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픈데, 너도 아프냐?
나는 아픈데, 너도 아프냐?
  • 김영숙
  • 승인 2013.05.08 2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단일기]한솔고 교사 김영숙...가정의 달을 맞은 학교의 단상

 
                                        5
   한솔고 교사 김영숙
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단순히 기념일이라고 하기에는, 알싸한 아픔과 안쓰러움이 동반되는 대상들을 갖고 있는 날들이다.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더 많이 상처를 줄 수 있는, 바로 곁에 가장 소중한 사람들! 어떤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인지 고민하면서, 다시 한 번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고 보듬는 5월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이번 ‘가정의 달’을 제대로 보내기 위해, 우리 시대 아들과 딸, 엄마와 선생님의 풍경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서로의 일기들을 교환해서 읽어본다면, 온통 가슴 저리는 사랑으로만 가득찰 것 같다.

아들의 일기 : ××년 ×월 ×일
도대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 걸까? 난 지각 한 번 하지 않는 모범생이고 수업 시간에도 나름 열심히 들었으며 자율학습 시간엔 죽어라고 공부만 했다. 그래도 모의고사 성적은 3, 4등급을 오락가락하며 더 이상 오르지를 않는다.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퀭하게 꺼진 눈으로 등교해서 수업시간 내내 잠만 자는 녀석의 성적보다도 나쁘다.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걸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늘 해피앤딩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으니 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은 아직은 2학년이니 열심히 하면 연·고대쯤은 넉넉히 갈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버리지 않으신다. 난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 소리치고 싶다. 아님 공부가 내 적성이 아니니 성적에 대한 기대는 말아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그러나 마음 속 말들은 입 안에서 웅얼거리며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만 새어나온다.

엄마의 일기 : ××년 ×월 ×일
교사라는 직업이 참 자랑스럽고 보람이 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가끔 회의가 들곤 한다. 어느 날 아침 여교사가 학생에게 맞았다는 뉴스를 들었다. 학생의 잦은 지각에 몇 마디 한 것이 학생에게는 비위를 건드리는 잔소리였고 그래서 뺨을 올려 부쳤다는 것이다.

상상할 수 없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던 사건들이 가끔 현실로 벌어질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컥울컥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경위야 어떻든 간에 사도(師道)가 무너지고 예경(禮敬)이 무너지는 상황들이 발생하는 것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앞으로 다가올 불행의 예후가 아닐까?

이 지경까지 이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어떤 이는 한국의 장래가 걱정이라고 탄식하며 열린교육의 후유증이라고 비난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선생들도 아이들의 자유선택을 존중하고 그들의 요구에 무조건 부응해야 한다고 말하며, 또 어떤 이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은 것이 자신의 능력인 양 은근히 자랑하며 피해 선생님이 아이들을 잘못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일각에서 아주 일부는 맞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절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옳지 않은 말들이다. 며칠째 비가 내린 끝이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날씨까지 어둡고 축축하게 가라앉아 을씨년스럽다. 2교시 수업을 위해 교실로 들어가는 내 어깨가 축 쳐지며 발걸음을 뗄 때마다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엄마의 일기 : ××년 ×월 ×일
아들 방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아들의 일기를 훔쳐보게 되었다. 성적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가끔 담배를 피우기도 했나 보다. 난 그동안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들의 재능과 실력을 복어처럼 한껏 부풀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엄마들 모임에 나가면 1등 아들을 둔 대부분의 엄마는 목소리가 크다. 엄마들 중 제일 크게 웃고 제일 많이 떠들며 정보를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여타의 엄마들은 금방이라도 받아 적을 기세로 몰려들어 경청을 한다.

나는 그런 모습이 꼴불견이라 여기면서도 한쪽에서는 부러웠던 모양이다. 평소에 내세울 것 없는 소시민이다 보니 아들을 등에 업고서라도 어지간히 뽐내고 싶었던 속물이었나 보다. 살아보니 인생이란 것이 좋은 대학을 졸업해야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해야 행복해지는 것도 아닌데 아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척하며 너무 일방적으로 그쪽으로만 아들을 몰아 부친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들이 느꼈을 고통의 무게만큼 아들 방 이쪽저쪽에 얼룩져 있는 새까만 그림자들이 암울하게 내 가슴을 덮쳐왔다. 가슴 한 켠이 시리고 저려왔다. 아들을 통한 대리만족! 난 그걸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두드러질 것 하나 없이 지극히 평범하고 초라한 내 삶에 한줄기 빗살로 다가와 나를, 우리 가문을 영광스럽게 해 줄 그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가끔 아들이 별것도 아닌 것으로 생트집을 잡아 신경질을 부리며 제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거칠게 닫았던 것도 이런 부담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능력이 안 된다고, 공부하는 게 괴롭다고 그래서 버겁다고 말하는 대신 몸으로 호소하고 있을 때도 우리 부부는 아들 속도 모르고 맥주캔을 부딪치며 버르장머리 없이 군다고 아들만 나무랐다. 아들아, 정말 미안! 엄마가 잘못했다. 네가 아프면 엄만 너보다 몇 백배 더 아프단다. 그러니 제발 아프지만 마라.

아들의 일기 : ××년 ×월 ×일
오늘 저녁 엄마가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읽고 계셨다. 코에 걸린 돋보기 때문인지 10년은 늙어 보였다. 참, 며칠 전에는 이가 아프다고 하셨는데 병원은 다녀오셨는지 모르겠다. 아침 7시 반 학교에 가서 학원을 거쳐 밤 12시나 되어야 집에 돌아오는데다가 주말엔 밀린 잠을 청하느라 11시가 훨씬 지나서야 일어나는 게 이미 습관이 되어 버렸다.

또 엄마는 11시 예배가 끝나도 점심 봉사까지 하다가 오후 두 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신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항상 이런 식이다. 방학이라고 해도 보충수업에 야간자율학습까지 해야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기만 하다. 공장의 기계 부품처럼 늘 같은 자리에서 주변의 부속품들과 맞물려 움직이고 있으면 모두 안심을 한다. 그러나 내 안에 스프링 장치가 있어 언제 튀어나갈지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엄마의 돋보기가 콧등에서 주르르 미끄러지자 엄마는 엄지와 검지를 이용하여 돋보기를 밀어 올린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엄마를 꼭 끌어 않아주고 싶었다. 엄마의 등 뒤로 돌아섰다. 엄마는 항상 내 등 뒤에서 나를 지켜주었고 내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 주셨지만 난 엄마의 등을 지켜준 기억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의 꼿꼿하던 등이 어느새 동그마니 굽은 것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엄마를 끓어않은 두 팔에 힘을 주면서 쑥스러워 차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진 못 했지만 마음 가득 소리쳤다. 엄마! 늙으면 안 돼. 아파도 안 돼. 엄마가 아프면 나도 엄청 아프단 말이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