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위 매서운 눈빛 '찾았다 내 먹잇감'
창공위 매서운 눈빛 '찾았다 내 먹잇감'
  • 금강일보
  • 승인 2013.02.2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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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한국전통매사냥 공개시연회가 23일 대전 동구 이사동 고려응방 일원에서 열려 검독수리가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해 토끼를 사냥하고 있다. 김상용 기자 ace@ggilbo.com
 
2013 한국전통매사냥 공개시연회
대전 동구 이사동 고려응방서 열려

머리부터 서서히 어둠이 내려진다. 어두워짐은 때로 편안해짐을 의미한다. 그가 내게 가죽으로 만든 누모재를 씌워주는 이유다. 동시에 내 눈을 가림은 ‘출격’이 임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람이 분다. 내 몸에 수없이 박힌 깃털 하나하나가 눈을 뜬다. 북동풍인가… 아니다. 겨울 산바람은 변덕스러웠다.

내 눈을 가리고 있던 누모재를 그가 벗긴다. 동공이 한쪽으로 쏠린다. 멀리 눈 녹지 않은 식장산이 와 박힌다. 까짓, 나래짓 몇 번이면 내겐 금방인 거리다. 그가 가만히 버렁이를 낀다. 그 팔에 앉을 때 파고들 내 발톱을 견디기 위한 장갑이다. 이제 준비하잔 얘기다.

그가 호루라기를 분다.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온다. 본능적으로 날개가 움직인다. 바람을 타야 한다. 발톱에 힘이 들어간다. 몸이 움츠러든다. 논두렁에 섰던 사람들이 ‘와∼’한다. 한지에 희고 퍼런 물이 든 것만 같은 그 하늘에서 나의 고공비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센 바람이 휘 지나간다. 몸을 잠시 맡기고, 하늘 밑 논두렁을 봐야 한다. 어디선가 꿩이 날아오를 것이다. 저기다. 볏집을 잔뜩 쌓아놓은 곳. 놈이다. 바람이 멈췄다. 지금이다. 몸을 접고 직선으로 한 번에 가 꽂혀야 한다. 그도 날 응시하고 있다. 폭포수 같은 급강하에 사람들도 숨을 죽인다. 아∼ 놓쳤다. 발톱으로 낚아채는 게 늦었다. 야생이란, 자연이란 늘 그랬다. 예상치 못한 변수 투성이, 그게 자연이다.

사람들은 성미가 급했다. 당연한 걸 놓쳤다는 반응이다. 한심하다. 나의 본성과 날씨, 바람 등 그 모든 게 맞아야 사냥이 성공하는 법. 기다릴 줄 모르는 자는 자연의 이면을 넘어보지 못한다. 한참을 다시 공중을 돌았다. 겁을 집어먹은 녀석은 두 번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때다. 저 밑에 꿩대가리가 삐쭉 나온다. 다시 바람이 잠잠하다. 내려간다. 됐다. 놈의 대가리부터 물어뜯는다. 그럴 땐 내 입 속에 있는 치상돌기(부리칼)가 요긴하다. 놈의 배 위에 앉아 목뼈를 아작 냈다.

몇 남지 않은 사람들이 그제야 달려온다. 나의 늠름함을 확인한다. “역시 송골매야” 한다. 박용순 응사, 그도 “송골매의 꿩사냥은 오늘(23일) 한국전통매사냥 공개시연회(대전 동구 이사동 고려응방☏)에서 국내 처음으로 준비한 것”이라고 어깨를 들썩인다.

사실 오늘은 사냥하기 좋은 날은 아니었다. 예부터 삼불(三不)이라는 말이 있다. 바람이 있거나 눈·비가 오거나 해질 무렵이면 나를 내보내지 않았다. 박 응사가 ‘왕’이라는 별칭을 붙인 검독수리 녀석도 토끼 잡는 데 애 좀 먹었을 거다.

박 응사가 “이번 시연회 행사를 점수로 매기면 60점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박하게 얘기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말은 따로 있다. “내 평생을 바쳐 응사의 길을 가고 있다. 2010년 한국의 매사냥이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면서 그 외로움이 조금이나마 덜어졌지만 여전히 응사의 길은 춥고 배고프다. 매사냥이 한두 번 시연행사로 그치면 안 된다. 시민들이 언제나 찾아와 체험할 수 있어야 하고, 민속과 전통으로서 매사냥은 존중받아야 한다.” 박 응사의 삶이 전하는 얘기다.

문승현 기자 papa@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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