해 '세종의 소리'를 통해 연재할 예정이다./편집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