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년 만에 사돈 간 만난다
5백년 만에 사돈 간 만난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5.10.02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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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양녕대군 딸 묘소 참배위해 부안 임씨-전주 이씨 집안 조우

   5백년 전에 사돈을 맺었던 부안 임씨와 전주 이씨 후손들이 양녕대군의 딸로 임씨 가문에 며느리가 된 할머니 묘소에서 3일 만나게 된다.<사진은 고복저수지 옆에 있는 전주 이씨의 묘소>
5백년 만에 사돈 간에 만난다.
영화 같은 일이 세종시 연서면 용암리 위줄(渭周)마을에서 오는 3일 오전 11시부터 약 2시간동안 벌어진다.

위줄마을 뒷산에는 부안 임씨 전서공 임난수 장군 증손자인 임중(林重)의 부인 전주 이씨의 묘소가 고복저수지를 아래로 굽어보고 자리 잡고 있다. 부안 임씨의 할머니인 전주 이씨는 세종대왕의 큰 형 양녕대군의 열 한번째 딸이다. 약 15대 5백년 세월이 흘러 양녕대군과 부안 임씨 후손들이 할머니와 고모할머니 묘소 참배를 결정, 5백년 만에 사돈 간에 만남이 이뤄지게 됐다.

이번 만남은 세종시 향토사연구소 황우성 소장을 비롯한 위원들의 노력으로 성사돼 지역에서 활동하는 향토사학자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세종시에서 거주하는 위원들이 양녕대군의 대종손 이정원 선생에게 이곳에 자신들의 고모할머니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정원 선생이 지난 6월 9일 한 차례 묘소를 찾아 사실 확인을 한 후 종중 어른께 알렸다.

그 자리에서 올 가을 적당한 날에 후손들이 고모할머니 묘소를 참배하기로 결정, 3일 오전 11시에 위줄마을을 찾기로 했다. 이에 세종시 주변에 세거지(世居地)로 삼고 있는 부안 임씨 후손들이 그 자리에 참석키로 해 5백년 만에 극적으로 사돈 간 만나게 됐다.

부안 임씨 평해공파 15대 손인 임헌방(林憲邦, 77세, 세종시 한솔동 첫마을 아파트 601동)씨는 “후손들이지만 이번 기회에 사돈 간에 서로 알게 지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너무 고맙다” 며 “할머니 묘소 아래 쪽에 그분들의 산소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동네 사람들은 왕손(王孫) 묘소라는 말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황우성 세종향토사 연구소장은 "신생도시 세종시에 역사성을 더해주는 좋은 일" 이라며 "세종시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을 재조명하면서 '세종'이라는 지명과 행복도시의 옛 연기군에 건설이 시대적인 필연이라는 걸 지속적으로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1509년에 생을 마감한 전주 이씨는 남편 임중보다 꼭 1년을 더 살다가 이곳에 묻혔다. 남존여비(男尊女卑)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왕손이지만 생에 대한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름도 ‘전주 이씨’라는 필부필부(匹夫匹婦)와 같이 적혀져 있어 남성 중심의 역사가 남긴 반쪽에 대한 아쉬움을 더해주고 있다.

남편 임중은 증조부인 전서공 임난수 장군과 조상들이 남긴 유산을 관리하면서 인생을 보낸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 임손(林孫)은 당시 내시별감(內侍別監), 즉 조선 시대 임금의 명령에 따라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던 벼슬아치, 으로 있던 중 양녕대군의 딸을 며느리로 맞았다. 당시 임중은 장악원정(掌樂院正)이라는 벼슬을 지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주 이씨의 무덤은 봉분 등 일부가 변형되었으나 묘비와 석물 등은 당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조선 초기 묘제(墓制)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 되고 있다. 남편 임중은 공주 장기면 제천리에 잠들어 있다가 행복도시가 건설되면서 부여로 이장됐다.

5백년 만 사돈 간 재회를 보면서 ‘역사는 반복한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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