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는 전국시대(戰國時代)인물이다. 우리가 보통 중국고대시대(中國古代時代)를 이야기할 때는 일반적으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말한다. 노자(老子)와 공자(孔子)는 춘추시대(春秋時代) 인물이고 맹자(孟子)와 장자(莊子)는 전국시대(戰國時代)인물이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구분 한 것은 주나라가 동주시대(東周時代)와 서주시대(西周時代)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周)나라를 세운 이는 주역(周易)을 편찬한 문왕(文王)이다. 이때의 시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라고 한다. 주나라가 서안지방을 도읍으로 정해서 낙양으로 도읍을 옮길 때를 동주시대라고 한다. 따라서 서안지방을 서주시대라고 하고 낙양을 동주시대라고 한다. 큰 의미로 볼 때 서주시대(西周時代)는 왕조시대(王朝時代)이고 동주시대(東周時代)를 본격적인 봉건시대(封建時代)로 구분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주(周)나라가 서서히 몰락할 때 제가백가(諸家百家)가 등장한다. 노자(老子)를 비롯하여 공자(孔子)와 손자(孫子)등 춘추5패와 전국7웅 시대를 합해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라 한다. 전국7웅을 통일한 사람이 그 유명한 진시황제(秦始皇帝)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맹자(孟子)는 동이족(東夷族)사람이다. 맹자의 스승이 바로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라고 한다. 하지만 맹자의 스승은 그리 중요하지 안타는 게 나의생각이다. 스승이라기보다는 선생(先生)정도 아닐까 싶다. 왜냐 하면 맹자에게는 어머니가 매우 중요하고, 맹묘는 맹자보다도 맹자의 어머니에 대한 내용들이 너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중국을 다니면서 무술(武術)을 배울 때 어느 무술인(武術人)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중국에는 사부(師父)와 선생(先生)이 다르고, 학생(學生)과 제자(弟子)가 역시나 다르다. 무술(武術)을 하다가 잠시 쉬면서 옆에 있는 코치(老師)에게 "지금 무술을 하는 저 학생은 너의 제자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나의 제자가 아니고 학생"이라고 한다. 맨 처음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몰랐다. 어느 날 무술(武術) 잘하는 그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너의 사부는 훌륭한 분"이라고 했더니, "저분은 선생(先生)이지 나의 사부(師父)가 아니다"라는 말에 나는 문득 깨달았다.중국무술(中國武術)에서도 사부와 선생이 다르고 학생과 제자가 다르다. 즉 사부(師父)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해서 사부는 부모(父母)와 같으며 학생은 배우는 자이지만 제자(弟子)는 자식과 같다고 한다, 복잡해 보이지만 확연히 다르다. 요즘에 진정한 스승과 제자를 보기 어렵다고 한다. 서로 아쉬우면 사부이고 제자라고 하기엔 뭔가 미덥지 못한 것이 남는다. .
기록에 의하면 맹자(孟子)의 고향은 공자와 마찬가지로 곡부(曲阜)이다. 지금은 그가 있는 곳이 추성시(鄒城市)에 있는데 곡부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중국산동성 추성시는 예전에는 곡부였는데 요즘엔 행정 관할이 추성시로 편입되어 있다. 맹자(孟子)가 살던 곳이 맹묘(孟廟)를 비롯하여 맹부(孟府) 맹림(孟林)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규모는 공자의 공묘나 공부에 비해 매우 협소하며 비교대상이 아니다. 너무 작아 크게 생각하고 방문하면 실망할 것이다.맹묘(孟廟)는 맹자(孟子)의 사당(祠堂)이다. 맹묘 앞에는 광장이 있으며 그 한쪽 옆에 매표소가 있다. 매표과정은 자동시스템이 아니라 표 검색을 관리안내원이 한다. 그리고 광장 앞에 영성문(櫺星門)이 있다. 이 영성문(櫺星門)은 맹묘(孟廟) 제일지문(第一之門)이라한다. 이 영성문(櫺星門)의 원(元)나라 때 지어졌는데 명(明)나라 때 증수(增修)하였으며, 청나라때까지 거치면서 여러 번에 걸쳐 증축 또는 보수를 하여 청(淸)나라 동치12년에 중건(重建)하여 지금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주변을 살피면서 표를 내고 영성문(櫺星門)을 통과하여 맹묘(孟廟)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