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수업, 얘들아 함께 만들어보자"
"역사 수업, 얘들아 함께 만들어보자"
  • 윤정하
  • 승인 2016.10.2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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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아름고 윤정하 교사, "수업의 변화...나에게 주는 도전"

 
   아름고등학교 윤정하 교사
윤종배 선생님이 쓰신 '5교시 국사 시간'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안 그래도 지루한 국사 시간인데(저자가 책을 쓸 당시는 7차 교육과정이라 지금의 검정 ‘한국사’가 아닌 국정 ‘국사’ 교과서를 사용했었다) 점심 먹고 난 직후의 국사 시간이라니. 저자는 국사 수업이 학생들에게 주입식 암기라는 공포의 수면제로 전락해버린 현실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며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을 찾으려 책을 썼을 것이다.

윤종배 선생님과는 그 ‘급’을 비교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교사가 된지 햇수로 3년째인 나의 문제의식도 큰 맥락에서 보자면 저자의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 하고 있었다.

나의 역사 수업 시간. 수업이 시작한지 채 10분이 지나기도 전에 학생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간다. 그럴 때마다 역사 교사가 되기만 한다면 정말 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할꺼야라고 굳은 다짐을 일삼던(?) 임용 시험 준비할 때의 내가 떠오르면서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2년 반 정도 참회만하고 그 참회가 발전적인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데 하늘이 도우사, 이번 여름 방학 에 역사 교사들을 위한 직무 연수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 모든 차시를 학생들의 토의와 토론으로 역사 수업을 이끌어 가고 계시는 이동욱 선생님(수원 숙지고)의 수업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역사 수업에서 과연 토론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던 나에게 이동욱 선생님의 연수는 나에게 큰 각성과 새로운 도전이라는 과제를 남겨 주었다.

현재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번 2학기부터는 연수 때 배운 것을 바탕으로 그동안 강의식으로 일관했던 수업을 크게 변화시켜 보고 있다. 2학기가 개학하고 학생들 앞에 다시 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왜 수업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다시 그들의 의견을 듣는 일이었다.

이야기의 핵심은 우리가 학원이나 과외에서 얻을 수 없는 배움의 기회를 바로 이곳, 학교에서 함께 만들어 가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설득 겸 질문을 했다. 바로 지금, 역사에 대한 ‘지식’은 이미 언제 어디서나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전달’해주는 매체는 유명한 스타 강사의 강의나 잘 만들어진 문제집들이 대신해 줄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라고. 만약 이 말에 수긍이 된다면 그럼 우리는 왜 굳이 학교에까지 와서 그러한 수업을 다시 ‘들어야’할까라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학교에서 뭔가 다른 역사 수업을 해보자. 어떠한 역사책에도 없고 검색창에 입력해도 나오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 아마 그것은 서로의 생각을 듣고, 질문하고, 주장하고, 토론하는 그런 역사 수업이 아닐까. 그래서 이런 수업을 함께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동의를 구했고, 정말 고맙게도 학생들은 ‘그럼 일단 한번 가봐요’라는 불안이 다소 섞인(?) 메시지를 나에게 보내주었다. 그래서 난 지금 매 시간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역사 수업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학생들과의 역사 수업 모습
일단 나는 수업을 이렇게 진행해보고 있다. 개조식으로 늘 만들어왔던 학습지를 최대한 줄글 형태의 이야기로 내용을 구성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그것을 읽고 모둠별로 내용을 정리하여 발표하면서 함께 답을 찾아 나간다. 그리고 차시에는 토론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내용 정리 단계는 답이 있는 역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토론 단계는 답이 없는, 그야말로 학생들의 생각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다. 수행평가는 토론 후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수업 일기와 토론 참여도로 구성을 했다. 수업 자체에 집중하기 위한 수행평가 구성이다.

수업을 변화시키고 나서 나에게 온 가장 큰 변화는 담담하거나 들어가기 싫었던 수업 시간이 이제 때로는 기다려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내가 학생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더 희열을 느끼는 교사인 것에 정말 감사함을 느낀다.

수업 방식을 바꾸는 것이 여전히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수업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이유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그 속에 참여하는 학생(시민)을 길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말 거창한 이유라고밖에 할 수 없지만, 그 거창함을 추구하는 것이 나에게 좋은 긴장을 주는 도전이고 그 도전이 교사로서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수업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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