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경, 선생님도 알지?"
"백미경, 선생님도 알지?"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5.11.26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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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수기]연동어린이집 이시은 교사, "실습생으로 다시 만난 원생"

   연동어린이집 이시은 교사
작년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원감선생님께서 부르시더니 “선생님 반에 실습생 교육 부탁 해야겠네” 하며 이야기를 하셨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사를 시작한지 17년이 넘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면서 잠깐 쉬었다가 처음 교사생활을 시작한 연동어린이집에 재취업을 하게 되었다. 처녀 때의 열정은 아직 가슴속에 있었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체력으로 주변 선생님들을 따라가기 너무나 벅차 있었다.

대화가 완벽하지 않는 4세반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똑같은 말을 반복해 이야기해 주어야 하고 연신 흘리는 콧물을 닦아주어야 하며 때때로 실수하는 대소변 뒤처리를 해 주어야했다. 지친 몸으로 어린이집 하루를 마감하면 주부인 나는 다시 가정의 일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집 평가인증이 있어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가 이제 조금씩 적응을 하며 숨을 고르고 있던 순간이었다.

실습생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 ‘잠시도 쉴 틈이 없구나’ 하며 걱정이 앞서던 그때, “백미경, 선생님도 알지?” 원감님의 말씀을 듣고 실습생의 이름에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백미경” 순간.... 까무잡잡한 얼굴에 “선생님”하고 옆에서 환하게 웃던 꼬마가 생각이 났다.

친구들과 다툼이 있어 눈물을 흘리다가도 꼭 안아주면 웃던 아이, 식사기도를 하고 점심이 시작되면 제일 맛있게 먹던 아이, 반찬을 싹싹 먹고는 “김치 더 주세요”하며 김치를 잘 먹었던 아이, 놀이시간 중간 중간 내 근처를 맴돌며 조잘조잘 이야기해 주던 아이, 그런 아이가 유아교육과를 선택해 유아교사가 되겠다고 자신이 졸업한 어린이집에 실습을 오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자랐을지 궁금함과 설렘 반, 내가 그 작은 아이에게 어떻게 기억되어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아이들과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 커다란 키에 긴 생머리를 한 여자가 인사를 했다. 얼굴을 보는 순간 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17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그때의 어린 꼬마의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 반에 오게 된 실습교사. 그리고 예전의 내 제자였던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자 미경이도 어렴풋이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보며 추억에 빠져 보았다.

졸업을 하고 교사 2년차에 맡게 된 6세반,... 대학 때 공부했던 것들을 모두 쏟아내고 싶어 하던 시절, 함께 즐기며 많은 것들을 주고 싶어 힘들었지만 재미있게 하루하루를 즐겼던 시간이었다.

어느날 “선생님 겨드랑이에 털이 왜 나요?”하며 남자아이가 질문을 하였다. “그게 왜 궁금한데?” 하였더니 “우리 아빠는 털이 있어요” 하였다. 그러면서 “다리사이에는 왜 털이 있어요?” 한다. 그 때의 나로서는 당황했지만 “왜 그럴까?” 질문을 했더니 아이들 모두 킥킥대며 웃기만 하였다. “소중하니까 세균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하였더니 “아기씨요??” 하였다.

그러자 한아이가 “그런데 왜 아빠만 있고 나는 없어요?” 하자 다른 아이는 “그럼 겨드랑이도 머리카락도 소중한 거예요?” 여기저기서 웃음과 함께 궁금한 얼굴들이었다. 그 당시 성교육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아이들도 혼란스러웠다. 인터넷이 발달된 지금은 관련된 자료가 많고 어린이집에 성교육자료도 있지만 그때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로 참 당황스러웠던 기억이었다.

풍선에 물에 적신 신문지를 하나하나 붙이며 탈을 만들었던 기억도 새록 났다. 요즘은 인터넷에 색칠만 하면 되는 부재료들이 많지만 그때는 온 정성을 쏟아 온전히 내가 만든 내 것으로 창의성과 집중력이 살아나는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깜깜한 교실 한 곳에서 제각각의 탈들을 만들어 예쁘게 투명포장지에 포장을 해서 다음날 아이들 편으로 보냈는데 기뻐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즐거운 기억들... 그때도 분명 아이들이 서로 다투며 싸우기도 했을 거고 아이들이 나를 잘 따르지 않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고민하며 그런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을 것이다.

그런 옛 기억을 더듬으며 실습을 마친 내 제자는 지금 졸업을 하고 우리 어린이집에 취업이 되어 나와 함께 교사를 시작하였다. 이젠 제자에서 어엿한 숙녀가 되어 동료교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질문을 받고 당황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생활은 보람이 있다.
“선생님” 하며 옛 사진을 가지고 와서 그때의 추억을 나누기도 하고 그 때 만든 탈을 아직 간직하고 “선생님 예전에 마술도 보여주셨죠? 그때 또 해달라고 하면 한번만 보여주고 왜 안보여주셨어요? 자꾸자꾸 눈을 감으라고 해서 이상 했었어요” 하며 묻기도 한다.

‘아, 마술도 했었지...’ 능숙하지 않았던 나는 탈로가 날까봐 여러 번 보여주지를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선생님 저 결혼해서 아기 낳으면 선생님한테 맡길거예요. 그때까지 계속 계셔야 해요” “왜? 그때까지 내가 기다릴 수 있을까?” “선생님이 봐 주셔야 해요. 할 수 있어요” “힘들어” 하며 대답은 했지만 난 ‘어린 꼬마였던 아이가 이렇게 커서 나를 감동시키는 구나’하며 속으로 정말이지 너무나 기뻤다.

아이들이 좋아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시작한 어린이집 교사지만 때론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해서, 학부모님과의 소통이 어려워 절망하고 두려워하고 힘들어했던 날들이 있었다. 예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하지만 내가 예전의 교사생활로 힘들었던 일을 뒤로하고 즐거운 기억만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이렇게 힘든 날들도 시간이 지나면 행복한 추억이 될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요즘은 매일 등원을 하면서 그리고 하원을 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과 인사를 하며 하는 말이 있다. 하트를 만들어 “사랑합니다” 라고 외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운 나부터 사랑이란 말을 외치고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되새겨보자는 의미이기도 하고 우리 아이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아이들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의 하루가 내일의 행복한 추억이 되리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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