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문호의 안경으로 본 그리스
대 문호의 안경으로 본 그리스
  • 임영호
  • 승인 2014.06.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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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독서길라잡이]시골 의사 박경철의 '문명의 배꼽, 그리스'

 
박경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한때는 시골의사로, 어느 때는 주식투자 전문가로, 안철수의 정치적 멘토로 행세했다. 사실 이런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그동안은 환영받지 못하는 이력이다. 오로지 ‘한 우물을 파라’는 세상의 격언이 정통으로 여겨지는 시대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경계를 허무는 ‘통섭’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박경철은 좀 색다른 사고를 쳤다. 여행을 좋아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 라는 그리스 문호의 안경을 쓰고 《문명의 배꼽 그리스》여행기를 쓴 것이다.

박경철은 20여 년 전 의과대학을 다닐 때 ‘삶이란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가슴앓이 할 때, 단골 책방에서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다>에 꽂혀 니코스 카잔차키스 (Nikos Kazantzakis,1883~1957) 를 알게 되었다. 그는 40대 후반이 되어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편지와 자서전, 기행문을 포함한 그의 작품 전체를 다 읽고 난 후, 카잔차키스의 나라 그리스를 들여다보고 싶어 여행을 하게 됐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그리스 유적 속에 살아있는 고대 그리스인의 정신을 느끼고, 그 속에 숨어있는 그리스 신화가 녹여진 카잔차키스의 방대한 저서 중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는 첫 출발지로 펠로폰네스를 찍었다. 이곳은 그리스 문명의 어머니이자 서구 문명의 자궁이다. 더욱이 트로이 전쟁의 원인 제공자인 헬레나의 고향이다. 그리스 도시공동체는 신의 나라이다. 그 도시가 모시는 신이 누구냐에 따라 그 사회적 특성이 달라진다. 그들은 신을 두려워하면서 신적인 것을 추구했다. 신을 숭배했으되 무조건 따르지 않았고, 신이 정해준 운명에 끝없이 도전하며 스스로가 신의 반열에 오르기를 목숨을 걸 만큼 간절히 열망했다.

인간이 곧 신이고 신이 곧 인간이었다. 수많은 신화가 많은 지식인과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심심치 않게 신화를 소개한다.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로 만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인간의 끝없는 절망의 상징 시시포스 전설, 고대 그리스인의 영웅 헤라클레스, 트로이 전쟁의 두 영웅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혈전 이야기, 제우스신을 비롯한 많은 신들도 소개한다. 나는 이런 것들을 대할 때마다 이것들이 사실인가 신화인가 혼동한다. 그리스에서는 사실이 전설이 되고 전설이 신화가 되어 국민의 마음에 내재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스인들은 종교와 사상적 제약에서 자유로 왔다. 그들이 경배하는 신들도 시정잡배나 다름없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기독교의 신처럼 십계명을 내세우거나 원죄를 부과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모럴 면에서 자유로웠고 그 찬란한 문명을 태동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저서 <영혼의 순례>에서 고대의 위대한 시대에는 젊은 육체의 이상형을 창조하던 예술가들이 어느 순간 사실적인 눈으로 보고 묘사했으며 그 사실주의가 지배하자, 문명이 몰락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사상이 없고 초인간적인 이상이 결여된 사회에서는 더 이상의 진보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가치가 결여된 단순 복제품이다. 신(神)중심의 중세시대가 암흑의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세에는 인간도 없고, 상상도 없고, 오직 신을 향한 순종만이 있다.

영웅은 고대 그리스인들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헤라클레스 같이 고대에서 영웅이 되는 조건은 보통사람들은 중간에 주저앉고 말았을 가파른 오르막길을 지치지 않고 끝없이 올라가는 의지라고 저자는 보았다. 육체와 영혼의 갈등을 이겨낸 자이다. 이들의 육체를 이끄는 힘은 교활한 이성이 아니라 순수한 영혼이다. 단 12척의 배로 수많은 왜적을 패퇴시킨 성웅 이순신장군과는 어떻게 다른가? 고대 그리스 영웅들은 영웅이라고 해서 완전한 존재는 아니다. 때로는 욕망에 이끌려 죄를 짓기도 한다. 헤라클레스도 친구인 이피토스를 때려죽인다. 영웅도 인간이다.

스파르타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헬레나이다. 애정 도피 행각이 낳은 전쟁의 중심인물만이 아니다. 헬레나는 대단한 인물이다. 호메로스의 시에 남겨져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생생히 살아있다. 이 여인은 신의 아름다움에 필적한다. 그녀를 기리는 신전도 있고 숭배의 대상도 되었다. 그녀의 미모가 신의 그것을 위협하는 이상 신의 관점에서 그녀를 숭배하는 인간들은 죽어 마땅한 것이 아닌가? 신의 장난이 개입한 이상 인간도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인간들은 여인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고 자존심과 명예를 위해 목숨을 던진다. 일리아스의 두 영웅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운명의 희생양 파리스도 그녀의 조연출에 불과하다. 여기서 세상에서 차가운 시선으로 멍청하게 보는 것은 아가멤돈이다. 야반도주한 제수에게 복수하려는 동생을 위해 자신의 딸을 신의 제물로 삼았으며 결국 전쟁에서 돌아와서 이에 대한 복수로 자기 아내와 그녀의 정부에게 비명횡사를 당한다. 명분이 없는 전쟁을 한 것이다.

   저자 박경철

박경철은 크레타 섬에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를 방문한다. 니코스 칸잔차키스는 그리스의 톨스토이다. 나는 인문학 공부의 첫 스타트로 카잔차키스의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나는 아무것 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라고 비문에 쓰여 있는 그의 외침이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책밖에 몰랐던 한 지식인 청년에게 나타난 광산 노동자 조르바. 카잔차키스는 마침내 이 조르바를 통하여 생생하게 살아서 펄떡펄떡 숨 쉬는 삶이 무엇인지 차츰 배워나간다. 그는 인간의 자유정신에 중심 가치를 두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인들과 통한다. 작가는 책 여기저기서 인간존재의 의미는 무엇이며 인생은 어디로 향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스파르타는 왜 군사강국을 지향했을까? 주둔군이나 총독을 두고 공물을 바치게 하는 것이 통상인데 스파르타는 전쟁에서 이기면 스파르타 시민들에게땅을 균배하고 피정복자 국민전체를 노예화했다. 소수 스파르타는 승전의 부산물인 자기보다 10배 많은 다수의 노예를 지배하려면 일사불란한 군사국가화와 철권통치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항상 반란을 염려하여 대량학살 등 야만적인 행태를 보였다. 완전한 지배에 욕심을 내다보니 마음과 몸이 고달픈 것이다. 그래서 스파르타는 전시민이 군인이 되어야 했고, 일은 노예가 전담했다.

현재에 사는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스파르타라는 이름만 있지 그들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사 이래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일방적으로 억압하고 그 문화를 말살하며 가혹한 통치를 일삼는 시기에는 어떤 문명도 태동한 적이 없다. 스파르타는 어떤 고고학적 증거인 유물과 유적도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여기서 고민하여야 한다.

후세에 기억 되는 것은 스파르타의 정치제도이다. 이 시스템의 두드러진 특징은 권리와 명예는 책임과 함께하는 공동체 정신에 있다. 서로 견제하는 두 명의 왕과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 ‘에포르’라는 민선감독관, 이 둘 사이에 균형추 역할을 하는 28명의 원로원이다. 왕은 그 권한과 책임이 엄격하게 규정되어있다. 이를 어기면 ‘에포르’에 의해 법정에 기소될 수 있다.

같은 법치주의지만 진시황과는 다르다. 모든 시민은 평등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왕의 특권이라면 연회에서 제일 먼저 앉고 다른 참석자에 비하여 음식을 두 배로 받는 것과 왕이 전사할 경우 애도 받을 권리이다. 왕은 전쟁에서 제일 앞줄에 서고 물러날 때는 제일 뒤쪽에 서야 한다. 결국 왕이 전쟁을 선포하려면 자신이 제일 먼저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스파르타 전사들은 페르시아 군대처럼 왕을 위해 싸우는 군대가 아니다. 자신과 가족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한 가지 스파르타 사람들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높이 사는 민족이기에 공직에 대한 명예욕도 대단하여 원로원으로 선출되는 것도 큰 영광으로 여겼다.

 
     
 
 
임영호, 대전 출생, 한남대, 서울대 환경대학원 졸업, 총무처 9급 합격, 행정고시 25회,대전시 공보관, 기획관, 감사실장, 대전 동구청장, 18대 국회의원, 이메일: imyoung-ho@hanmail.net

이 책은 서양문화의 출발인 그리스 로마문화를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초보자에게는 그리스 문화의 당의정(糖衣錠)이다. 문화유적 소개와 함께 그리스의 대표적인 문호 리코스 카잔차키스의 책 내용들을 가끔씩 인용하여 철학적 책으로 약간씩 둔갑시킨다. 이 책을 읽으면 <그리스 로마신화>와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로 바로 안내하게 된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여하튼 박경철의 노력과 지적인 능력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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