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한국으로 시집 온 베트남 색시 응우엔티가이씨(31, 연기군 금남면 대박리)는 요즘 한껏 들떠있다. 24일 오전 남편 이종형씨(49)를 보고 ‘꿈에만 보았던 고향’을 그리면서 서투른 한국말로 “고맙다”며 왈칵 껴안았다. 바로 다음달 10일이면 머나먼 고향 ‘까마오’ 땅을 밟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인생을 ‘아름다운 동행’으로 만들고 있다.
18살 때 불발탄을 가지고 놀다가 눈과 두 손을 잃은 남편 이종형씨, 그리고 역시 8살에 소아마비로 지체장애자가 된 아내 응우엔티가이씨. 이 둘의 삶은 인생이 왜 의미 있는가를 실험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다.
“5년 전 베트남에서 우리 동네로 시집 온 친구 아내를 통해 ‘석한이 엄마’를 만났습니다. 눈과 두 손을 잃은 저에게 맞는 사랑이 필요했습니다. 남들은 뭐라고들 했지만 저는 지금의 아내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23살 된 베트남 아가씨를 배필로 삼을 수 도 있었지만 그는 ‘수분’(守分)을 택했다. 2006년도 저물어 가는 12월 28일, 이씨는 베트남 남쪽 끝 ‘까마오’로 들어가서 소아마비로 장애를 겪고 있는 아내를 평생 반려자로 맞았다.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조건을 보지 않고 한국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조금 불편하긴 하나 행복의 조건은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애인끼리 다문화 가정을 꾸린 그에게도 고부간 갈등은 예외가 아니었다. 문화적인 차이가 의도와 상관없이 작은 불씨를 만들어 냈다. 그 때마다 사랑으로 위기를 극복해나갔다.
그 사랑의 결실은 아이들로 나타났다.
다섯 살짜리 석한군과 동생 장한군을 2008년과 이듬해에 얻었다. 평생 홀로 살 것 같았던 이씨에게 자식은 ‘희망’이었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제공해주는 ‘금쪽’이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랄까.
큰 아들 석한이가 자폐증 증세를 보였다. 업친데 덮친 격이었다. 불편한 몸으로 정성껏 간호가 몇 년 째 이어졌다.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석한이는 이제 정상에 가까울 만큼 호전되었다.
변하지 않는 게 하나있었다 .바로 고향으로 향하는 아내 응우엔티가이씨의 마음이었다. ‘향수병’에 가까울 만큼 심각한 때도 있었다. 현실은 그 꿈을 엄두도 못 내게 만들었다. 부부 모두 노동력이 없는데다가 국가에서 주는 장애인 수당으로 생활하는 형편이어서 베트남 행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더구나 한국에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할 만큼 지독한 가난이 꿈에만 머물게 했다.
“금남면 로타리 클럽에서 베트남으로 갈 수 있게 지원해준다는 통보를 받고 너무 기뻤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하고 아내를 붙잡고 한참동안 울었습니다. 간절한 기도에 화답을 한 것이지요.”
소설가가 꿈인 남편 이씨는 그 꿈만큼이나 말을 정리해서 표현했다. 오는 5월 10일 열흘 일정으로 장애를 사랑으로 이겨내는 이 부부는 베트남으로 떠난다. 게다가 떠나기 전인 내달 2일 공주에서 열리는 합동결혼식에서 다시 한 번 한국에서 면사포를 신부에게 선물하게 돼 기쁨은 두 배가 되고 있다.이날 취재에 동행한 금남 로타리클럽 윤상운 총무(50)는 “한번 맺은 인연인 만큼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끔 운영진과 상의하겠다” 며 “이번에 왕복 비용 300만원 외에 간단한 선물도 마련해주면서 당일 인천 공항까지 교통편의도 제공하겠다”고 약속, 이들의 베트남 행을 한결 가볍게 했다.
약 1시간에 걸친 인터뷰 후 이종형씨 부부는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잘 살겠다”고 다짐했다. 참으로 그 인생은 아름다웠다.
금남로터리클럽 훌륭한 일을 하시네요~~~
고맙습니다.